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금 대신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물납 허용)는 미술계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문화재급 미술품이 상속세 때문에 해외로 흩어지는 걸 막아야 한다는 논리였죠.
하지만 "부자들 그림을 세금 대신 받아주는 제도 아니냐"는 특혜 논란으로 제도화까지는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실제 제도 도입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2021년 정부의 세법개정안 초안에 담겼다가 최종안에서 빠졌고, 이후 의원입법안이 발표되며 그해 말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렇게 2023년부터 시행된 '미술품 국세물납제'. 하지만 제도 시행 3년째인 지금까지 실제 물납은 단 한 사람만 허용받았습니다. 어렵사리 도입된 제도지만, 실효성 논란에 더해 국고 손실 우려도 여전한데요.상속세 대신 미술품 내라더니…현실은?
현재 우리나라는 상속세(또는 재산세)에 있어 현금으로 납부하기 어려울 때는 물납(금전 이외의 것으로 조세를 납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 대상으로는 부동산·유가증권이며, 2022년 전까지는 미술품은 물납이 허용되지 않았죠.
상속받은 미술품을 시장에 팔아 현금화한 뒤 세금 납부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속세 금전 납부는 불편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2020년 10월)한 이후 남긴 대규모 문화재·미술품에 대한 감정(약 1만3000여점)이 진행되면서 문화유산의 해외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물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2021년 7월, 당시 고광효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 조세총괄정책관은 그해 세법 개정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때 정부 공식 문서에 처음으로 '미술품에 대한 상속세 물납 허용'이라는 내용이 등장했는데요.
브리핑 자리에서는 "삼성가(家)의 기증 미술품도 물납이 허용되느냐"는 질문이 나왔고, 고 정책관은 "2023년 1월 2일부터 적용될 예정"이라며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당정협의 과정에서 제외됐다"는 이유로 세법개정안 최종본에는 담기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부자 감세'를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많았죠.
첫 사례는 제도 시행 약 1년 뒤인 2024년 10월에 나왔습니다. A씨가 상속받은 미술품 4점(중국 현대미술가 쩡판즈의 초상화, 이만익의 일출도 등)이 물납 대상이 됐는데요. 미술품의 가치는 25억9500만원으로, 약 26억원의 상속세를 낸 것으로 인정한 것이죠. 하지만 이후 추가 사례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 사람만을 위한 제도냐", "유명무실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습니다.

국고손실 vs 문화경쟁력…남은 논란은
미술품 물납이 저조한 건, 제도 자체의 한계로 볼 수 있습니다. 상속세 납부세액이 상속재산 가액 중 금융재산의 가액을 초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금융 재산을 많이 남긴 사망자의 상속자는 미술품을 물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미술품 물납은 상속이 발생한 이후에만 가능한 데다 적용 대상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라며 "공공 보존 가치가 인정되는 일부 미술품에 한해서만 허용되기 때문에 빈번하게 활용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납세자가 신청한다고 바로 물납이 허용되는 구조도 아닙니다.
①물납 신청을 받은 관할 세무서장이 문화체육관광부에 통보하고 ②문체부가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한 심의위원회를 거쳐 물납 필요성을 인정하면 ③다시 세무서에 물납 허용을 요청하는 구조입니다. '국고 손실 위험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을 때는 물납을 허가한다고 합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73조의2).
다만 미술품 물납제가 문화유산 보존과 국민 문화향유 확대를 목적으로 도입됐다는 점에서, 현행 법 체계상 국고 손실 위험을 이유로 물납을 거부하는 데 현실적 한계도 있죠.
상속세는 현금 납부가 원칙입니다. 국세청도 예외적인 상황을 만들기보다는 현금으로 받기를 원할 겁니다. 만약 상속세를 대신해서 받은 게 비상장주식이라면 어떨까요. 거래 시장이 좁아 쉽게 매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시장 가격에 맞춰 저가에 매각했을 때는, 헐값 처분이라는 비판에 더해 결과적으로 세수 손실까지 떠안게 됩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미술품으로 이어집니다. 물납 받은 미술품은 팔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물납이 허용된 미술품은 '불용 처리'하며, 문체부 산하 국가유산청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관리됩니다. 세금을 현금으로 받는 대신 국민 문화향유 자산으로 전환하는 셈이죠.
하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상속세는 현금 납부가 원칙인 만큼, 미술품 물납 역시 조세 형평성 문제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물납 미술품이 사실상 국고로 현금화되지 않는 구조라는 점에서 현금으로 세금을 납부한 다른 상속인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더 큰 논쟁은 앞으로 벌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26억원 규모 사례에 그쳤지만, 향후 수백억원·수천억원대 미술품 물납 신청이 등장한다면 어떨까요. 국가가 이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행법상 물납 가능한 미술품 가액에 대한 별도 상한 규정은 없습니다.
정부 한 관계자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예로 들며 "만약 세계적 문화유산이 개인 소장 상태로 숨겨져 있기보다 공공 영역으로 편입돼 국내외에 공개된다면, 문화적 경쟁력은 물론 관광·경제 효과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술품 물납 논란은 '국고 손실이 더 크냐', '문화 경쟁력이 더 중요하냐'는 관점의 차이로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