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회계·세금 이야기 ②
회계의 기원은 인류가 처음 공동생활을 시작한 선사시대부터이며, 이후에도 회계는 인류 문명과 함께 발전해 왔다. 재산의 현황을 기억하기 위해 회계가 탄생한 이후 문명 시대는 물론 근현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회계 정보를 기록하는 방식만 변화해 왔을 뿐 인류의 삶을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기록한다는 회계의 근본 목적과 기능은 변함이 없다.
회계는 인류가 경제 활동과 관련한 기본적인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겨났으며, 사회가 발전하면서 더 많은 회계 정보가 필요하게 되자 여기에 맞춰 함께 발전해 온 것이다. 이번 두 번째로 시대별 회계의 발전과정과 그 배경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고대(BC 4000년~AD 1000년) '왕실 수탁회계'
선사시대에 도구를 사용하여 셈을 해오던 회계는 인류의 문명 탄생 및 문자의 발명과 더불어 발달하여 왔다.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여 회계기록을 행한 사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그리스 및 로마시대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의 중동지역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서 발원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기원전 약 3400년 경에 최초의 문자가 이라크 남부에서 발명되었다. 충적토로 만든 점토판에 갈대 줄기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 글자를 표기하여 '쐐기문자' 형태를 띠고 있으며, 주로 회계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쐐기문자로 보릿가루와 맥아의 수량을 기록한 점토판, 염소를 매매한 사실을 기록한 점토판이 발견되기도 했다.
도시국가인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기원전 1750년 경 함무라비왕이 제정한 함무라비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의 원칙에 따라 주로 형법 규정과 엄벌주의로 유명하다. 다만, 형법 규정뿐 아니라 현대의 민법이나 상법에 해당하는 혼인·이혼 등 가족관계, 소유관계, 채무, 이자 등 상거래 등도 규정하고 있다. 상업기록으로는 곡물, 물고기, 노예, 우마, 토지 등의 매매, 금전 대여와 이자 등에 관한 규정이 있어 이미 그 시대에 사유재산과 채무 등의 회계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점토판 대신 파피루스라는 종이를 사용하였다. B.C. 3000년경 나일강 유역에서 발원한 이집트 문명은 상형문자, 신관문자 등을 사용하여 왕실의 재정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이때의 기록관은 매우 높은 관직으로 인정되었고, 그의 최고의 직무는 세입세출에 관한 국고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금·은·동 등은 화폐로서의 충분한 가치로 인정되지 못했으며, 물물교환에 따르는 물량기록이 더욱 일반적이었다.
고대 국가의 회계 특징은 '수탁회계'로 정의할 수 있다. 즉, 이집트의 경우 왕은 신과 같은 절대권력을 가진 존재로서 왕실의 재산을 기록관이 정확하게 잘 관리할 책임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경우 왕은 신을 대리하는 존재로서 신전에 바치는 재산을 잘 관리할 목적으로 회계가 발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왕실의 재산이 모자라는 경우 본인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즉, 고대에는 신을 대리하는 여부를 떠나 왕실의 재산을 목숨을 걸고 책임지고 수탁하여 관리하는 '스튜어드십(Stewardship)' 회계의 특징을 지닌 것이다.
중세(1000년~1750년) '장원회계 및 복식부기 탄생'
중세봉건사회에서는 토지를 보유한 영주의 토지대장, 농노가 영주에게 바치는 공납품이나 지대의 관리를 위한 '장원회계'가 중심이 되었다. 장원회계는 영주의 사유지인 장원을 중심으로 한 영주와 대리인 사이의 대리인회계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영주의 재산을 관리하는 수탁자는 자기보호 및 보수적인 입증수단으로서의 회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이 때까지는 재산을 정확하게 기록·관리하는 단식부기의 형태를 가진다.
11세기 이후 주로 이탈리아 상인들이 지중해의 상권을 독점하면서 상업의 발달에 따라 복식부기가 탄생하게 된다. 중세 봉건사회가 무너지면서 중앙집권국가가 형성되고, 국왕과 상업자본이 제휴하면서 상업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즉, 새로운 항해기술로 원거리 모험무역이 생기고, 상인에서 조합(Partnership) 형태로 상업조직이 발달하면서 자본과 이익의 구분, 투자자 보호, 이익분배 등 복잡한 회계 문제가 생기고 이는 거래를 두 번 기록하는 '복식부기'의 탄생을 가져오게 된다.
