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해외에 안 나갔는데요."
해외 결제 내역을 살펴보던 세관 직원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카드는 외국에서 사용됐지만 카드 명의자는 그날 한국에 있었다. 최근 해외여행을 다녀온 기록도 없었다. 사람은 국내에 있는데 카드만 해외에서 긁힌 것이다.
이 직원은 단순히 결제 내역만 보고 의심한 게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의 출입국 기록과 해외 카드, 계좌 거래 자료를 한꺼번에 펼쳐놓고 결제가 일어난 시점에 명의자가 실제로 해외에 있었는지를 샅샅이 살폈다.
수십만건 거래내역을 보고도 출입국 기록과 결제 날짜를 빠르게 비교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거래만 골라내 조사관에게 데이터를 넘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갖춘 걸까?

서울세관에서 근무하는 이 직원의 이름은 한살핌 주무관. 출입국 기록과 카드·계좌 거래 자료를 한꺼번에 살펴 수상한 거래를 찾아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거래내역을 한번에 스캔하는 한 주무관은 사실, 관세청이 개발한 빅데이터·인공지능(AI) 기반 '외환범죄 탐지 시스템'이다.
불법 외환거래를 찾으려면 물건이나 돈의 흐름만 봐서는 안 된다. 해외에서 카드가 사용됐다는 사실만으로는 누가 결제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카드 명의자가 직접 여행을 가서 사용했을 수도 있고, 국내에서 해외 온라인몰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한 주무관은 이 때, 출입국 기록을 추가로 살핀다. 출국 기록이 없는데 현지에서 결제가 반복됐거나, 명의자의 동선과 금융 거래가 맞지 않으면 확인이 필요한 거래로 분류한다.
서로 성격이 다른 출입국 자료와 해외 결제 자료를 연결해 이상한 지점을 찾아내는 '이종 데이터 교차 분석'을 활용하는 것이다.
두꺼운 장부 두 권을 한꺼번에 읽는다
그동안 타인 명의의 카드나 계좌를 활용한 외환거래를 찾으려면 조사 직원이 방대한 자료를 직접 비교해야 했다.
출입국 기록에서 해외 체류 여부를 확인하고, 다시 해외 결제 내역을 열어 거래 날짜와 국가를 맞춰보는 과정을 거쳤다. 살펴봐야 할 대상이 많아질수록 필요한 인력과 시간도 함께 늘었다.
한 주무관이 투입되면서 사람이 모든 자료를 처음부터 읽는 대신 AI가 먼저 앞뒤가 안 맞는 거래를 추릴 수 있게 됐다.
물론 한 주무관이 처음부터 일을 척척해낸 것은 아니다.
출입국 기록과 해외 결제 자료 모두 규모가 커 데이터를 정리하고 서로 비교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연산 부하가 나타났다.
시스템 개발진은 거래 상황을 여러 시나리오로 나누고, 데이터 비교 방식과 분석 절차를 최적화해 처리 속도를 높였다.
불법 외환거래 3조원…1년새 1조원 늘어
관세청이 새로운 AI 직원을 투입한 것은 불법 외환거래 규모가 매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이 적발한 불법 외환거래 금액은 2023년 1조8062억원에서 2024년 2조2257억원, 2025년 3조2153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적발 건수는 235건으로 전년보다 줄었지만, 적발 금액은 오히려 약 1조원 늘었다. 적발되는 범죄 한 건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불법 자금을 옮기는 방식도 복잡해지고 있다. 한 사람의 계좌로 큰돈을 보내는 대신 여러 사람의 계좌와 카드를 나눠 사용하면 자금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워진다.
관세청은 앞으로 대포통장이나 타인 명의 카드 외에도 새로운 이상 거래 유형을 발굴해 분석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김정엽 관세청 인공지능혁신팀 사무관은 "초기 단계에서는 데이터 품질과 검증 가능성을 고려해 일부 국가를 대상으로 구축했다"며 "앞으로 전체 국가와 다양한 거래 유형으로 분석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