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세청(본청) 이탈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승진을 위해 어렵게 본청에 들어온 직원들이지만, 막상 근무를 시작한 뒤 휴직하거나 조직을 떠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국세청 법인세과 직원이 책상을 정리한 뒤 출근하지 않고, 상사에게 휴직을 통보한 사건 이후 비슷한 방식의 휴직 사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법무과의 한 팀장도 승진을 포기한 채 본청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장 충격을 준 사례는 승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복수직 서기관의 사직입니다.
세무서장은 많은 국세공무원이 목표로 하는 자리입니다. 본청 근무가 힘든 만큼 승진이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에 지방청 직원들은 본청 전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만큼 본청 생활은 '조금만 더 버티면 세무서장'이라는 기대감으로 견디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본청에 들어와 승진까지 한 직원이 사직서를 낸 것은 조직 내부에서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잠시만 더 버티면 세무서장 자리가 눈앞인데도 스스로 조직을 떠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고 있을까요?
"본청은 원래 힘든 곳" vs "시대가 바뀌었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관리자들의 시각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본청은 원래 힘든 곳이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힘들었지만 참고 버텼다"
실제로 본청 업무 강도가 과거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업무가 힘들고 상사의 지시가 다소 비합리적이더라도 승진을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버텼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본청 직원 대부분은 업무 강도가 높다는 사실을 알고도 스스로 전입을 희망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업무 강도가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승진과 조직 충성도가 강한 동기부여였다면 지금은 건강과 가족, 일과 삶의 균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원들이 늘어났습니다. 과도한 업무와 불합리한 지시를 '승진'이라는 보상 하나만으로 감내하기에는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승진 이후의 현실도 예전과 달라진 것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국세청은 서기관급 이상이 되면 정년보다 2년 먼저 퇴직하는 조기 명예퇴직이 사실상 관행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찍 퇴직하더라도 세무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합니다. 국세청 출신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더라도 예전처럼 쉽게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승진이 과거만큼 확실한 보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건강을 잃어가며 본청에서 버티기보다 워라밸 챙기며 오래 근무하는 것이 낫다"는 가치관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세청 직원들의 속내는?
물론 일부 사례만으로 국세청 조직 전체를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휴직과 사직은 조직 문제뿐 아니라 개인의 건강, 가치관, 가정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직원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업무가 너무 많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업무의 우선순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임광현 국세청장 취임 이후 국세청은 국정과제 추진과 국무회의 대응 등으로 쉼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매주 국무회의 자료를 준비하고 후속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본청은 물론 지방청까지 업무 부담이 크게 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체납관리단 운영까지 시작됐습니다.
전국 세무서에는 수십명 규모의 체납관리단이 배치됐지만, 대부분의 세무서는 별도 사무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해 회의실이나 대강당에 임시 사무실을 꾸민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체납관리단을 관리하기 위해 지방청과 세무서에서도 기존 인력을 차출하면서 현장의 업무 부담은 더욱 커졌습니다.
특히 국세청이 기존에 담당하지 않았던 국세 외 수입 업무까지 맡게 되면서 현장에서는 "왜 국세청 업무가 아닌 일까지 떠안아야 하느냐"는 불만도 나옵니다.
일부 직원들은 단순히 업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 업무가 조직 전체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더 큰 피로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업무가 힘들더라도 조직 발전을 위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버틸 동기가 생기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회의감이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세청이 가야 할 방향은
그렇다면 국세청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필요한 것은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무회의 대응과 각종 지시사항이 늘어난 것은 국세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모든 업무를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면 부담은 결국 실무자에게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과제가 내려왔을 때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무엇은 뒤로 미룰 수 있는지, 현장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는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내부 필터링 기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업무를 새로 만드는 만큼 기존 업무를 정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회의와 보고, 자료 작성은 한 번 생기면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새로운 업무가 추가된다면 기존 업무 중 줄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청에 집중된 정책·기획 기능을 지방청과 나누는 방안도 거론됩니다. 전국 2만여명 조직을 본청이 모두 끌고 가는 방식으로는 과부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입니다. 조사 기획은 서울청, 체납 정리는 중부청 등 업무 분야별로 지방청의 역할을 키우는 방식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체납관리단처럼 새롭게 추진하는 업무는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도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공간과 예산, 전산 시스템, 업무 매뉴얼이 갖춰지지 않으면 현장의 부담만 커질 수 있습니다.
시범 운영을 통해 문제점을 먼저 확인하고 보완한 뒤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본청 근무를 단순한 승진 코스가 아니라 전문성을 쌓는 자리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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