현대 회계의 뿌리인 복식부기는 지중해 무역의 융성과 더불어 이탈리아에서 발달하였으며, 계정과목이나 대차기입의 방법은 문예부흥의 중심지인 피렌체·제노바·베네치아 등의 도시국가에서 발달하였다. 13세기부터 이탈리아 상인들에게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능력이 광범위하게 보급되고, 종이의 발명에 의한 문서화가 용이하게 되었다. 또한, 상인들은 북아프리카와의 교역을 통해서 아라비아 숫자를 습득하고 로마시대로부터 전수된 화폐제도에 접목시켜 복식부기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그 당시 베네치아에서 상인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복식부기법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여 일반에게 복식부기의 원리를 소개한 최초의 저서가 있다. 바로 1494년에 출판된 베네치아의 수도사이자 수학자인 루카 파치올리의 "산술·기하·비율 및 비례총람"이다. 파치올리가 설명한 복식부기의 구조에서 상업장부로는 일기장·분개장 및 원장의 3종이었다.
일기장에는 매일의 영업거래를 빠짐없이 누가(who), 무엇을(what), 언제(when), 어디서(where)를 기록하여 그것을 분개장에 기록하고, 분개에 따라 원장의 각 계정에 전기하였다. 마감으로는 손익계정 및 잔액계정이 사용되었으나 그 당시는 정기적인 결산을 행하지 못했으며 장부 마감도 실지 재고조사에 의하지 않았다. 기초에 재산목록이 작성되었으나 결산에서는 재산목록을 작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완전했던 파치올리 부기가 보완되면서 점차 현대적 복식부기로 발달하였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파치올리의 복식부기를 포함한 이탈리아 부기법의 특징은 회계의 주요 목적을 소유자를 위한 정보를 마련하는데 두었으며, 소유자의 개인적 및 경영업무에 관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고하도록 하였다는데 있다. 그 당시에는 회계기간 개념이나 기업 계속성 개념은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화폐단위가 불안정하여 회계측정 기준으로서 만족할 수 없었다.
근대(1760년~1930년) '산업회계'
근대회계의 발달은 주도적 상권의 이동과 산업의 발달에 따라 진전되었다. 19세기초 이후 상권이 지중해에서 대서양 연안국으로 이전되고 산업발전과 기술혁신을 동반한 산업혁명이 진전됨에 따라 이런 요인들은 회계의 발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근대회계의 발전 요인은 산업혁명의 진전과 주식회사의 발달을 들 수 있다.
산업혁명은 18세기말부터 19세기 중엽에 걸친 새로운 기계 발명과 기술혁신에 따른 변혁으로서 영국에서 시발하여 프랑스·독일·미국으로 전파되었다. 영국과 미국에서의 기술의 발달과 제조공업의 확대로 제품의 정확한 원가계산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재고자산의 평가문제, 제조간접비의 배부 등 일련의 원가계산방법이 발달되었고 계산된 원가는 제품가격의 결정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산업혁명 이전에는 대부분의 기업이 소규모이므로 고정자산에 대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감가상각비를 감안한 정확한 손익계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는 대규모 기계의 발명으로 자산의 정확한 평가, 원가계산의 정확성, 기간손익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취득원가를 기준으로 감가상각의 계상은 자산평가나 원가계산에서 매우 중요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20세기 초에 주식회사 제도가 출현·발달함에 따라 투자자들은 소액으로 무기한으로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을 찾게 되었고, 기업 입장에서도 기계와 공장 등 대량생산의 전제가 되는 자본수요를 투자자로부터 조달할 수 있게 되어 기업을 계속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소위 '계속기업'의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 이와 같이 기업의 계속성에 따라 회계기간의 단축 및 결산의 정기화, 납입자본의 충실화, 자본적·수익적 지출의 구별, 손익측정 시 발생주의 및 실현주의, 채권자 보호를 위한 자산평가의 보수주의 및 충당금 개념 등 일련의 회계이론과 방법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 발달은 자본의 거대화와 기업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이윤만 분배받는 '부재주주'의 등장으로 주주 수의 증대를 촉진하였다. 기업은 이들 부재주주를 비롯한 채권자·종업원·소비자·국가공공기관 등 이해관계자에 대한 이해조정책임과 여러 가지 사회적 책임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기업은 일정기간의 재무상태와 경영성과를 재무제표라는 수단에 의해 정기적으로 공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중세시대까지는 회계장부의 작성을 국왕·영주·상인 등 소유자 입장에서만 하였으나, 근대 산업혁명 이후 주식회사 형태의 출현 등으로 회계정보는 여러 이해관계자의 목적에 맞도록 제공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현대(1930년~ ) '국제회계'
