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에서 본청 조사국장(고위공무원 나급·옛 2급)은 손꼽히는 핵심 보직이다. 상징성을 보여주듯, 역대 조사국장 가운데 국세청장에 오른 인물도 적지 않다. 현 임광현 국세청장 역시 조사국장을 거쳤다.
오랜 기간 이어진 인사 관행 속에서 '조사국장은 조사 경험을 갖춘 인물이 맡는다'는 사실상의 기준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래서인지, 조사국장 인사 자체를 두고 논란이 일어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인사는 달랐다. 인사 발표 직후부터 국세청 안팎에서는 이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사국장 '조사통' 공식 깨졌나
본청 조사국을 이끄는 조사국장은 전국 세무조사의 컨트롤타워다. 세무조사 기획부터 조사 대상 선정, 국제탈세 대응, 탈세 정보 수집·분석까지 조사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자리다.
조사국장 인사에서는 현장 조사 경험이 중요한 잣대로 여겨져 왔다. 실제 역대 조사국장들은 대부분 지방청 조사국장(또는 조사과장)을 거친 이력을 갖고 있다. 이런 인사 관행과 비교하면, 13일자로 본청 조사국장에 오른 이성글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을 둘러싼 우려가 나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이 국장이 지난해 10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으로 발탁될 때도 조사 경험을 둘러싼 우려가 제기됐었다.
서울청 조사4국장은 본청 조사국장과 같은 고위공무원 나급 직위로, 비정기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국세청의 핵심 조사 부서다. 당시 이 국장은 본청 조사분석·국제조사과장 등 조사 관련 보직은 맡았지만, 지방청 조사국장이나 조사과장을 거친 경험은 없었다. 이를 두고 조사 경험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내부에서도 나왔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4년 실시한 세무조사는 총 1만3980건이다. 이 가운데 국제조사 성격의 역외탈세 조사는 208건(1.5%)이었다. 세무업계에서는 전국 세무조사의 대부분이 내국세 조사인 만큼, 내국세 조사조직을 직접 운영한 경험이 필수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세청 조사국 출신 한 세무사는 "조사국장은 세법보다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 조사 감각은 책상에서 배우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익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조사국장은 '조사통' 앉았다
조사국장은 법률상 자격 요건이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어떤 인사가 적합한지를 객관적으로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국세청에서는 오랜 기간 축적된 인사 관행을 통해 사실상의 기준을 만들어왔다.
실제 역대 조사국장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지방청 조사국장 경험은 사실상 공통 분모였다. 대개 고위직에 오르기 전까지, '조사통'이라고 부를 정도로 지방청 조사국장 경력을 다수 쌓았다.
직전 조사국장이었던 안덕수 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지방청 조사국장을 세 차례(부산청 조사1국장·서울청 중부청 조사1국장·서울청 조사4국장)나 한 뒤 본청 조사국장직에 앉았다. 그 이전인 민주원 전 조사국장도 지방청 조사국장직(부산청 조사1국장·중부청 조사1국장·서울청 조사1국장)을 세 차례 맡은 바 있다.
2020년, 본청 조사국장을 지낸 현 임광현 국세청장은 국세청 안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여섯 차례 조사국장' 경력을 갖고 있다. 조사 분야 경험이 풍부한 인물들이 조사국장을 맡아온 인사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면 이성글 국장은 조사 경력 측면에서 역대 조사국장들과 결이 달랐다. 전임 조사국장들이 지방청 조사국장을 수차례 맡으며 조사 현장을 이끌어온 것과 달리, 이 국장의 지방청 조사국장 경력은 서울청 조사4국장 한 차례에 그친다.
조사4국에서도 불거진 '경험론'
이 국장이 서울청 조사4국장 재직 때도 조사 운영을 둘러싼 잡음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6월 실시된 농협중앙회 특별세무조사다.
당시 조사4국은 월요일(6월 29일)에 조사에 착수했고, 이후 조사 현장에서는 '4국 세무조사'라고 적힌 메모가 발견되면서 보안 관리 논란이 불거졌다.
조사4국 출신 세무사들에 따르면, 대규모 비정기 세무조사는 조사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전날 조사팀을 집결시킨 뒤 다음 날 착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요일에 집결하면 주말 동안 조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화요일이나 목요일 착수가 많다고 한다.
조사4국 출신 한 세무사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조사 착수 시점도 조사 운영 노하우의 하나"라며 "이런 부분은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체득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을 빗대 "월드컵을 앞두고 중·고등학교 때 선수 경험조차 없는 사람이 국가대표 감독을 맡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했다.
실제 이번 조사국장 인사는 순탄치 않았다. 지난 3일 국세청 고위공무원 인사에서는 조사국장을 공석으로 둔 채 인사가 발표됐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인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조사국장 인사가 별도로 단행되면서, 국세청 안팎에서는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또 다른 조사4국 출신 세무사는 "조사 방향을 잘못 잡으면 중요한 조사보다 우선순위가 낮은 사안에 역량이 투입될 수 있다"며 "전국 조사조직을 총괄하는 만큼 조사 경험을 갖춘 전문가가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세무조사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조사국장 인사는 단순한 보직 변경으로만 볼 수 없다. 이번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 배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