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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만한 자녀' 말 못한 아버지…드라마보다 지독한 상속 현장

  • 2026.06.04(목) 07:11

유언장 작성이 필요한 이유(택스 스터디카페)

"가장 믿는 자녀가 누구입니까? 제가 그분과 대화해보겠습니다"

수척한 몸으로 병상에 누운 80대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동도, 의사소통도 쉽지 않다는 말에 변호사는 병원까지 찾아갔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병든 아버지를 앞에 두고 재산을 걱정하는 자녀들이었다. 아버지를 모시던 첫째가 재산을 모두 가져갈지 모른다는 불안에, 다른 형제들이 병실로 몰려와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자녀들이 병실에서 나가면 노인이 조금이나마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을까. 변호사는 병실 밖으로 자녀들을 모두 내보냈다. 그러나 노인은 변호사의 질문에 눈동자만 움직일 뿐,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변호사는 질문을 바꿨다. 긴 세월 중견 건설사를 운영해온 창업주라면, 회사 안에 믿고 의지할 만한 임원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믿는 회사 임원은 누구입니까?" 

이번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평생 회사를 일구고 재산을 쌓았지만, 정작 마지막 순간 자신의 뜻을 대신 전해줄 사람 하나를 고르지 못했다. 자녀도, 회사 사람도, 누구 하나 그의 입에서 믿을 만한 사람으로 불리지 못했다.

그렇게 노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유언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자녀들의 다툼은 더 커졌고, 고소와 소송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첫째 아들이 둘째 아들에게 칼을 들이댔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한 가족의 상속 과정에서 현실이 된 셈이다.

노인은 평생 회사를 키워 큰 부를 이뤘지만, 말년에는 자신의 뜻을 전달할 사람을 선택하지 못했다. 남겨진 재산은 가족을 지키지 못했고, 오히려 가족 간의 불신을 드러냈다.

상속을 둘러싼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지독했다.

안원용 다솔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가 유튜브 채널 '더존TV'의 '택스 스터디카페'에 출연해 상속 과정에서 유언장의 유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했다. [사진: 이대덕 기자]

평소 드러나지 않았던 가족 간의 감정이 표면화되는 순간이 바로 상속·증여 과정이다. 상속과 증여를 생각하면 전문가들은 절세 방법을 중요하게 여긴다. 세무대리인은 세금을 줄이고 자녀에게 재산을 효과적으로 넘기는 기술을 전문성으로 본다.

하지만 세무대리인이 마주하는 현장에서 절세 기술이 전부가 아니다.

부모와 자녀 간, 그리고 형제 간의 오랜 기간 쌓인 감정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일이 중요해지는 경우가 많다.

다솔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이자 세무법인 다솔의 상무인 안원용 변호사는 최근 유튜브 채널 '더존TV'의 '택스 스터디카페'에 출연해 "상속 과정에서 분쟁은 반드시 생긴다. 경험 많은 전문가가 중립적으로 가족 간 분쟁에 관여하면 좀 더 성숙하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변호사는 유언장 작성에 참여하면서 마음이 아픈 순간이 많다고 말했다. 거동이 어렵거나 몸이 아픈 상태에서 유언장 상담을 한 의뢰인들이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세상을 떠나고, 이후 남은 가족들이 다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사례도 안 변호사가 직접 겪었던 사건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사전에 가족들과 상속·증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고 절세하는 길이라고 강조하지만, 막상 내 일이 되면 상속 계획을 미리 세워놓기가 어렵다.

안 변호사가 겪은 또 다른 사례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던 막내딸과 생활비를 댄 장남 사이의 다툼이었다. 어머니가 생전에 집의 절반을 막내딸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근거로 막내딸은 주택 지분 50%를 갖겠다고 주장했다.

막내딸은 병간호를 한 기여분이 있는데다, 어머니도 생전에 그러한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남은 자신도 생활비를 부담한 만큼 법정상속분대로 똑같이 나눠야 한다고 맞섰다.

이는 어머니가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해놓았다면, 막을 수 있었던 분쟁이었다. 

안 변호사는 부모님 돌봄 등의 기여분을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유언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이대덕 기자]

유언장 작성, 왜 망설이는 걸까?

우리나라에서는 유언장 작성이 소극적이다. 가족이 미리 상속재산 분할을 협의하면 갈등을 막을 수 있지만, 부모들은 이를 부담스럽게 느낀다.

안 변호사는 "앞서 언급한 막내딸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생전에 막내딸의 기여를 인정해 집의 절반을 준다는 유언장을 작성해놓기만 했어도 상속인 간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와 같은 유언장이 없다면 다른 자녀들은 형제의 기여도를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유언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부모들이 유언장 작성에 망설이는 이유는 가족 간 갈등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변호사는 "생전에 내 재산을 정리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문서를 쓰는 것 같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또한 작성한 유언장의 내용을 자녀들이 알게 된다면, 서운함을 느낄 수 있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부모가 자녀의 서운함이나 반발을 걱정해 유언장 작성을 망설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 변호사는 "유언장의 내용이 반드시 자녀에게 알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비밀·보안 유지는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유언장 작성을 회피하지 말고, 전문가를 만나서 상담을 받는 것이 자녀 간의 분쟁을 막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상속세, 현장에서 본 억울한 사례는?

비상장 주식 평가 등 상속인 입장에서 억울한 사례는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상속재산 전체를 기준으로 세액을 계산하는 유산세 방식을 취하고 있어, 재산 평가에 따라 세 부담이 크게 달라진다. 건물이나 비상장 주식의 평가 과정에서 상속인의 납부능력을 넘어서는 상속세가 과세되는 일도 벌어진다.

안 변호사가 현재 불복을 대리하는 사례 중 하나도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안 변호사는 상속세 신고·납부 과정에서 상속인이 체납자가 되는 억울한 사례들이 많다고 밝혔다. [사진: 이대덕 기자]

A씨의 아버지는 건물을 한 채 가지고 있었다. 개발 호재 소식에 시행사가 찾아와 주변 시세보다 높은 200억원에 건물을 사겠다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계약금 20억원을 받고 계약했지만 두 달 뒤 돌아가셨고, 잔금은 받지 못했다.

과세관청은 이 계약을 근거로 건물 가액을 200억원으로 정해 상속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어 시행사는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금 20억원을 포기하는 일이 드물지만, 시행사는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계약을 취소했다.

상속인들은 건물을 팔려고 했지만 200억원에 팔 수 없었다. 주변 시세와 감정평가 결과 모두 건물 가치는 100억원 정도였다.

상속인에게 부과된 상속세는 100억원에 가까웠다. 건물을 팔아도 세금을 내면 남는 돈이 없었다. 상속인들은 세금을 낼 현금이 없어 체납에 놓였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과세관청도 억울한 사정은 이해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환급 규모가 커 곧바로 구제하기에는 부담이 컸고 결국 불복 절차로 넘어가게 됐다.

결국 해당 사건은 조세심판원에서 심리 중에 있다.

안 변호사는 "이것은 세법이 실무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사례"이라며 "대리인으로서 불복단계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겠지만, 대법원 판례를 보면, 납세자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 그래서 저는 심판원 단계에서 해결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원용 변호사. [사진: 이대덕 기자]

☞안원용 변호사는?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세무사 시험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국내 최대 세무법인 다솔의 상무이사로 양도, 상속, 증여 및 법인컨설팅을 전문으로 활동하다, 지난 2022년 법률사무소 다솔을 창립했다. 현재는 다솔의 대표변호사이자, 세무법인 다솔의 세무사로 법률 문제와 세무컨설팅까지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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