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세관에 숫자를 유난히 잘 보는 직원이 들어왔다.
기업의 수출입 신고 내역과 외화 송금 자료를 한꺼번에 펼쳐놓고도 당황하지 않는다. 수입한 물품값과 해외로 보낸 돈이 왜 다른지, 특정 해외 거래처와 수상한 거래가 반복됐는지를 빠르게 찾아낸다.
기존 직원들이 업체 한 곳을 분석하는 데 수일에서 수 주씩 걸렸지만, 이 직원은 약 1분이면 일을 끝낸다. 분석이 끝나면 업체의 위험점수와 의심 거래 유형, 눈여겨봐야 할 해외 거래처까지 보고서로 정리한다.
여러 업체가 한꺼번에 들어와도 불평하지 않는다. 수십곳에서 수백곳까지 동시에 분석할 수 있다.
이름은 '페치(FETCH)'. 수색견이 냄새를 추적해 사냥감을 찾아온다는 뜻의 영어 단어 'fetch'와 이름이 같지만, 서울세관 FETCH가 물어오는 것은 사냥감이 아니라 외환범죄 단서다.
물론 FETCH는 실제 공무원이 아니다. 서울세관 외환조사 직원들이 개발한 '무역·외환 우범업체 자동분석 모델'이다.

숫자더미 속 거짓말 찾는다
외환범죄를 찾으려면 물건과 돈의 흐름을 함께 살펴야 한다.
수출입 신고만 보면 정상적인 거래처럼 보여도 외화 송금 자료와 비교하면 숫자가 맞지 않을 수 있다. 수입한 금액보다 해외로 훨씬 많은 돈을 보냈거나, 신고한 수출 규모와 실제 받은 대금 사이에 큰 차이가 나는 식이다.
그동안 수사관들은 관세청과 외국환은행의 방대한 자료를 내려받아 하나씩 비교했다. 이 초기 분석에만 수일에서 수 주가 걸렸고, 담당자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결과에도 차이가 생겼다.
하지만 FETCH는 과거 외환조사에서 자주 발견된 범죄 수법은 수사관의 체크리스트처럼 적용하고, 인공지능(AI)은 데이터 속에서 유난히 튀는 거래나 복잡하게 얽힌 해외 거래관계를 찾아낸다.
종합분석보고서도 뚝딱
FETCH는 수상한 업체를 찾아낸 후 분석보고서도 만든다.
보고서에는 업체별 위험점수와 주요 위험요인, 의심되는 범죄 유형, 핵심 해외 거래처가 담긴다. 수사관은 어떤 업체와 거래부터 살펴봐야 할지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기존에는 한 업체를 분석한 뒤 보고서까지 직접 작성해야 했지만, FETCH는 모든 과정이 약 1분 내외로 줄어든다. 관세청은 FETCH를 활용하면 분석 시간이 기존보다 약 99% 단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체씩만 분석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수십, 수백개 업체를 동시에 비교할 수도 있다. 개별 거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업체 간 연결관계나 수상한 자금 흐름도 포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사 결정은 수사관의 몫
다만 FETCH가 높은 위험점수를 매겼다고 곧바로 외환범죄 업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FETCH의 역할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수상한 단서를 찾아 수사관에게 가져오는 데까지다. 실제 위법성이 있는지, 조사에 착수할지는 사람이 판단한다.
FETCH가 수색견의 역할을 한다면, 외환조사 직원은 수색견이 찾아온 흔적을 확인검토하고 실제 범죄 단서인지 확인한다.
최경식 서울세관 외환조사총괄과 직원은 "외환수사는 초기 혐의업체를 찾기 위해 관세청과 외국환은행의 방대한 데이터를 교차 분석해야 해 수일에서 수 주가 걸리고, 수사관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분석 결과에도 편차가 있었다"며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자동화와 표준화를 목표로 현업 수사관의 전문지식과 LLM의 코딩 능력을 결합해 FETCH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