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수출입 서류를 읽고 신고서까지 작성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사람 손을 거쳐야 했던 통관 업무가 하나 둘 자동화되면서 관세사 역시 사라질 직업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온다.
정재열 한국관세사회장의 생각은 반대다. 단순히 신고서를 작성하고 전송하는 일은 AI가 대신할 수 있지만, 기업의 수출입을 관리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넓다는 것이다.
원자재 하나가 제때 통관되지 않아 공장이 멈출 수도 있고, 잘못된 신고가 나중에 거액의 세금 문제로 돌아올 수도 있다. 마약이나 불법물품처럼 국경에서 걸러내야 할 위험도 있다. 정 회장이 관세사를 '제2의 세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관세사가 발전하는 기술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는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통관 전산화가 시작됐을 때도 AI가 등장한 지금과 비슷했다.
당시 관세사업계에서는 자동화 시스템에 직접 참여하라는 제안을 받고도 "이러다 관세사가 망한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변화의 물결을 멈출 수는 없었다.
전자통관화가 진행되며 종이 신고서를 들고 세관으로 달려가던 일은 사라졌지만 관세사라는 직업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품목분류와 과세가격,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 기업의 무역 리스크를 판단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정 회장은 택스워치와의 인터뷰에서 "관세사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에서 관세사가 왜 만들어졌고, 통관업자에서 국가전문자격사로 어떻게 바뀌었는지, 전산화와 FTA를 거치면서 무슨 역할을 해왔는지를 알아야 스스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관세사 50년사'를 발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단순히 연혁과 사진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세관화물취급인부터 통관업자, 1976년 관세사 탄생, 전산화와 FTA, AI 시대까지 관세사의 변천사를 하나의 이야기로 담았다.
택스워치는 관세사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정 회장에게 관세사의 지난 50년 역할, 수수료 덤핑과 시장 규모 문제 해결 방안, AI 시대 관세사의 미래에 대해 질문했다.
Q. 관세사회 창립 50주년을 맞아 '관세사 50년사' 책을 발간하셨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관세사 직업의 변천사를 다루셨는데, 기초자료가 부족해 책을 집필하는데도 힘들다고 들었다. 이렇게 힘들게 작업한 이유가 무엇인가?
관세사들도 관세사 제도의 역사를 잘 모른다. 해외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관세사 제도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제도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제도를 들여왔다. 일본은 세관에서 허가하는 화물취급인, 통관업자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지금도 세관이 TO를 허가하는 방식으로 무역을 관리한다. 중국도 관세사 시험이 있긴 하지만 공산당 체제 아래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6년부터 관세사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관세사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이는 통관 업무를 정부가 직접 통제하지 않고, 민간 전문자격사에게 맡긴다는 의미다. 현재 우리나라 통관 물량의 95%가 관세사를 통해 처리된다.
우리나라처럼 통관이 자유로운 나라는 세계에서 드물다. 관세청은 2005년 전자통관시스템 '유니패스'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우리나라는 무역과 통관이 매우 편리한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처럼 수출입 통계가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특송이나 해외직구 통관이 빠른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해외직구 시 세관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관세사 제도가 생긴 1976년에는 수출액이 100억 달러도 되지 않았다. 2025년에는 7000억 달러를 넘었다. 우리나라가 무역강국이 되는 데 관세사들도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관세사들이 이런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관세사 50년사를 준비하게 됐다.
Q. 최근에는 관세 시장에 수수료 덤핑, 타 전문자격사에 비해 작은 시장 규모 때문에 관세사 스스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황이다. 관세사 제도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관세사들도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저는 관세사 회원에게 전문성, 자부심, 사회적 공헌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항상 강조한다.
관세사는 전문자격사이기 때문에 무역에 대한 전문성은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다.
두 번째는 자부심이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무역강국이지만, 과거에는 해외에서 물건이 들어오면 세관 직원이 거의 전부 검사하고, 수출도 공무원이 도장을 찍어줘야 나갈 수 있던 시대였다. 지금은 유니패스라는 시스템을 활용하면 대부분의 절차가 자동화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과정에서 분명히 관세사의 역할이 있었지만 관세사들 스스로가 그걸 잘 모르다보니, 자부심을 갖기 어려웠다.
그런 생각 때문에 50년사도 연혁만 정리하는 수준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관세사가 왜 생겼고, 어떻게 발전했는지, 해외 제도와 무엇이 다른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와 비전을 하나의 이야기로 담자고 했다.
