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업은 다음 관세율을 예측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신민호 관세사는 미국이 관세와 연결하려는 정책 목표가 무엇인지 살피고, 그 영향이 자사의 생산거점과 원재료 조달, 협력업체, 계약 구조, 손익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미리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의 상당 부분을 위법으로 판단했을 때, 많은 기업들은 이제 관세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2월 20일 IEEPA가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기업들로서는 광범위한 IEEPA 관세가 제한되면 미국의 관세 압박도 일정 부분 약해질 것으로 예상할 만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법 제122조에 따른 한시적 글로벌 관세를 먼저 도입했고, 그와 별도로 강제노동을 이유로 한 무역법 제301조 조사와 관세 조치를 추진했다.
그리고 지금 기업들이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또 하나의 301조 조사, 바로 '구조적 공급과잉(Structural Excess Capacity and Production)' 조사다.
정확히 말하면 122조 관세가 끝난 뒤 강제노동 301조가 이를 단순히 대신한 것은 아니다. 각 조치는 법적 근거와 정책 목적이 다르며 별도의 절차로 진행됐다. 다만 한 관세수단이 제한되더라도 미국이 다른 통상법 수단을 병행해 관세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많은 기업들이 "강제노동 301조 관세가 시행됐는데 공급과잉 관세까지 또 부과되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별도의 공급과잉 관세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에 따라 관세를 포함한 추가 조치가 검토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할 필요는 있다.
미국은 왜 '공급과잉'을 문제 삼는가
미국이 공급과잉을 문제 삼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미국은 일부 국가들이 정부 보조금, 국영기업 지원, 저금리 금융, 수출 중심 산업정책 등을 통해 시장 수요를 넘어서는 생산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값싼 제품이 세계 시장으로 유입되고, 미국 제조업과 일자리가 훼손된다는 것이 미국의 논리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적 공급과잉은 기업 한 곳의 재고가 일시적으로 늘어난 상태와 다르다. 시장 수요보다 큰 생산설비와 생산능력이 정부지원이나 정책금융 등에 힘입어 장기간 유지되고, 그 물량이 수출시장으로 밀려 나오는 구조를 뜻한다.
미국은 대규모·지속적인 무역흑자, 낮은 설비가동률, 사용되지 않는 생산능력, 정부지원과 정책금융, 국영기업의 역할 등이 이런 구조를 보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미국의 이러한 판단이 곧 모든 외국의 산업지원 정책이 부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며, 조사 과정에서 국가별·산업별 사정이 별도로 검토돼야 한다.
조사 대상도 매우 광범위하다. 철강과 알루미늄은 물론 자동차, 배터리, 반도체, 기계류, 화학제품, 플라스틱, 조선, 태양광, 전자제품 등 공급과잉 논란이 제기되는 다양한 제조업 분야가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 역시 조사 대상 16개 경제권 가운데 하나다.
다만 한국이 조사 대상이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한국산 제품에 관세가 부과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 위험도는 산업과 품목, 생산능력, 정부지원 구조, 대미 수출 규모, 미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조사 과정에서 정부와 무역협회의 공급과잉에 대한 의견과 근거자료 제출 등 적극적인 대응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강제노동 관세와 공급과잉 조사는 무엇이 다른가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강제노동 관세와 공급과잉 조사는 법적 근거는 같은 무역법 제301조이지만 정책 목적과 조사 대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강제노동 301조는 각국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이를 실제로 집행하는 체계를 갖추었는지를 평가하는 조사다.
반면 공급과잉 301조는 국가의 산업정책, 생산능력, 정부지원과 그 결과 나타나는 무역 영향을 대상으로 한다. 즉 하나는 노동 기준과 수입금지 집행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 구조와 생산능력이 대상이다.
따라서 기업이 준비해야 할 자료도 다르다. 강제노동 조사에서는 원재료의 생산지역과 공급업체, 노동환경, 추적 가능성이 중요하다면, 공급과잉 조사에서는 생산능력, 설비가동률, 정부지원 여부, 수출 증가율, 가격구조와 같은 산업·재무 데이터가 중요해질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공급과잉 조사 결과에 따라 별도의 301조 조치가 내려질 경우, 기업들은 새로운 관세 체계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최종적인 세율과 적용 방식은 조사 결과와 미국 정부의 결정에 따라 달라질 예정이며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가능한 조치는 반드시 일률적인 관세에 한정되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은 조사 결과와 협상 과정에 따라 관세, 수입제한, 쿼터, 양자합의 또는 기타 대응수단을 검토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단계에서 특정 세율을 전제로 단정하는 것은 이르다.
