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이 지난 4일 열렸습니다. 납세자의 날은 납세의 의무를 성실하게 해 준 국민과 기업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날로, 정부는 매년 모범납세자를 선정해 시상하는데요.
그동안 모범납세자 제도는 시대에 맞게 조금씩 변화했지만, 그럼에도 성실납세의 의미를 온전히 반영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모범납세자 소득 또는 매출 비공개로 인한 선정 과정의 불투명성, 매년 기계적인 연예인 모범납세자 선정과 부작용, 유명무실한 우대혜택 등 여러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모범납세자 제도 개선점과 납세자의 날 의미에 대해 조세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를 만나 들어봤습니다.

-올해도 납세자의 날 기념식이 진행됐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과거 납세자의 날 취지 개선이나 모범납세자 제도 개선에 나서 결실을 보셨는데요. 지금의 납세자의 날 행사와 모범납세자 제도, 마음에 드시나요?
납세자의 날은 1967년 세금의 날로 시작해 이후 관세의 날, 조세의 날, 그리고 납세자의 날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납세자의 날은 단순히 납세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성실한 납세에 감사를 표하는 의미를 가지는데요.
과거 납세자의 날은 '국민의 납세 정신을 계몽하고 세수 증대를 위한 목적으로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라고 법령에 제정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납세자연합회장을 역임하던 2011년, 건의를 통해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한 납세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목적'이라고 납세자의 날 의미를 바꿨습니다.
납세자의 날이 납세자에게 세금을 내라고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감사하고 세금의 중요성을 알리는 행사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특히 감사라는 단어가 법정기념일 뜻에 적힌 것은 납세자의 날이 유일합니다.
아쉬운 점은 납세자의 날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없었다는 겁니다. 그나마 2023년도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했지만 지난해에는 불참했는데요. 정치적 의도를 떠나, 납세자의 날이 본래 의미를 살려 국민에게 감사를 표하는 행사로 운영돼야 합니다.
납세자는 국가를 위해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대통령이 납세자의 날 행사에 직접 참석해 "세금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세금으로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지출을 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정부도 함부로 세금 공약을 남발하지 않고, 국가 재정을 신중하게 운영하는 태도를 보일 겁니다.
정치인들이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세금을 이용해 마구 퍼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국민이 세금을 내야 국가가 운영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세금을 신중하게 사용하면서 납세자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하죠.
-과거에 교수님께서 모범납세자의 소득이나 매출을 공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에도 국세청은 개인납세 정보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공개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모범납세자의 소득을 공개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모범납세자 제도의 가치는 국민들이 선정 기준을 납득할 수 있을 때 더욱 높아집니다. 단순히 '저 사람이 모범납세자다'라는 사실보다, 선정된 과정과 기준이 국민들에게 이해될 때 그 의미가 커지죠.
선정 기준이 납득할 수 없으면, 왜 저 사람에게 혜택을 줘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납세자의 날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현행 모범납세자 선정 기준은 불명확합니다. 국세청 홈페이지에서도 모범납세자 선정 기준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찾기 어려운데요. 일부 기사에서 개인 납세자의 경우 500만원, 법인은 5000만원 이상의 세금을 납부해야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공식적인 규정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모범납세자 관리 규정에도 구체적인 기준을 명시하지 않기 때문이죠.
더불어 모범납세자의 기준을 단순히 세금을 많이 납부한 것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됩니다. 소득 범위를 고려해 다양한 계층에서 선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경우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면서 수천억원의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데요.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득 대비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납부한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의 기여도 높이 평가받아야 합니다.
납세액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여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기부금 납부 내역, 사회봉사 활동, 윤리적 경영 등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기부금을 사회적 기여의 중요한 척도로 평가합니다. 납세자가 세금 이외에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여한 점을 인정하는 건데요.
국민이 공감하는 모범납세자 제도를 운영하려면, 모범납세자를 선정할 때 세금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여도를 반영하고 그 기준을 명확히 공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조세 문화가 발전하고, 자발적인 납세 풍토가 조성될 수 있겠죠.

