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호 관세사(경제학박사)는 이번 기고에서 관세청 행정 변화의 핵심은 무엇이고, 우리 기업들은 앞으로 무엇을 점검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제시한다.

지난 3월 필자는 세 차례의 기고를 통해 중동 전쟁을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공급망 구조를 흔드는 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일부 기업들이 다소 먼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쟁 발발 이후 수 주가 지나면서 상황은 빠르게 현실이 되고 있다. 국제유가는 상승했고, 환율은 급등했다. 주식시장은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산업 현장의 체감경기는 전혀 다르다.
유가보다 무서운 것은 환율이다. 최근 한 석유화학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렇게 말했다. "유가가 오르는 것도 부담인데, 환율까지 오르니 같은 원료를 사는데 필요한 돈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이 말은 지금 기업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지금 기업들이 겪는 문제는 단순한 원가 상승이 아니다. 원재료 가격 상승, 운임 증가, 환율 상승, 금융비용 확대가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 충격이다. 특히 화학·철강·자동차부품·기계 업종은 고유가·고환율·고금리의 삼중 압박을 체감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유가 상승을 가장 큰 위험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CFO 입장에서 더 무서운 것은 환율이다. 유가는 일부를 가격에 반영할 수 있지만, 환율은 같은 물량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현금 자체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비용이 아니라 현금흐름이다.
관세청은 왜 지금 움직였을까
이런 상황에서 최근 관세청이 발표한 원유 공급망 다변화 지원 정책은 단순한 행정 개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관세청은 미국산 원유 수입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었던 자유무역협정(FTA) 직접운송 원칙을 완화하고,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의 품목분류를 신속하게 결정했으며, 말레이시아산 원유의 원산지증명서 발급 지연 문제 해결에도 나섰다.
언뜻 보면 관세행정의 기술적 조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다르다. 정부가 공급망을 더 이상 물류 문제로 보지 않고 경제안보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과거 관세행정의 역할은 수입신고를 심사하고 관세를 부과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공급망 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미국산 원유는 제3국을 경유하는 경우가 많아 FTA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일부 정유사는 미국산 원유를 수입하면서도 직접운송 요건을 입증하지 못해 관세 혜택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특례는 단순히 관세를 줄여주는 정책이 아니다. 미국산 원유 도입을 늘리고, 중동 의존도를 낮추며, 에너지 공급망을 재설계하는 정책이다.
호주산 나프타 대체품에 대한 품목분류 결정도 마찬가지다. 관세 부담과 비축의무를 제거함으로써 기업들이 새로운 공급원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정부는 공급망을 경제안보로 보기 시작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관세청이 움직인 시점이다. 정부는 지금의 위기를 단순한 유가 상승으로 보지 않고 있다. 만약 그렇게 판단했다면 비축유 방출이나 가격 안정 대책 정도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관세청은 공급망 구조 자체를 바꾸기 위한 제도 개편에 착수했다. 이는 정부가 현재 상황을 일시적 가격 충격이 아니라 구조적 공급망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더 나아가 이는 공급망 정책이 산업부나 에너지 정책의 영역을 넘어 관세행정의 핵심 과제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공급망은 더 이상 물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경제안보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관세청의 이번 조치는 그 변화의 선도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공급망은 이제 CFO의 문제다
기업도 같은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많은 기업들이 아직도 공급망을 구매부서나 물류부서의 업무로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공급망은 CFO의 문제이자 이사회의 문제다.
어느 국가에서 원료를 조달할 것인가. FTA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가. 원산지 입증 구조는 안정적인가. 환율과 물류 리스크를 동시에 고려한 조달 전략을 갖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더 이상 운영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 경쟁력의 문제다. 특히 공급망 충격은 가장 먼저 재무제표에 나타난다.
관세가 오르면 매출총이익률이 흔들리고, 통관이 지연되면 운전자금이 묶인다. 원산지 문제가 발생하면 납품 일정과 매출 인식 시점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결국 공급망은 재무 문제다.
지금 기업이 점검해야 할 네 가지
이제 기업들은 최소한 다음 네 가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첫째, 특정 국가 의존도가 과도한 원재료와 부품이 있는가. 둘째, 현재 활용 중인 FTA 혜택을 충분히 받고 있는가. 셋째, 원산지 입증 체계와 공급망 데이터가 실제 검증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인가. 넷째, 환율·관세·물류비 상승이 동시에 발생할 경우 현금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공급망 리스크는 이미 시작된 것일 수 있다.
전쟁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중동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전쟁 그 자체가 아니다. 전쟁을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관세청의 이번 조치는 공급망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바라본 선도적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 관세행정을 넘어 산업, 금융, 물류, 에너지 정책 전반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기업 역시 같은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준비된 기업은 공급망 재편을 비용 증가로만 보지 않는다. 새로운 조달 구조를 설계하고,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찾으며, 경쟁사보다 먼저 리스크를 관리한다. 반대로 준비되지 않은 기업은 같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더 큰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관세는 세금이 아니라 구조다. 통관은 비용이 아니라 전략이다. 공급망은 물류가 아니라 리스크 구조다. 그리고 리스크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 신민호 관세사(경제학 박사)는?
현 서울관세사회 회장이자 대문관세법인 대표 관세사.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건국대에서 국제상무 전공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무법인 율촌·충정 등 대형 로펌에서 관세통상 자문을 이끌었으며, 미국 워싱턴 D.C. 글로벌 로펌 파견 경험을 통해 독보적인 국제 통상 식견을 쌓았다. 실무와 정책을 아우르는 공급망 전략가로서 『2026 쇼크: 공급망은 이미 전쟁터다』, 『트럼프 2.0의 경고』 등을 집필하며 기업들의 글로벌 생존 전략을 선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