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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조 물려주는데 사회 환원은 0.9%…'한국형 레거시10' 통할까

  • 2026.05.28(목) 07:00

다시 보는 '한국형 레거시 텐' 도입 제안 토론회
유산 10% 이상 공익법인 기부때, 10% 세액공제
박훈 교수 "유산기부 세제, 공익자원 확대 기능"

상속세는 늘 뜨거운 감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세 부담(법정 최고세율 50%)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되지만, 논의는 번번이 '부자감세' 프레임에 막힌다. 상속세가 부의 대물림을 막는 장치라는 인식이 강한 데다, 정부 입장에서도 세수 감소 부담을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조금 덜 걷더라도 그만큼의 돈이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상속세 완화가 단순한 부자감세가 아니라 공익 확대와 연결된다면 국민인식도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이다.

전문가들이 꺼낸 해법은 '한국형 레거시 텐(Legacy 10)'. 상속재산의 일정 비율을 공익목적으로 기부했을 때, 상속세 부담을 낮춰주는 방식이다.

올해 1월, 국회에서는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한국형 레거시 텐 제도 도입' 정책 토론회가 열린 바 있다. 당시 토론회는 단순한 기부 활성화 논의를 넘어, 세수 감소를 감내하더라도 더 큰 공익재원을 만들 수 있는지 따져보는 자리였다. 토론회 자료와 전문가들의 주장을 다시 들여다봤다.

왜 지금 '한국형 레거시 텐'인가

2011년, 영국 정부(재무부)는 자선단체에 대한 유산기부를 장려하기 위해 획기적인 세제 개편안을 내놨다. 상속재산의 10% 이상을 기부하면 상속세율을 40%에서 36%로 낮게 적용하는 안이었다. 개인 유산의 10%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의미에서 레거시 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 영국에서는 유산기부가 하나의 기부 문화로 자리 잡았다. 

토론회 발제자인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의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유산기부액은 2012년 4조1000억원에서 2024년 7조9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체 자선 기부 규모(약 27조5000억원) 중 유산기부만 30% 수준이다.

그 결과 영국 정부의 상속세 세수는 연간 1050억~2820억원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세수 감소액의 몇 배에 달하는 공익재원이 창출됐다"며 "유산기부 세제는 단순한 세수 손실이 아니라 공익자원을 확대하는 '재정 레버리지'로 기능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에서 '한국형 레거시 텐' 논의가 떠오르는 배경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기부금은 줄고 복지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는, 당시 영국과 비슷한 고민에 직면하고 있어서다. 실제 2023년 기준 국내 전체 상속재산가액은 51조8600억원에 달했지만, 공익법인 출연재산(유산기부)은 4960억원으로 전체의 0.96%에 그쳤다.

박 교수는 "저출산·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로 복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세금만으로 메우지 못하는 사회적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잠들어 있는 0.96%의 유산기부를 깨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 하나의 세법 조문만 바꾸면 된다고 했다. 그가 제안한 방식은 이렇다. '상속세 과세가액의 10%를 초과해 공익법인에 기부 시, 상속세 산출세액의 10%를 공제한다.'

상속세 덜 내면 기부할까…국민 과반은 "그렇다"

흥미로운 건 국민인식이었다. 상속세 감면 혜택이 있는 유산기부가 제도가 도입된다면 "기부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53.3%에 달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전국 50세 이상 성인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현재 제도에서 유산기부를 하겠다는 응답자는 29%로 큰 차이를 보인 부분이 눈에 띈다. 

전문가들도 잠재적인 유산기부 수요를 연결할 제도적 유인이 부족하다고 봤다. 

김희정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한국형 레거시 텐 도입은 기부 참여 인구의 하락세를 반전시키고, 새로운 공익재원을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10년 내에 전체 기부 시장의 판도를 바꿀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사업본부장은 상속재산 대비 1%에도 미치지 못한 유산기부 통계를 들며 "국민의 마음속에는 이미 나눔의 씨앗이 심겨져 있지만, 척박한 제도적 토양이 싹을 틔우지 못하게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부자감세 아니냐"…남은 과제도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이 지난 1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산기부 활성화를 위한 한국의 '레거시 텐(Legacy 10)' 제도 도입에 관한 정책 토론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 월드비전]

현재 국회에서도 한국형 레거시 텐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이른바 '유산기부 세액공제법(상속재산 10%를 초과해 공익법인에 기부, 상속세액 10% 공제)'도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야 간사인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이라는 점에서, '여야 협치' 법안이라는 평가가 많다. 한국판 발렌베리법으로도 불린다. 

일각에서는 고액 자산가에게 추가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이 결과적으로 부자감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단순한 감세정책과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상속세를 덜 걷는 대신 그만큼의 자금이 공익 영역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영국 사례에서도 초기 세수 감소액의 약 9배에 달하는 사회적 편익이 발생했다"며 "세수감소분을 상쇄하고도 남은 민간 재원 유입으로, 복지 사각지대 해소 등 국가 재정 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성도 본부장도 "(발제자 제안대로)이 제도는 외부 회계 감사를 받고 국세청 홈택스에 모든 결산 내역을 투명하게 공시하는 '성실공익법인'에 한해 적용돼야 한다"며 "제도가 도입된다면, 저희 모금회부터 가장 엄격한 기준으로 투명성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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