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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사 50년]AI 시대, 관세사는 사라질 직업일까

  • 2026.09.04(금) 07:00

②통관업자에서 국가자격사로…기술이 바뀔 때마다 달라진 역할

관세사의 역사는 단순한 자격사 연혁이 아니다. 외국인이 통관을 주도하던 시절부터 국가에서 인정하는 전문 자격증을 가진 직업(국가전문자격사)의 탄생, 업무의 컴퓨터화(전산화), 자유무역협정(FTA), 그리고 인공지능(AI) 시대까지, 국경을 넘는 물건을 누가 판단하고 책임질 것인가를 둘러싼 변화의 역사다. 한국관세사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관세사의 뿌리와 역할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짚어본다.

배가 들어오면 밤새 준비해서 세관이 문을 열자마자 달려갔다

여인찬 관세사가 기억하는 1960년대 통관 현장이다.

전자통관이 일상이 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여 관세사가 밤을 새우고 세관에 달려갔던 이유는 종이 신고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고서는 모두 손으로 작성했고, 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세관에 접수해야 물건을 빨리 받을 수 있었다.

수입물품은 화주들에게 소중한 재산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물건을 찾으려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로부터 60여년.

전자통관은 당연한 시대가 됐다. 이제는 AI가 등장해, 수출입 서류를 읽고 신고서 초안까지 만드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사람이 하던 일이 점점 기계로 넘어가는데, 관세사는 왜 필요할까.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긴 때를 돌아봐야 한다. 

정부, TO 대신 '자격'을 택했다

1960년대 말부터 무역이 빠르게 커지면서 통관업무는 단순 신고대행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품목을 어떻게 분류할지, 물건의 가격을 얼마로 봐야 관세를 매길지, 환급은 어떻게 할지 등 전문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이 늘어났다.

당시에는 자격고시에 합격한 통관업자라도 세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영업할 수 있었다. 정부가 지역별로 통관업자의 숫자까지 정하는 TO 제도를 운영했다.

하지만 무역이 커질 때마다 허가권을 늘리고 줄이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결국 통관업자 허가가 아닌, 누가 이 일을 할 전문성을 갖췄는가를 따지기로 선택했다.

1975년 12월 22일, 관세법 개정을 통해 관세사 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1976년 제1회 관세사 자격시험에서 59명이 합격했고, 같은 해 9월 5일 한국관세사회가 출범했다.

1976년 9월 5일 한국관세사회 창립총회 기념사진. [제공: 한국관세사회]

관세사의 업무 범위는 통관업자보다 훨씬 넓어졌다. 수출, 수입, 반송 절차 대행뿐 아니라 관세 상담, 이의신청, 심사청구 대리 등 다양한 전문 업무를 맡게 됐다.

1995년에는 처음으로 관세사법이 제정되어, 이듬해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관세사 제도는 관세법 내의 하나의 제도에서 벗어나, 독립된 전문자격사 법체계를 갖추게 됐다. 관세환급 청구 대리 등 직무도 더 명확해졌다.

하지만 정작 관세사의 일하는 방식을 가장 크게 뒤흔든 것은 법이 아니었다.

컴퓨터의 등장이었다.

관세사 시장 첫 위기는 'EDI' 등장

1990년대부터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통관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EDI(전자자료교환) 통관자동화 6개년 계획이 수립됐다. 1994년에는 수출 EDI가 전면 도입됐고, 1996년에는 수입통관 EDI도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후 국가관세종합정보시스템인 유니패스가 구축되면서, 신고, 심사, 검사, 사후관리 등 통관 과정 전체가 전산망으로 통합됐다.

이제 더 이상 세관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신고서를 들고 뛰어가는 일은 없어졌다.

관세사들은 자신의 일을 컴퓨터에게 빼앗기는 것처럼 느꼈고, 실제로 EDI 도입에 위기감을 가졌다. 

실제 파일전송 방식의 통관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할 당시 관세사들에게 직접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관세사 업계가 망한다"고 강하게 반발하며 참여를 거부했다. 결국 외부 민간업체가 사업을 맡게 되면서 과실은 민간업체가 가져가게 됐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EDI가 통관 시장에 자리 잡으면서, 관세사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요구됐다.

수입 물품의 품목 분류, 과세가격의 적정성, 적용 세율 판단 등 전문성이 중요해졌다. 관세사의 업무는 단순 처리에서 전문적 판단으로 바뀌었다.

2010년대 들어 FTA가 본격화되면서, 관세사에게 또 다른 과제가 생겼다.

기업의 원산지 관리체계를 만들고 인증수출자 취득을 지원하고, FTA 특혜세율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했다. 나중에 원산지가 문제될 경우에 대비해 입증자료를 정리하고 세관이나 상대국의 사후검증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가 됐다.

이전에는 단순히 신고서를 제출하던 관세사가, 이제는 기업의 무역 리스크를 관리하는 전문가가 됐다.

그리고 관세사들은 현재 또 다른 과제에 직면해 있다. 

AI 시대, 관세사가 필요한 이유

AI는 단순히 신고서를 전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수출입 관련 서류를 읽어 신고에 필요한 정보를 뽑아낼 수 있고, 신고자료의 오류나 이상 징후를 찾거나 위험도가 높은 거래를 선별하는 것도 가능하다.

1990년대 컴퓨터가 주로 처리를 대신했다면 AI는 사람이 했던 판단의 일부까지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질문은 조금 더 근본적이다.

AI가 신고서를 만들고 오류까지 찾아낸다면 관세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관세사회는 관세사의 업무 중 최종적인 법률 판단과 책임을 지는 역할이 중요해졌다고 전망한다.

AI가 신고자료 검증과 오류 탐지, 위험요소 선별 등 반복적인 업무를 맡더라도 신고 내용이 실제 거래와 맞는지, 어떤 법령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은 관세사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확정된 새로운 권한은 아니며, 관세사회가 제안하는 미래 방향에 가깝다.

관세사 50년의 역사를 보면 한 가지 답이 보인다.

사람이 직접 수행하는 업무의 비중은 감소했지만, 인간이 내려야 하는 최종적인 판단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1976년 관세사 제도가 만들어질 때 정부가 내세운 질문도 결국 '전문성'이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AI가 국경을 넘는 물건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시대, 마지막 판단과 책임까지 기계에 맡길 수 있을까.

관세사 제도 다음 50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참고자료: 한국관세사회 발간 『무역강국의 숨은 주역 관세사 50년사』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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