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호 관세사(경제학박사)는 이번 기고에서 미·중 경쟁 장기화 속 한국 기업들이 왜 듀얼트랙 공급망을 고민해야 하는지 짚어봅니다. 단순한 통상 이슈를 넘어, 이제 공급망이 관세·재무·데이터·계약 구조까지 연결된 경영 과제가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2026년 5월, 트럼프와 시진핑이 만났다. 그런데 이것이 왜 한국 기업 CFO의 문제인가?
트럼프와 시진핑의 정상회담 이후 금융시장 일부에서는 무역 갈등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일시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반도체·기술 통제 분야에서는 오히려 강화 신호가 이어지면서, 시장의 반응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도 함께 주목해야 한다. 관세 전쟁이 다소 완화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나온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이번 회담의 의미를 단순한 관계 개선으로 해석하면 위험할 수 있다. 오히려 이번 회담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완전히 끊기 어렵다는 현실을 다시 확인한 성격에 가깝다.
즉,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라 "무너질 만큼 싸우지는 않겠다"는 조정에 더 가깝다. 이 관리된 경쟁 구도 아래서는 정치적 긴장이 일시 완화되더라도, 기술·공급망·데이터 영역의 구조적 분리는 오히려 더 정교하게 제도화될 가능성이 높다.
갈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더 촘촘해지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갈등이 불규칙하게 폭발하는 국면보다, 규칙이 있는 경쟁 국면에서 오히려 규정 준수 요건은 더 촘촘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공급망 검증이나 전략산업 통제가 당장 약해진다는 의미와는 다를 수 있다.
이 변화는 한국 수출입기업과 CFO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앞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하나의 질서가 아니라 미국 중심 질서와 중국 중심 질서가 병존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공급망 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비교적 단순했다. 가장 싼 곳에서 생산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송하고, 많이 판매하면 됐다.
이 공급망 논리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미중 무역분쟁이 가시화된 2018년이지만, 2022년 UFLPA(위구르 강제노동방지법) 시행과 반도체·배터리 분야 기술 통제 입법이 더해지면서 변화의 속도와 범위가 달라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어느 나라에서 생산했는지, 어떤 부품이 중국산인지, 미국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은 없는지, 원산지를 입증할 수 있는지까지 설명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미국향 수출 기업들은 단순 원산지증명서만이 아니라 생산 공정과 부품 흐름까지 요구받을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즉 공급망이 단순 물류 문제가 아니라 안보와 통상, 금융과 데이터의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이미 단순 원산지증명서를 넘어서는 공급망 실사를 제도화하고 있다. UFLPA는 특정 품목에 대해 BOM(Bill of Materials,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과 소재의 전체 목록) 단위의 소명 자료를 요구하며, CBP의 우회수출 모니터링도 이미 운영 중이다. 이러한 요건은 앞으로 품목과 산업을 확대하며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질적 생산 공정, 부품 흐름, BOM 데이터, 우회수출 가능성, 중국 연결성까지 함께 보기 시작하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이제는 어디서 만들었는가보다 왜 그것이 한국산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 통관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데이터 관리 문제로 직결된다.
반면 중국 역시 희토류와 핵심소재, 공급망 영향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한국 기업들은 점점 더 어려운 질문을 받게 된다.
"당신은 미국 공급망에 속한 기업인가?"
"중국 공급망과는 얼마나 연결돼 있는가?"