최근 시행된 강제노동 301조 관세는 122조 조치와는 별도의 정책 목적 아래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광범위한 관세 압박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됐다. 공급과잉 301조 조사는 그보다 더 장기적으로 제조업 생산능력과 산업정책을 통상 쟁점으로 다룰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
기업 현장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필자가 접한 기업들의 문의와 현장 사례를 비식별화해 보면, 한 국내 자동차부품 업체는 미국 바이어로부터 공급망 실사 자료 제출을 요구받고 있다. 또 다른 화학기업은 미국 시장 판매 전략을 다시 검토하면서 생산거점과 원재료 조달선을 재설계하고 있다.
현재 바이어의 요구가 곧바로 공급과잉 301조 조사에 따른 법적 의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미국 기업들이 관세·제재·공급망 위험을 거래 상대방에게 미리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HS코드와 원산지가 통관의 핵심이었다. 원산지와 HS코드는 지금도 통관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이제는 공급망 구조, 정부 지원 여부, 생산능력, 노동 기준까지 기업 경쟁력의 일부가 되고 있다.
미국 바이어는 제품이 어디에서 생산됐는지만이 아니라, 가격경쟁력이 정부지원이나 과잉설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핵심 원재료는 어느 국가에서 조달되는지, 관세가 부과될 경우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까지 질문할 수 있다.
수출기업 CFO가 지금 준비해야 할 세 가지
수출기업 CFO가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미국 매출 비중이 높은 제품군을 중심으로 공급과잉 조사 대상 업종과 얼마나 연결되는지 점검해야 한다.
제품별 미국 매출액, 주요 바이어, 시장점유율, 미국 내 경쟁제품, 최근 수출 증가율을 함께 봐야 한다. 한국이 조사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기업의 위험이 동일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생산거점과 원재료 조달 구조를 다시 살펴야 한다.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고 해당 국가나 품목이 미국의 조사·통제 대상과 연결될수록 통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완제품의 원산지만이 아니라 핵심 부품과 소재의 공급국, 대체 공급처 확보 여부, 공급망 변경에 필요한 비용과 기간도 계산해야 한다.
셋째, 미국의 통상정책을 '관세율'이 아니라 '정책 방향'으로 읽어야 한다. 다음 관세율을 정확히 예측하려 하기보다 미국이 문제 삼는 생산능력, 정부지원, 공급망 집중, 대미 무역흑자와 같은 요소가 자사 사업구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야 한다.
CFO는 세 가지 숫자를 계산해야 한다
여기에 CFO가 반드시 추가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관세 시나리오를 숫자로 만드는 것이다.
첫째, 품목별 추가관세가 10%, 15%, 25%로 부과될 경우 미국 판매가격과 매출총이익률이 어떻게 변하는지 계산해야 한다.
둘째, 관세 부담의 0%, 50%, 100%를 미국 바이어나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을 때 각각 판매량과 이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야 한다.
셋째, 생산거점이나 원재료 공급처를 바꾸는 데 드는 일회성 투자비용과 장기적인 관세 절감 효과를 비교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숫자가 있어야 공급망 이전, 가격 재협상, 미국 현지생산, 대체시장 확대 가운데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이 만드는 것은 새로운 세율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무역 질서에 가깝다. 세율은 그 결과일 뿐이다. 더 본질적인 목적은 기업의 생산거점, 투자, 조달선과 공급망 선택을 바꾸는 데 있다.
관세는 더 이상 국경에서 부과되는 세금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산업정책 수단이고, 공급망 정책 도구이며, 국가안보 정책의 방편이 되고 있다.
기업도 CFO와 같은 시각에서 준비해야
이 대응은 재무팀이나 통관 담당자 한 사람의 업무로 끝날 수 없다.
관세·통상 전문가는 조사 범위와 품목별 위험을 분석하고, 생산·구매 부서는 생산능력과 공급망 데이터를 정리하며, 법무팀은 미국 바이어와의 가격·관세 부담 조항을 점검해야 한다. CFO는 이 결과를 손익과 현금흐름의 언어로 통합해야 한다.
리스크는 발표된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가 바뀌는 순간부터 관리하는 것이다. 공급과잉 301조의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준비할 시점이다. 조치가 확정된 뒤 공급망을 바꾸는 기업보다, 조사 단계에서 위험 품목과 재무 영향을 미리 계산한 기업이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신민호 관세사(경제학 박사)는?
현 서울관세사회 회장이자 대문관세법인 대표 관세사.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건국대에서 국제상무 전공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무법인 율촌·충정 등 대형 로펌에서 관세통상 자문을 이끌었으며, 미국 워싱턴 D.C. 글로벌 로펌 파견 경험을 통해 독보적인 국제 통상 식견을 쌓았다. 실무와 정책을 아우르는 공급망 전략가로서 『2026 쇼크: 공급망은 이미 전쟁터다』, 『트럼프 2.0의 경고』 등을 집필하며 기업들의 글로벌 생존 전략을 선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