-근로소득자의 소득에 대해서는 원천징수를 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성실납세를 할 수밖에 없지만 그동안 모범납세자 선정에서는 제외돼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에 국세청은 아름다운 납세자 중 근로소득자 몫을 할당해 선정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국민 가운데 1900만명이 근로소득자입니다. 개인사업자는 600만~700만명, 법인사업자는 약 90만개인데요. 하지만 모범납세자는 주로 신고납세자인 개인사업자나 법인사업자 중심으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근로자는 원천징수로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직접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죠.
모범납세자 선정 범위를 정할 때, 다양한 계층을 고려해야 합니다. 젊은 세대도 포함할 수 있도록 소득이 적더라도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맞습니다.
임시직 근로자나 비정규직 근로자도 소득이 있고 기부를 합니다. 소득이 적어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더라도, 적은 돈이라도 기부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들 역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멋진 시민이고, 충분히 모범납세자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죠.
군대에 가는 것도 세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요역(徭役)'이라는 제도를 통해 노동을 세금 대신 제공하기도 했는데요.
군 복무 역시 저임금으로 국가에 봉사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사회적 기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모범납세자 선정 기준에는 군 복무와 같은 사회적 기여 요소가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범납세자로 인정받을 기회를 갖게 된다면, 사회 분위기도 더욱 긍정적으로 바뀔 겁니다.
국세청은 세금 관련한 데이터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장려금이나 국가장학금을 운영하는 것도 관련 데이터를 운용하기 때문인데요. 이 데이터를 통해 효율적인 방식으로 모범납세자를 선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국세청이 일방적으로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청을 받아 검토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스로 신청한 사람 중에서 선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국세청은 매년 연예인을 모범납세자로 선정해 시상한 뒤, 홍보대사로 임명합니다. 국세청은 연예인 모델을 활용해야 성실납세 홍보 효과가 크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성실납세 홍보는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보십니까?
연예인들은 순간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납세 기여 효과를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통령과 함께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논란이 될 수 있는데요. 특히 특정 직군이 집중적으로 선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연예인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거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범납세자 홍보대사였던 연예인이 이후에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일이 생긴다면, 이전에 받은 표창이 오히려 부정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는데요. 이런 위험성을 고려할 때, 특정 직군인 연예인을 집중적으로 선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겠죠.
만약 업종별로 대표적인 모범납세자를 선정한다면, 소상공인·연예인·근로자 등 다양한 직군에서 대표성을 갖춘 인물을 선정하는 게 더 공정한 방식입니다.

-현재 모범납세자들에게 제공되는 혜택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모범납세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의 실효성을 높이고, 더 많은 국민들이 성실납세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모범납세자들에게 제공되는 혜택 중 일부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차장 이용 혜택이나 대출 이자 감면 등의 혜택이 있지만, 실제로 납세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데요.
때문에 모범납세자로 선정된 기업과 개인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모범납세자 인증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업은 백년가게 명패처럼 '모범납세 기업'이라는 인증을 사업장에 게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겁니다. 개인도 거주지나 사무실에 인증 명패를 제공하면 되고요.
중요한 것은 '모범납세 기업' 인증을 모범납세자 스스로 게시하게 해서는 실효성이 없습니다. 국세청이나 세무서 직원들이 모범납세자를 직접 찾아가, 인증 명패를 직접 달아주고 이를 모범납세자가 임의로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해야만 의미가 있겠죠.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상 자신이 잘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말하기 부끄러워 합니다. 잘난 척 한다는 비판이 두려워서인데요. 만약 국세청에서 모범납세 인증 명패를 사업장에 강제로 게시하게 한다면, 그 자체로도 공신력이 생기면서 홍보효과는 더욱 클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또한, 모범납세자 제도에 대해 공개적인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문·방송·온라인 뉴스에서 모범납세자의 명단을 계속해서 공개하고, 선정된 이유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홍보하는 거죠. 그래야 국민들이 모범납세자를 더 쉽게 공감하고 제도에 관심을 가질 겁니다.

☞홍기용 교수는?
조세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홍기용 교수는 한국납세자연합회장, 세무학회장, 감사인연합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조세제도 발전에 기여했다. 지난 2000년 '조세의 날'을 납세자가 주인이라는 의미의 '납세자의 날'로 개편한 것도, 홍 교수가 이를 정부에 건의해서 받아들여진 결과다. 홍 교수는 35년간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세무회계·세법 등 다수의 논문 및 저서를 발표했다. 인천대 경영대학장과 경영대학원장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