"그 연결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한국은 위험한 위치이면서 동시에 기회의 위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의 위치다. 한국은 미국 안보·기술 블록 안에 있으면서도 중국 제조·소재 공급망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위험한 위치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매우 강력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 기회는 구조를 먼저 정비한 기업에게 열린다. 미국 수출 요건을 데이터로 충족할 수 있는 기업은 글로벌 바이어에게 더 안정적인 공급파트너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앞으로 경쟁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은 기업은 미국 시장만 보는 기업이나 중국 시장만 보는 기업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시장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양쪽 규정을 모두 관리할 수 있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에는 미국 기준에 맞춰 수출하고, 중국 공급망도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업이 앞으로 더 유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반도체·배터리·전장부품처럼 여러 나라의 부품과 소재가 복잡하게 연결된 산업일수록 이런 흐름은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의 핵심 경쟁력은 단순 생산능력이 아니라 연결 능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연결 능력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수출 요건(원산지 기준, 중국산 부품 비중 제한, 부품·원재료 명세서(BOM) 추적 의무 등)을 충족하면서도 중국 공급망의 비용 효율성을 동시에 활용하는 설계 역량을 의미한다. 이는 공급망 데이터 추적 체계, 원산지 설계 능력, 계약 구조 관리, 규정 변화에 대한 선제적 모니터링 능력으로 구성된다.
CFO는 이제 공급망까지 관리해야 한다
여기서 CFO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 등장한다.
이제 기업은 단순히 탈중국 또는 친미 같은 단선적 전략만으로 움직이기 어려워지고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듀얼트랙 구조다.
예를 들어, 미국향 공급망은 미국 규정과 원산지 기준에 맞춰 별도로 운영하고, 비미국향 공급망은 중국 및 아시아 시장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즉 거래선, 원산지 구조, 통관 체계, 계약 구조를 시장별로 다르게 설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향 수출 비중이 큰 글로벌 제조기업들 사이에서는 미국향 제품의 부품 소싱 구조를 비미국향과 점진적으로 분리하는 방향으로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에서 확인되는 움직임이다.
이는 특정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공급망 실사 요건 강화에 대응하는 구조적 필요에서 비롯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향 생산라인과 중국·동남아향 생산라인을 사실상 분리 운영하기 시작한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는 단순 생산 문제가 아니다.
통관, 원산지, 계약, 외환, 데이터 구조까지 모두 함께 설계해야 가능한 전략이다. 특히 미국향 제품에 포함된 중국산 부품 비중과 원산지 입증 구조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는 요구가 현장에서 커지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현실 한 가지: 듀얼트랙은 반드시 공장을 두 개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소기업 수준에서는 미국향 제품과 비미국향 제품의 부품 소싱 문서화 방식을 구분하고, 계약서상 원산지 귀속 조항을 정비하는 것만으로도 리스크를 의미 있게 줄일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설명 가능성이다
특히 앞으로는 설명 가능성이 매우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한국산입니다"라고 말하는 시대가 아니라, 왜 한국산인지, 어떤 공정을 거쳤는지, 중국 부품 비중은 얼마인지, 실질적 변형이 어디서 발생했는지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점검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는 것이다. 미국향 수출 비중이 전체의 20% 이상인가? 완성품에 중국산 부품이 포함되는가? 수입 통관 시 원산지증명서 외 추가 서류를 요청받은 적이 있는가? 이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지금 공급망 구조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급망은 이제 제조 문제, 통관 문제, 관세 문제, 데이터 문제, 재무 문제가 동시에 얽힌 구조로 변하고 있다. 따라서 공급망 점검은 구매팀만의 일이 아니고, 통관 담당자만의 일도 아니다. 재무, 법무, 구매, 물류, 영업이 함께 봐야 할 경영 과제가 되고 있다.
관세는 이제 세금을 넘어 경영 변수다
이 때문에 CFO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CFO가 환율과 자금만 관리했다면, 앞으로는 공급망 리스크, 관세 구조, 원산지 리스크, 데이터 추적 구조, 현금흐름 영향까지 함께 봐야 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이 연결 구조는 재무 결과로 직접 나타난다. 관세율이 10%포인트 이상 상승할 경우, 수입 원가 비중이 높은 기업은 매출총이익률이 수 퍼센트포인트 직접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통관 지연이 2주 이상 발생하면 재고 회전율과 운전자금 사이클이 함께 늦어지며, 원산지 문제로 통관이 보류될 경우 납품 지연에 따른 계약 패널티까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관세가 오르면 매출총이익률이 흔들리고, 통관 지연이 생기면 재고와 운전자금(기업이 일상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현금 및 자금)이 묶이며, 원산지 문제가 발생하면 판매계약과 납품 일정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 점검은 재무팀 단독으로 끝나지 않는다. 원산지 설계는 관세사, 계약 구조 정비는 법무 전문가, 회계 반영 방식은 회계사와 세무사의 영역이 동시에 연결된다. 즉 공급망 리스크 점검은 본질적으로 다분야 협업 구조가 필요한 작업이다.