사실 이 책을 만들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도 있다. 관세사 제도를 만든 분이 김욱태 전 관세청장인데 그 분에게 왜 이 제도를 만들었는지 직접 묻고 싶었다.
그런데 워낙 연세가 많고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그것이 가장 아쉽다.
결국 역사를 알아야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그래야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있다.
저는 관세사들이 단순히 통관해서 수수료 받는 직업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나라 수출입을 관리하는 데 함께 역할을 해온 전문자격사라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관세사를 '제2의 세관'이라고 표현한다. 돈을 버는 전문자격사이지만 동시에 공공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Q. 관세사가 '제2의 세관'이라는 표현은 처음 들어봤다. 관세사가 어떤 공공성을 가져야 하나?
무역은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지만, 마약이나 불법외환, 테러물품 등 좋지 않은 물품도 함께 들어올 수 있다.
해외직구도 마찬가지다. 해외직구가 편리하지만, 식품 위생 문제나 마약, 불법 의약품이나 건강식품 등이 들어오는 폐해도 있다.
소나무를 병들게 하는 솔잎혹파리도 해외에서 들어온 것이다. 코로나도 해외에서 들어온 전염병이다. 이런 것들 모두 공항이나 항만에서 들어온다.
관세청(세관) 공무원이 5000명 정도인데 이를 다 관리할 수 없다. 수출입 신고는 세관에 들어가기 전에 관세사의 손을 거친다. 그 단계에서 '이 물건은 문제가 있다', '이건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을 먼저 살피고 세관과 협력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저는 관세사를 '제2의 세관'이라고 표현한다.
최근 마약 반입이 늘었는데, 1차 저지선은 세관, 2차 저지선은 우체국이라고 한다. 그런데 관세사는 '0차 저지선'이다.
실제 관세사가 수입물품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 세관 직원에게 검사를 권유했고, 밀수를 적발한 사례도 있다.
관세사 제도가 생긴 배경에는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도 있었다. 밀수를 통해서 지금의 삼성이 됐다는 것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수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밀수를 방지하고 무역강국으로 성장하는 데에도 관세사의 역할이 있었다.
※ 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은?
1966년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이 울산에 요소비료공장을 건설하면서 일본에서 들여온 사카린 원료 등을 건설자재인 것처럼 꾸며 밀수입한 사건이다. 당시 정부와 세관이 삼성의 뒤를 봐줬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고 기업활동에서 물러났다.
이 시기에는 관세사 대신 세관이 허가한 통관업자가 수출입 신고 대행업무를 맡았다. 통관업자와 세관 사이의 유착관계가 밀수와 부조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밀수를 '5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세관과 통관업자 유착 관계를 끊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1976년 등장한 국가전문자격사인 '관세사'는 이런 시대적 배경 위에서 탄생했다.
Q. 우리나라 밀수 근절에 관세사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됐다. 관세사가 자부심을 가져야 할 전문자격사이지만, 시장 규모가 작아 수수료 덤핑이 심하다는 것이 발목을 잡는 것 같은데, 해결방법이 있을까?
전문자격사는 일반 국민이 처리하기 어려운 분야의 전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관세사도 무역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것인데, 시장 규모가 7000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제가 관세사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관세 수수료 시장 규모를 1조원까지 늘리겠다고 했는데, 사실 쉽지 않다.
적절한 보상이 이뤄져야 서비스 품질이 향상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시장 규모를 키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관세사 시장은 경쟁이 심하다. 과거 통관업자처럼 TO를 세관에서 허가해 주는 제도였다면 경쟁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수수료가 자율화돼 있어 어떤 사람은 10원에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50원에 할 수도 있다. 공정거래법 때문에 수수료를 법으로 정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경쟁이 심하고 단가는 떨어진다.
다만 경쟁하면서 전문성을 높이고 더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도 생긴다. 서비스의 수요자가 기업이기 때문에 그런 경쟁은 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측면도 있다고 본다.
Q. 기업 입장에서는 관세사를 단순히 수출입 신고를 대신해주는 사람 정도로 보는 경우도 많다. 관세사가 가진 전문성은 무엇인가?
과거에는 관세가 굉장히 중요했다. 관세율이 80%, 30%에 달하기도 했다. 관세율 자체가 높아 기업들이 관세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넘어가고 FTA가 확대되면서 관세율이 낮아지니까 기업들의 관심이 많이 줄었다. FTA를 적용받아 관세율이 0%가 되는 품목도 있다.
