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는 '조제 또는 보존 채소', 라면은 '파스타'.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열풍을 타고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김치·라면·김밥 등 한국 음식이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넓히고 있지만, 통관 현장에서는 여전히 한국 음식이 서양 중심의 분류 체계에 끼워 맞춰지고 있다.
대체 이게 K-푸드 수출과 무슨 상관이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국제적으로는 통관의 기준을 '국제품목코드(HS코드)'로 분류한다. HS코드에 따라 물건의 성격, 관세율이 달라진다. HS코드 때문에 수출기업이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2000억원 이상의 김치를 수출하고 있음에도, 현재 국가마다 김치를 다르게 본다. 실제 인도 세관은 김치를 발효식품이 아닌 단순 절임 채소류로 분류해 통관을 보류했고, 장기간 추가검사를 하다가 유통기한을 넘겨 전량을 폐기하기도 했다.
'케데헌'의 열풍과 달리 수출 시장에서는 K-푸드의 정의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관세청이 김치·라면 등 K-푸드 전용 HS코드 신설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국제 품목분류 체계 안에서 아시아 식품을 독립 품목으로 정립하려는 첫 시도인 셈이다.
HS코드에 따른 품목분류를 중심으로 통관 판단의 기초를 다지는 관세청 세원심사과 오현진 과장과 정상우 사무관에게 K-푸드 HS코드 신설 추진 상황과 그 의미를 들어봤다.
Q. 김치·라면 등 K-푸드 관련 HS코드를 신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HS코드 신설의 가장 큰 의미는 품목분류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통관 과정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있다. 지금은 국가마다 해석이 조금씩 달라 같은 제품이라도 어느 나라에서는 통관이 원활한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현행 관세율표를 보면 식품 분류 체계가 서양 식품 위주로 짜여 있다. 파스타처럼 서구권에서 오래 소비해 온 식품들은 비교적 세분화된 분류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김치나 만두처럼 동양권 전통 식품은 명확한 독립 분류 없이 기존 서양 식품 분류에 끼워 맞춰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만두는 '속을 채운 파스타'로 분류하고 있고, 김밥도 쌀 함량이나 원재료 구성에 따라 세번이 달라질 수 있다.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나라별로 다른 기준에 맞춰야 하다 보니 비용과 시간이 추가로 들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김치 HS코드 신설 논의는 동양 식품을 국제 품목분류 체계 안에서 독립적으로 정립하려는 첫 시도라는 의미도 갖는다. 더불어 김치의 HS코드 신설을 발빠르게 추진하는 것은 업계 요구가 잇따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세계김치연구소, 12월 식품기업 간담회에서 김치 HS코드 신설을 연이어 요청했다.
관세청은 재정경제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K-푸드 전용 HS코드 신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품목 정의를 명확히 하고, 수출기업이 참고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단순히 행정 편의를 넘어, K-푸드가 국제 무역 질서 안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Q. 김치·라면 외에도 수출이 확대된 K-푸드가 많은데, 관세청이 검토 중인 품목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국제 공용 HS코드, 즉 6단위 HS코드를 새로 만드는 것은 해당 품목을 하나의 독립된 상품으로 공식 인정받는 절차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내에서 쓰이는 HSK(10단위) 코드가 있어야 한다.
HSK 코드가 있다는 것은 이미 국내적으로 '이 품목은 따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다는 의미다. 현재 김치·라면·김은 HSK 코드가 있지만, 김밥이나 만두는 아직 없다.
HSK 코드 신설은 관세청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경부 소관으로, 관세청은 업계 수요나 수출입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건의한다. 김밥·만두 같은 품목은 농식품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해 개정 건의를 검토할 계획이다.
또 하나 중요한 기준은 수출 규모다. 세계관세기구(WCO)는 연간 교역액 5000만 달러 이상을 HS코드 신설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라면과 김은 지난해 각각 13억 달러, 10억 달러 이상 수출해 이 기준을 크게 웃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관세청은 라면·김처럼 이미 HSK 코드가 있고, 수출 규모와 국제 인지도가 충분한 품목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와 협력해 국제 공용 HS코드 신설을 추진할 계획이다.
