우리나라 양대 세입기관인 국세청과 관세청은 인공지능(AI) 기술을 대국민 서비스는 물론 과세행정 전반에 적극 도입하고 있다.
특히 경제 국경을 지키는 관세청은 위험물품 선별과 밀수 단속 등 감시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AI 분석 시스템을 활용 중이다.
물론 양 기관 모두 보안 문제로 인해 직원들의 내부 행정 업무에는 AI를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만 활용하고 있지만, 납세자를 대상으로 한 외부 서비스 분야에서는 빠르게 AI를 도입하고 있다.
국세청과 관세청 모두 갈수록 복잡해지는 행정 수요와 인력의 한계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는 만큼, AI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자 필수 전략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AI 국세상담' 성공적…세무조사 선정에도 활용
전화 연결이 왜 이렇게 안돼요?
매년 2월 연말정산 기간과 종합소득세 신고기간인 5월만 되면 쏟아지는 불만으로, 국세상담 전화성공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최대 숙제였다.
지난 2023년 국세상담센터에는 총 130만건의 상담전화가 걸려왔는데 이 중 통화에 성공한 것은 31만건(24%)이었다. 상담을 시도한 전화 10건 중 8건은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에 국세청은 지난해 5월 정부기관 최초로 인공지능 기반의 AI 국세상담 시스템을 도입했다.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맞춰 시범 도입한 AI 상담 서비스로, 24시간 언제든지 납세자가 세금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세청은 AI 상담 서비스를 통해 "상담 성공률이 전년 대비 24%에서 98%로 대폭 향상됐고, 전체 상담의 약 75%를 AI가 처리했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상담사 1000명을 고용한 효과가 발생했다고 국세청은 설명했다.
국세청은 AI 업무혁신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하고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 운영한 AI 상담 서비스를 납세자 문의가 많은 연말정산과 부가가치세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능형 홈택스 시스템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중이다. 현재 홈택스는 단순 키워드 검색을 넘어 문맥 기반으로 납세자의 질문을 이해하는 구조를 갖췄다.
예를 들어, 배달라이더로 일하는 납세자가 '인적용역 소득자'라는 정확한 용어를 몰라도 '배달라이더'로 검색하면, AI가 그 직업군의 맥락을 이해해 '인적용역 소득자 기한 후 신고' 화면을 바로 안내하는 식이다.
또한 국세청은 과다 납부한 종합소득세를 민간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고도 홈택스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원클릭 환급' 서비스도 AI 기반으로 고도화할 예정이다.
현재 환급금 안내부터 검토까지 전산화된 체계를 발전시켜, AI 환급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이 같은 AI 기술을 토대로 다음 달 종소세 신고부터 기존보다 개선된 신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국세청은 올해 정기 세무조사 대상 법인 선정에 AI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AI는 법인들의 신고 내용과 과거 세무조사 실적 등 방대한 데이터를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하고, 탈세 가능성이 높은 사업자를 예측해 조사 대상으로 추천한다. 납세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성실 신고자와 불성실 신고자를 자동으로 분류하고 세무조사 대상 후보를 제시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 4월 AI 국제표준(ISO/IEC 42001) 인증을 획득한 것을 계기로 AI 세무조사 대상 선정하는 'AI 탈세 적발 시스템'을 국세행정 전반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ISO/IEC 42001은 국제표준화기구(ISO)와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가 만든 인공지능 국제표준으로,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이 AI를 활용할 때 개인·집단 권익 등을 침해하지 않고 안전하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인증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향후 AI가 고도화되면 정기조사 대상 법인뿐 아니라, 개인사업자도 조사 실적을 AI가 분석해 조사 대상자를 가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청, 감시업무 적극 활용…AI 상담 연말 가능할 듯
관세청 역시 AI·빅데이터 기술 도입 성과를 보이고 있다. 수입화물, 특송, 여행자 휴대품 등 통관 전반에 AI 기반 위험선별 모델을 적용해, 잠재적 위험이 있는 화물을 조기에 가려내는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지난해 관세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공동으로 추진한 관세행정 맞춤형 기술개발 사업을 통한 실질적 기술 도입 사례들을 선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AI 복합 엑스레이(X-ray) 검색 장비와 AI 기반 우범여행자 자동 추적 시스템이다.
복합 X-ray 장비는 마약류처럼 밀도가 낮아 기존 장비로는 식별이 어려운 물질까지 정밀하게 판별할 수 있으며, AI CCTV 시스템을 통해 공항 내 수많은 영상을 자동 분석해 의심스러운 인물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기술은 감시를 넘어, 단속으로도 이어졌다. 관세청은 지난해 AI 기반 빅데이터 플랫폼을 활용해 마약 밀수입자를 적발한 데 이어, 수입신고 오류 탐지 시스템을 통해 납세자의 잘못된 신고를 95%까지 줄이는 성과를 냈다. 이 사례는 AI·빅데이터분야 정부혁신 우수 행정사례로 선정, 대외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급증하는 해외직구에 관세상담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한정된 인력에 골머리를 앓던 관세청은 'AI 관세상담'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실제 지난 2022년 2만건 정도이던 관세청 전화상담 포기 건수는 2023년 7만건으로 급증했다.
이에 관세청은 국세청의 'AI 국세상담'을 벤치마킹해 지난해 11월 '관세청 고객지원센터 상담 서비스 고도화'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현재는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관세청은 올해 연말까지 고객상담 분야 AI를 도입하기 위한 장비 교체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민간에서 수요가 많은 'AI 품목분류' 서비스는 아직 개발이 더딘 상황이다.
관세청은 지난해 초 업무계획에서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품목분류 추천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개발을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관세청 내부 직원들은 '관세청 빅데이터 포털'로 품목분류 추천을 활용 중이지만, 추천 결과 신뢰도 문제로 인해 대외 서비스로 개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