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을 보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부터 떠오를까? 대부분은 무슨 말인지 모를 '외계어' 같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과세표준, 간이과세, 복식부기, 이월공제, 의제매입세액공제, 물납 등 한국어가 맞는지 의문을 품게 하는 세법을 접하는 납세자들은 으레 세무대리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최근 삼쩜삼 등 세금신고플랫폼의 시장이 확장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그런데, 납세자가 세금을 신고하기 위해 세무대리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세금신고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박훈 한국세법학회장(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은 택스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운 세법으로 인해 납세자가 힘들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세금 신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 주기의 '잦은 세법개정'도 납세자들을 힘들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1년 단위로 정부 관료들을 평가하다 보니, 세법도 1년 주기로 개정을 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의 조세제도 설계가 어렵다.
더구나 땜질식으로 세법을 개정하다 보니,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며 납세자들이 세법을 이해하기 더 힘들어졌다는 지적이다.

Q. 우리나라 조세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 현재 우리나라의 세법 개정은 관료 중심인 정부가 주도한다. 세법 개정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담당하는데, 세제실장의 임기는 보통 1년 정도다.
그래서 세법개정안을 성과와 연결 지어서 봤기 때문에, 결국 1년만에 개정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세법 개정을 긴 호흡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세법은 일본의 제도를 많이 참고하는데, 중요한 차이는 일본의 고위직이나 실무자는 자주 교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세제발전심의위원회와 유사한 조직이 있는데 위원장에게 예산과 권한을 줌으로써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한다.
세제가 우리나라에 맞게 발전하려면, 연구를 많이 해야한다는 점에서 세법 개정은 1년 만에 답이 나올 수 없다.
부동산 세제를 보더라도 부동산 경기가 등락했을 때 급박하게 세제개편이 이뤄졌다. 이전 정부도 세제실이 아닌 국토교통부가 중심이 돼서 세법 개정을 이끌었기 때문에 나중에 부작용이 컸다.
Q. 세법 개정 주기를 지금보다 늘린다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나라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집권 초기 1~2년은 선거공약에 따른 실행이 이뤄지고, 3년 차부터 안정기로 들어가서 세법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5년 차는 대선을 앞두고 있어 세법 개정을 하지 못한다.
결국 집권 초기 1~2년에 조세개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대적인 세제개편을 해왔다.
우선 세법개정은 2년에 한 번은 쉬었다가 가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유산세 방식인 상속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안이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조세특위(조세 제도를 검토하고 개선하는 특별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다뤘지만 아직까지 개편이 안 됐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유산취득세 개편을 추진했다가 뒤로 미뤘다.
이런 사안은 큰 변화이기 때문에 오픈해서 계속 의견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조세특위도 1년 넘게 활동해 조세제도를 일부 개편했다. 이러한 성과들이 축적된다면, 이는 특정 정권의 업적을 넘어 지속가능한 국가적 성과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하다 못해 2년에 한 번 세법개정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진척이라고 할 수 있다.
Q. 지금도 세법개정 과정에서 연구용역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다. 그런데 왜 계속 의견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시는지
=정부는 세법개정 진행 과정을 오픈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 보다는 진행 과정을 공개해서 의견을 충분히 들어본 개정해야 한다.
조세제도가 발전하려면 관료나 제한된 전문가 그룹뿐 아니라 세금을 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어떤 상황인지를 검토해 실행해야 한다.
세금 제도를 잘 만드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다. 우리나라 제도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기업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도 꾸준히 살펴봐야 한다.
우리나라 조세제도는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제도들이 섞여 있다. 배경이 다른 걸 섞으니까 작동이 되지 않고, 메시지가 달라져 버린다.
단적인 예로 일본의 '상속세 정산제도'를 들 수 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대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현상 유지를 위해 부를 계속 움켜쥐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일본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증여세는 낮게, 상속세는 높게 가져간다. 자녀에게 증여하면 10% 정도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상속세를 제대로 정산한다.
살아 생전에 젊은 세대에게 증여해 부를 이전하는 것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다.
우리나라는 증여에 대해 세금을 깎아준다라고 접근을 하니까, 일본과 유사한 제도인 '창업자금 증여세 과세특례'를 도입했어도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부의 무상 이전에 대해서 철학을 갖고 도입됐지만, 우리나라는 증여에 대한 정서적인 반감이 있어서 작동이 제대로 안 됐다. 해외에 있는 좋은 제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더라도, 우리한테 맞는지 검토해야 한다.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 용어 TIP!