1930년 이전의 회계는 자유방임주의 하에서 각 기업이 자체적인 회계처리 및 보고를 하던 시대였다. 즉, 통일된 회계원칙의 부재로 기업 간의 비교가능성은 떨어지고, 회계처리 및 보고는 당시 기업의 자금원이었던 은행, 채권자의 입맛에 맞게 경영자가 자의적으로 연도별 손익을 적절히 안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렇게 많은 기업들의 부적절한 재무보고 관행은 미국에서 1929년 대공황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하여 회계정보공시에 관련된 모든 누적된 문제점이 한꺼번에 폭발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회계정보의 신뢰성은 크게 손상을 입게 되었다.
추락한 재무보고의 신뢰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미국연방정부는 1933년 증권법과 1934년 증권거래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투자자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 법률은 재무보고의 책임을 지고 있는 경영자의 부정이나 오류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시켰다. 증권법과 증권거래법을 토대로 하여 증권거래위원회와 미국공인회계사회는 사례별 접근방법을 사용하여 재무보고의 질적 향상을 현저하게 도모하는 일련의 회계처리 및 재무보고지침을 발달시켰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비로소 오늘날 정보이용자 중심의 현대적 의미의 재무보고가 나타나게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엔론 사태, 2017년 우리나라의 대우조선해양 사태 등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회계부정은 회계기준의 단일화는 물론 감사인의 독립성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국가간 자본시장이 개방되어 자본의 유입·유출이 빈번해진 현재 국가간의 상이한 회계기준으로 인해 통일된 회계기준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국제적으로 통일된 회계기준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그 동안 미국에 의해 주도되던 회계기준 정립은 2000년대 이후에는 IASB(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 Board)에서 국제회계기준 제정을 주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에 맞추어 외국인투자를 촉진하고 자본시장의 유동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취지에서 '국제회계기준(IFRS: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을 도입하기로 하고 원칙적으로 적용대상은 상장기업, 수용시기는 2009년부터 선택 적용, 2011년부터는 전면 적용하였다. 국제회계기준을 채택하는 두 가지 목적은 ①재무제표의 비교가능성을 높이고, ②재무제표 작성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회계기준은 각국의 규칙 중심의 회계기준을 '원칙중심의 회계기준(principle-based accounting standards)'으로 재무보고를 위한 개념체계를 기준으로 세부 항목들은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재량적으로 처리를 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졌다.
기존의 일반기업회계기준은 규칙 중심으로 비교적 각 사건마다 구체적인 회계처리의 지침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국제회계기준은 규칙이 아닌 원칙을 중시함으로써 비교적 기업들에게 회계처리의 재량을 부여했다. 국제회계기준은 애초부터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므로, 개별 국가가 필요로 하는 특정 회계처리를 사실상 제시하기 어렵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제회계기준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 취득원가와 같은 역사적원가에 기초한 측정에서 공정가치 측정으로 대폭 그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는 역사적원가에 비해 공정가치가 경제적 의사결정에 보다 목적적합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데 근거한다. 국제회계기준의 기본 재무제표는 개별기업의 재무제표가 아니라 연결재무제표이다. 여러 기업들이 사실상 하나의 경제적 실체를 구성한다면, 지배기업이 종속기업과 완전히 하나일 때를 가정하여 재무제표를 산출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동건 교수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삼일회계법인에서 30년 동안 근무하며 Tax본부 파트너를 지냈다. 한국공인회계사 시험 세법 출제위원,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2021년 국립한밭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