특히 관세는 더 이상 단순 비용이 아니다.
어떤 구조로 수입하고, 어떤 국가를 거치고, 어떤 계약 조건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기업 손익과 현금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경영 변수다. 같은 품목이라도 공급국, 생산공정, 거래조건, 원산지 입증 방식에 따라 부담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단순 제조기업인가, 전략적 가교 기업인가"
이번 트럼프·시진핑 회담이 기업에 주는 진짜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미국과 중국은 경쟁을 멈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기전 체제로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단순히 싸게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두 개의 질서를 동시에 이해하고, 설명 가능하며, 공급망과 통관 구조를 설계할 수 있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모든 기업이 같은 방식의 듀얼트랙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미국 매출 비중, 중국산 부품 의존도, 전략 품목 해당 여부, 대체 공급망 확보 가능성에 따라 전략은 달라져야 한다.
결국 앞으로의 경쟁은 가격 경쟁만이 아니다.
누가 더 안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 누가 더 신뢰 가능한 공급망을 설명할 수 있는가의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단순 제조기업인가, 아니면 미국과 중국 사이를 연결하는 전략적 가교 기업 (두 개의 공급망 질서를 동시에 이해하고 설계할 수 있는 기업)이 될 수 있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한 첫 번째 실무적 조치는 멀리 있지 않다. 현재 미국향 제품의 BOM에서 중국산 부품 비중을 확인하고, 원산지 입증 자료가 미국 세관국경보호청(CBP) 기준을 충족하는지 점검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이것이 "전략적 가교"로 가는 실질적 첫걸음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우리 회사의 공급망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 미국향 제품에 어떤 중국산 부품이 들어가는지, 원산지 입증 자료는 준비되어 있는지, 계약상 관세 부담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통관 지연이나 제재 리스크가 현금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이 공급망 지도는 내부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원산지 설계의 적정성과 계약 조항의 리스크 배분은 관세사·변호사·회계사·세무사와 함께 검토해야 온전한 그림이 완성된다.
트럼프·시진핑 회담은 한국 기업에 안도 신호이면서 동시에 경고 신호다. 갈등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관리되는 경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준비된 기업은 양쪽 질서를 연결하는 가교기업이 될 수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기업은 양쪽 규정 사이에서 비용을 떠안는 기업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미국향과 비미국향 공급망을 나누어 볼 수 있는지, 중국 연결성을 데이터로 설명할 수 있는지, 통관·원산지·계약·외환 구조를 함께 점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듀얼트랙은 대기업만의 전략이 아니다. 규모와 상관없이, 미국향 수출에 중국산 부품이 포함된 기업이라면 지금 이 점검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첫 번째 행동이다.
☞ 신민호 관세사(경제학 박사)는?
현 서울관세사회 회장이자 대문관세법인 대표 관세사.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건국대에서 국제상무 전공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무법인 율촌·충정 등 대형 로펌에서 관세통상 자문을 이끌었으며, 미국 워싱턴 D.C. 글로벌 로펌 파견 경험을 통해 독보적인 국제 통상 식견을 쌓았다. 실무와 정책을 아우르는 공급망 전략가로서 『2026 쇼크: 공급망은 이미 전쟁터다』, 『트럼프 2.0의 경고』 등을 집필하며 기업들의 글로벌 생존 전략을 선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