Q. 기존에 HS코드 해석 차이로 분류 분쟁이 발생한 사례가 있는지?
HS코드 해석 차이로 생기는 국제 분쟁을 'HS 국제분쟁'이라고 한다. 최근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지면서 새로운 비관세 장벽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치의 경우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예를 들어 탄자니아는 자국 식품 규격을 만들면서 김치를 코덱스(Codex) 국제 기준과 다르게 정의했다. 색상이나 향, 식감 같은 기준을 추가해 김치를 발효식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한국산 김치 수출이 본격화하면, 현지 기준에 따라 통관이 거부되거나 제품이 폐기될 가능성도 있다. 업계가 국제 표준에 맞는 품목 정의와 HS코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런 분쟁이 발생하면 기업은 제품 가치 손실뿐 아니라 운송비, 보관료, 폐기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특히 유통기한이 있는 식품은 통관 지연 자체가 치명적이다.
Q. 동일한 제품이라도 냉동·상온·즉석조리 여부에 따라 HS코드가 달라질 수 있나?
그렇다. 같은 제품이라도 상태와 가공 방식에 따라 HS코드는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선 채소는 제0701호부터 제0709호로 분류된다. 이를 그대로 또는 삶아서 냉동하면 제0710호가 되지만, 조리·보존 처리를 거쳐 냉동하면 제2004호로 분류된다.
김밥도 마찬가지다. 쌀 함량이 많은 일반적인 김밥은 곡물 조제식료품으로 보지만, 고기 함량이 20%를 넘으면 육류 조제품으로 분류될 수 있다. 상품명은 같아도 성분에 따라 코드와 관세율이 달라진다.
이처럼 식품은 성분·상태·조제 방식에 따라 경우의 수가 많아 품목분류가 특히 까다로운 분야다. 관세청은 매년 산업별 HS 가이드북을 발간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K-푸드를 주제로 한 가이드북을 내놓을 예정이다.
Q. HS코드 변경과 관련해 수출기업이 꼭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꼽는다면?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변경의 성격이다. 세계관세기구의 HS 개정에 따른 국제 기준 변경인지, 아니면 특정 국가의 단독 해석 변경인지 구분해야 한다.
국제 기준이 바뀐 것이라면 여러 나라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지만, 단독 해석이라면 해당 국가에만 적용된다. 이후 관세율 변화 여부, 자유무역협정(FTA) 협정세율 유지 가능성, 원산지 기준이나 검역·인허가 요건 변화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식품류는 오분류 위험이 큰 만큼, 관세청은 수출입 전에 관세평가분류원 사전심사를 받을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실제로 소송까지 가는 사례를 보면 사전심사를 받지 않아 가산세까지 추징되는 경우가 많다.
사전심사는 비용 부담이 없고, 통상 15일 안에 회신을 받을 수 있다. 오분류를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Q. 상대국에서 HS 분류 문제로 통관이 지연될 경우, 관세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가 있나?
수입국에서 HS 분류를 이유로 통관 지연이나 자료 제출 요구가 발생하면 '관세청 HS 국제분쟁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할 수 있다.
관세청은 먼저 해당 국가의 제도와 분류 논리를 분석하고, WCO 자료와 국내외 사례를 종합해 대응 논리를 마련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분류 의견서를 제공하고, 기업이 현지 세관을 설득하는 것이 1차 단계다.
동시에 미국이나 EU처럼 영향력이 큰 국가에 품목분류 사전회시를 신청하도록 기업에 컨설팅하고 있다. 미국은 보통 30일, EU는 3개월 이내에 결과가 나온다. 이런 국가에서 유리한 분류 사례를 확보해 두면, 향후 WCO 논의 과정에서도 중요한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절차로도 해결되지 않으면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재경부 등과 협력해 관세청장 회의나 WCO HS 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한다. 관세평가분류원에 접수한 기업들의 HS 국제분쟁은 2009년 이후 56건이 해결됐고, 관세 약 1조2000억원을 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