그런데 요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때리면서 다시 기업들이 "관세가 뭐야?"라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법인세나 세무조사에는 굉장히 신경을 쓰는데, 사실 관세도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한다.
관세사는 한 기업과 계속 거래하면서 그 회사의 수출입을 관리한다.
예를 들어 어느 회사가 새로운 물건을 수입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관세사를 통해 어떤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수출입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외환인데, 외환 문제도 동전의 양면처럼 무역과 연결돼 있다.
예전에는 기업 내부에 통관부서가 있었지만 지금은 관세사에게 아웃소싱하는 경우가 많다. 관세사가 기업의 수출입 관리를 맡는 것도 그런 개념이다. 세무사나 회계사에게 전문서비스를 맡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Q. AI 등장으로 이제 수출입 신고는 관세사의 손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보는가?
사실 유니패스를 만들기 전에 관세사에게 기회가 많이 있었다고 본다. 통관이 자동화되기 전에는 관세사들이 손으로 수출신고서를 작성했다.
그러다가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전산으로 입력하기 시작했다. 이때 전산 입력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한데, 그것이 통관 플랫폼이다.
처음에는 파일전송 방식으로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을 통한 자동화 시스템이 있었다.
지금은 전자통관 시대로 가면서 KTNET 없이도 자체 시스템을 만들거나 통관시스템을 갖춰 세관 유니패스에 접속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KTNET을 통해야만 세관에 수출입 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때 관세사들에게 기회가 있었다. 처음 KTNET 시스템을 구축할 때 관세사들에게 해보라고 했지만 관세사들이 거부했다. '관세사 업계가 망한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 사이 KTNET이 들어왔다.
두 번째 기회는 인터넷 시대에 있었다. 그때도 관세사들이 빨리 플랫폼을 만들어서 자체 플랫폼을 확보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를 소홀히 했다. 그래서 또 뺏겼다.
이제 AI 시대가 왔다. AI 시대에는 빨리 관세사회에서 통합 플랫폼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제가 작년부터 'AI 통합 플랫폼을 우리 것으로 만들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Q. 관세사회의 AI 통합 플랫폼 구축은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앞으로 만들 계획이다. 큰 관세법인들은 자체적인 플랫폼을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소 관세법인이나 1인 관세사가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만들기는 어렵다.
관세사회 플랫폼을 통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AI 통합 플랫폼이 구축되면 개별적으로 만든 것도 표준화되고 흡수될 수도 있다. 이것이 하나의 과제다.
문제는 예산이다. 관세사회가 직접 구축하려면 비용 문제가 있다.
마음 같아서는 관세청에서 하나 만들어줬으면 좋겠으나, 관세청은 정부기관이다. 관세사 일부를 위해 정부 예산을 지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쉽지 않다.
관세청에서 만들기 어려우면 좋은 시스템을 가진 업체하고 하면 된다. 관세사회가 법정단체이기 때문에 플랫폼의 주도권은 관세사회가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민간 시스템 업체와 협약을 맺더라도 판권은 관세사회가 가지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만큼 업체에 이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추진할 수 있다.
Q. 시대가 변할 때마다 관세사의 역할도 바뀌었다. AI 시대에 관세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관세사가 하는 일은 수출입 통관을 대행해주는 것이다. 기업이 수출입 통관을 하려면 사람을 써야 하는데, 그 업무를 관세사라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에서 원자재 하나가 수입되는 과정에서 통관이 안 되면 공장이 멈출 수도 있다. 나중에 큰 세금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계속 관리해주는 게 통관서비스다.
법률서비스의 경우 AI에 이것저것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회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수출입 무역 관리는 AI가 모두 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마약이나 병충해 등을 막는 '제2의 세관'으로서 수출입을 관리하는 역할까지 AI가 대신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워낙 수출입 관리가 잘돼 있어서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여기에 구멍이 나는 순간 문제가 커진다.
그래서 저는 관세사가 AI 시대에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전문자격사라고 본다.
☞정재열 관세사회장은?
1960년 전북 전주 출생으로 행정고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해 주상하이영사관 영사, 관세청 혁신기획관, 서울세관 심사국장, 관세국경관리연수원장, 인천공항세관장, 관세청 기획조정관을 거쳐 서울본부세관장과 부산본부세관장을 지냈다. 이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과 BTLS관세법인 고문으로 활동했다. 2023년 제27대 한국관세사회장에 선출됐으며, 2025년 연임에 성공했다. 현재 관세사의 전문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K-관세사 문화' 정착과 업무영역 확대, 관세시장 규모 1조원 달성을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