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회계·세금 이야기 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민주정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시민들이 민회에 모여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다. 그렇다면 민주정치를 운영하던 아테네 사람들은 세금을 어떻게 부담했을까?
흥미롭게도 고대 아테네에서는 오늘날의 소득세처럼 시민에게 정기적으로 직접세를 부과하는 방식이 국가재정의 중심은 아니었다. 대신 전쟁과 같은 비상시에는 재산을 기준으로 에이스포라(eisphora)라는 특별부담금을 부과하였다.
더 재미있는 제도는 부유한 시민에게 특정한 공공사업의 비용을 직접 부담시키는 리투르기아(liturgia)였다.
세금 대신 군함 한 척을 맡기다
대표적인 리투르기아가 트리에라르키아(trierarchy)이다. 당시 아테네의 군사력을 뒷받침한 것은 삼단노선(trireme)이라는 군함이었다. 수많은 노잡이가 3단으로 배치된 빠른 군함으로,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이 군함을 운용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했다. 아테네는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을 부유한 시민에게 맡겼다. 쉽게 말해 정부가 부자에게 "올해 세금을 조금 더 내시오" 라고 하는 대신, "올해는 당신이 군함 한 척의 운영을 맡아주시오" 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부자는 돈만 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공적인 의무를 수행한다는 명예도 얻었다. 따라서 리투르기아는 오늘날의 조세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었다. 세금과 명예로운 공공봉사가 결합된 독특한 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나보다 저 사람이 더 부자입니다
그런데 부자로 지목되어 군함 운영비를 부담하게 된 사람에게도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왜 하필 나인가? 나보다 훨씬 부자인 사람이 있는데" 아테네에는 이런 불만을 해결하는 아주 독특한 제도가 있었다. 안티도시스(antidosis)이다.
공공부담자로 지목된 사람이 자신보다 더 부유하다고 생각되는 다른 사람을 지목하여 그 사람이 부담을 대신하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재산교환을 둘러싼 법적 절차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 데모스테네스의 연설문 'Against Phaenippus'에는 트리에라르키아 부담자로 지목된 사람이 자신보다 파이니포스가 더 부유하다고 주장하며 안티도시스를 요구한 사건이 남아 있다.
2300여 년 전 아테네에서도 이미 "누가 더 부자인가?", "누가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조세이론에서 말하는 담세력에 따른 과세라는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기원전 4세기 후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에서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넘어 인도 서북부까지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알렉산드로스가 기원전 323년 사망하자 제국은 여러 왕국으로 나뉘었다. 이때부터를 흔히 헬레니즘 시대라고 한다. 세금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즉,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이 세금도 바꾸었다."
아테네의 세금이 시민공동체의 공공부담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면, 헬레니즘 왕국에서는 넓은 영토와 수많은 주민을 통치하기 위한 왕국의 체계적인 조세행정이 중요해졌다. 그 대표적인 곳이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와 그 후손들이 지배한 이집트이다.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에도 50% 관세가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 관세도 상당히 흥미롭다. 기원전 259년경 파피루스 자료에는 이집트로 들어오는 물품에 실제로 부과된 관세가 기록되어 있다.
일부 포도주·식초·기름에는 50%, 키오스·타소스산 포도주 항아리와 말린 무화과에는 33⅓%, 꿀·치즈·소금에 절인 생선과 고기·견과류에는 25%, 양모에는 20%의 세율이 나타난다.
특히 이집트 국내 독점산업과 경쟁하는 수입품에는 높은 관세가 부과되었다. 현재 미국의 강력한 보호관세와 같은 세금이 약 2300년 전에도 존재했다는 점이 놀랍다.
소금세를 걷으려니 사람부터 세어야 했다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토지와 농업생산물은 물론 여러 경제활동에서 다양한 세원을 확보하였다. 그 가운데 재미있는 것이 '소금세(salt tax)'이다. 이름만 들으면 소금을 살 때마다 내는 오늘날의 소비세 같은 세금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당시의 소금세는 실제 소금 소비량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이라기보다 사람에게 일정액을 부과하는 '인두세'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남성과 여성에게 적용되는 세액도 달랐고 일부 특권계층에는 면제가 인정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려면 국가가 먼저 사람이 몇 명인지 알아야 한다. 누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누가 세금을 냈고 누가 아직 내지 않았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세금을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결국 납세자를 파악하고 기록하는 행정체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세금의 역사를 보면 국가가 인구와 재산을 조사하고 기록하려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2000년 전 세금영수증이 아직도 남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사람들이 세금을 내고 받은 실제 세금영수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종이 대신 파피루스뿐 아니라 깨진 도자기 조각인 오스트라콘(ostracon)도 글을 기록하는 데 사용하였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고대문화연구소에는 초기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이집트 테베의 세금과 관련된 오스트라카가 소장되어 있다. 연구자들은 그 가운데 그리스어와 이집트 민중문자(Demotic), 또는 두 문자가 함께 쓰인 세금영수증 61점을 정리하여 연구하였다.
여기에는 세금을 납부한 사람의 이름과 세금의 종류, 납부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2천 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 우리가 그 시대의 세금제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이유도 이러한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시대의 세금 역사를 비교하면 흥미로운 변화가 보인다.
아테네에서는 부유한 시민에게 군함의 운영을 맡기는 것처럼 시민이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부담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헬레니즘 왕국으로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넓은 영토를 지배하는 왕은 토지와 생산물을 파악하고, 납세자를 등록하고, 세금을 걷고, 누가 세금을 냈는지를 기록해야 했다. 즉, 시민의 공공부담에서 국가의 조세행정으로 세금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조세행정은 이후 훨씬 더 거대한 국가를 건설한 로마에서 더욱 발전한다. 로마가 헬레니즘 왕국들을 차례로 정복하면서 지중해의 패권을 가져오게 된다.
마지막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가 B.C. 30년 로마에 편입되면서 헬레니즘 시대의 종말을 고한다. 로마는 정복한 속주에서 세금을 걷었고, 세금징수를 민간업자에게 맡기기도 했다. 심지어 상속과 노예해방에도 세금을 부과하였다.
다음 호에서 살펴 볼 세금의 역사는 이제 거대한 제국을 움직이는 재정의 역사로 넘어가게 된다.

☞이동건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일회계법인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며 Tax본부 파트너를 지냈다. 한국공인회계사 시험 세법 출제위원,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2021년 국립한밭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