일본의 상속세 정산제도는 2003년에 도입돼, 생전에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20%의 단일세율로 증여세를 부과하고, 이후 상속 시 해당 증여세를 상속세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제도는 고령화 사회에서 부의 이전을 촉진하고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설계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상속세 정산제도를 직접적으로 도입한 사례는 없지만, 2005년 창업자금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를 만들 때 '사전 상속에 대한 차원에서 100분의 10의 특례세율로 증여세를 과세한 후 상속 시점에서 정산'하고 있어 해당 요건이 다르지만, 정산한다는 의미를 도입한 바 있다.

Q. 우리나라 조세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 일단 우리나라의 세법(용어, 세금 신고 방식 등) 자체가 어렵다는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
근로자는 연말정산으로 고민하지 않게 하고, 사업자라면 세금 신고에 너무 신경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전문가(세무대리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세금 신고가 가능한데, 세금 신고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조세제도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양도소득세 같은 경우는 잦은 개정으로 인해 세무사들도 포기할 정도다.
세금은 한 번 생기면 잘 없어지는 않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국세는 세목이 14개, 지방세는 11개다. 세목이 이렇게 많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과거 도축세를 폐지 논의를 할 때 공청회에 갔었다. 그 당시 지방세의 세목을 16개에서 10개 이내로 축소하려고 했다. 당시 도축세를 폐지하면, 1년간 세수가 60억원 정도 줄어든다고 예측했다.
이에 지자체는 도축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세목 간소화를 이유로 폐지했다.
중앙정부 차원의 세금은 간소화시켜야 한다. 지방정부 세금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입욕세(온천에 관련된 세금) 등 지자체마다 조례를 통해서 지자체가 필요한 세원을 확보하게 하는 다양한 세금이 있다.
예를 들어 국세는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상속세·증여세 정도로 간소화하고, 지방세는 각 지역 상황에 맞게 운영하게 하는 것이다.
지자체에 맡기더라도, 표심 등을 이유로 세금을 함부로 늘리지 못한다. 지자체에 특성에 맞는 세금이라면, 예를 들어 반려동물 세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 세금을 거둬서 반려동물 돌봄센터 등을 만들면 된다. 그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지자체에서 판단하게 해야 한다.
목적세도 고민해야 한다. 방위세는 폐지됐고,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없어질 듯하면서 계속 유지되고 있다. 환경이 중요하면 환경세로 가면 된다.
세금 고지서를 받으면 농어촌특별세(농특세), 교육세 등이 있는데, 이런 세금을 왜 부과하는지 알 수 없다.
목적세는 일몰 기한이 되면 없애고, 꼭 필요하면 국민 동의를 얻어서 해야 한다.
Q. 조세불복 제도는 사전심사와 사후심판, 국세청과 조세심판원 등 다양한 선택지로 인해 오히려 납세자가 부담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
=현 정부에서 국민권익위원회 중심으로, 행정에 관한 불복 제도를 다 통합하려고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
조세를 포함해 행정 불복 제도 전체를 하나로 모으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전문성을 발휘를 못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현재 세금에 불만이 있는 경우, 국세청·조세심판원·감사원 등 여러 곳에 불복을 제기할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사안인데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심판원은 세금 문제에 전문성을 가진 곳이므로 유지돼야 하지만, 국세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조직 운영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선택지를 다양하게 하는 것보다는 간결하게 하는 것이 좋다. 국세청 내부의 불복절차와 외부 기관의 불복절차를 이원화해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Q. 한국세법학회에서 열릴 올해 첫 학술대회에서 'AI와 조세판례'를 주제로 선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매년 세법학회에서는 지난해의 대법원 판례분석을 해서 3개 정도의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왔다. 다른 조세 관련 학회에서도 비슷하게 대법원 판례를 연구하는데 차별성이 없어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고, 조세판례 연구에 AI를 접목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AI와 관련해서 리걸테크(법과 기술의 합성어)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런 변화에 맞춰 서울시립대에서도 AI 융합대학을 만들려고 한다.
AI를 통해 '가산세의 정당한 사유'를 분석하고 있다. AI를 전공한 교수님과 함께 여러가지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박훈 한국세법학회장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바로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가 됐다.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원장, 한국지방세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세법에 관한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행정안전부 지방세발전위원회 위원, 국세청 납세자보호관,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재정개혁특별위원회(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위원 등을 거치며 한국 조세정책 발전에 기여했다. 지난해 말, 전국의 세법 또는 상법을 전공한 교수와 법조인들이 모여 조세법 분야 발전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인 한국세법학회의 회장으로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