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 비상계엄 여파로 국회 세법심의가 중단되면서, 상속세 개편도 흐지부지됐다.
상속세 개편 불발되면서 글로벌 조세경쟁력이 저하되거나 일부 자산가들이 해외로 이민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닐까. 그 인생의 무게에 비해 우리 사회의 상속세 논의는 지나치게 가벼운 것이 현실이다.
재산이 많다면 절세방안을 고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서울에 집 한 채 있는 노부부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절세는 커녕 지금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비상장주식에 대한 상속세 문제가 고통스럽다. 비상장주식만 상속받은 상속인은 사실상 물납 밖에는 방법이 없다.
물납은 토지나 건물, 유가증권 등으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로, 현금 마련이 어려운 상속인들에게는 유일한 해결방안이다.
용산세무서장을 비롯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까지 30여년을 국세공무원으로 지낸 박진하 세무법인 리원 회장은 택스워치와의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봤던 상속인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했다.
박 회장은 "배우자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기도 전에 평생 살던 곳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며 "비상장주식도 마찬가지다. 상속재산이 비상장주식이 전부인 상속인의 경우 물납을 거부당하면 체납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Q. 상속세 개편을 논의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높은 세 부담인데, 실제 납세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무엇인가
=상속세율이나 공제 등도 많이 얘기가 나오지만, 상속인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문제는 비상장주식이다. 비상장주식만 상속받은 상속인의 경우에는 다른 재산이 없기 때문에 상속세를 납부하기 어렵다.
상속인들은 자연스럽게 비상장주식 물납을 생각한다. 비상장주식을 물납하려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가치평가를 해서 받은 뒤 매각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문제는 주가가 변동이 있거나 기업가치가 하락하면 캠코에서 물납을 거부한다.
상속재산 평가는 상속개시일(피상속인 사망일) 전후 6개월 이내의 기간 동안 확인되는 시가를 기준으로 하는데, 비상장주식 평가는 거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시가를 확인하기 어렵다. 이에 비상장주식 평가는 보충적 평가방법을 활용한다.
*비상장주식 보충적 평가 방식 : 1주당 평가액 = (1주당 순손익가치 × 3 + 1주당 순자산가치 × 2) ÷ 5'
비상장주식 평가를 완료하고 상속세가 산출되면 물납 허가를 받는데 9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그동안 비상장주식 가격 또는 기업가치가 하락하면 캠코에서 물납을 받지 않는다. 이 경우 상속인들은 대부분 체납하게 된다.
상속인 입장에서는 너무 가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과세관청에서 비상장주식을 하락가액으로 다시 보정해 상속세액을 다시 계산해줘야 한다. 상장주식도 마찬가지다. 평가기간에는 주가가 높았지만, 나중에 상속세를 납부할 시점에 주가가 떨어지면 상속인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게 된다.
이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상속재산 중 비상장주식만 별도로 떼어내서 분리과세를 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를 받기 위해서 기업 영위, 직원 수 유지 등 여러 요건이 있듯이 그런 요건을 주고 분리과세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Q. 부동산은 꼬마빌딩뿐 아니라 고급주택까지 감정평가를 한다고 해서 난리인데, 비상장주식은 감정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비상장주식은 거래가 잘 되지 않다보니, 시세 형성이 어렵기 때문에 감정평가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그래서 보충적 평가방식을 활용한다.
그 이유는 비상장주식의 경우 평가기관에 따라서 가액 편차가 크고, 평가방식도 여러가지라서 국세청에서 감정평가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보충적 평가방법 중 순손익가치를 계산할 때 발생한다. 순손익가치는 미래 기대 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금액을 뜻한다. 순손익가치의 계산방법은 최근 3개년 동안의 평균 순이익에 자본환원율을 나눠서 계산한다.*
자본환원율은 국세청장이 고시하는 이자율로 책정이 되는데, 이게 10%로 고정돼있다. 상속인들은 보충적 평가방식이 주식을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식이 과대평가되면 팔 수가 없다.
이 평가방식이 문제가 있을 때 상속인이 국세청의 비상장주식 심의평가위원회에 신청해 감정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현재 이 위원회는 유명무실하다. 실제 들어보면 상속인이 신청을 하더라도 요건이 까다로워 국세청에서 받아주기 어렵다고 들었다.
평가기관마다 평가방식이나 편차가 커서 국세청에서 감정평가를 받아주면 추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고 하더라. 하지만 상속인들은 보충적 평가방식이 주가가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된다는 생각과 불만이 상당하다.
국세청이 기업규모나 업종별로 해서 평가방식을 몇 개로 지정해 감정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상속인들도 감정평가와 보충적 평가방식을 비교평가해서 활용할 수 있어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용어 TIP!
비상장주식 평가는 <(1주당 순손익가치 × 3 + 1주당 순자산가치 × 2) ÷ 5>의 방식을 활용한다. 여기서 순손익가치는 미래의 기대 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것으로 <순손익가치 = 최근 3개년 평균 순이익 ÷ 자본환원율(10%)>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최근 3개년의 평균 순이익이 2억원이라면 여기에 10%로 나눈다. 결과적으로 순손익가치는 20억원이 되는 것이다.
다만 자본환원율 10%는 기업별·산업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금리변동 등 시장상황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또한 과거의 순이익을 활용해 계산하기 때문에 미래 성장 가능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도 있다.

Q. 상속세 제도 중 불합리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 영농상속공제다. 가업을 잇는 것인데도, 가업상속공제와 영농상속공제 세제혜택이 큰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
=가업상속공제는 최대 600억원까지 공제가 가능하고, 영농상속공제는 최대 30억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숫자만 놓고 봐도 공제한도 차이가 크다.
기후변화로 인해 영농사업도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농지에 자연적인 햇볕을 통해 영위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영농사업도 대규모의 스마트팜 형태로 갈 수 있다. 몇 천평 되는 평야지대에 스마트팜 시설을 만들었다고 하면 시설비만 30억원이 넘는다.
기후변화 등으로 앞으로 식량이 국가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농상속공제 한도도 대폭 늘려야 한다. 아직까지 농업인들이 소유한 농지가 저렴할 것이라는 과거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해 공제한도가 낮은 것이다.
Q. 상속세를 절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속과정에서 가족 간의 화목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상속과정에서 가족 간 불화가 많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불화를 피할 수 있을까
=제일 좋은 방법은 상속재산 협의분할제도를 활용해서 분쟁을 피하는 것이다. 상속이 개시되기 전에 피상속인하고 사전에 협의를 거치는 것이 제일 좋다. 유언도 많이 활용한다.
물론 피상속인 입장에서는 사후 재산분할을 협의하는 것이 불쾌할 수는 있지만, 사람이 한 번 태어나면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하다. 내가 사전에 교통정리를 하지 않으면, 후손들이 남보다 못하게 다투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피상속인 생전에 상속인들을 불러모아놓고 이 재산은 누가 가져가는 등 정리를 해놓고 이를 유언으로 남겨야 한다.
이렇게 해놓지 않아서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어머니와 아들 간에도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
Q. 제3자 증여도 사전상속재산에 포함시켜 상속인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에 대한 논란도 많다. 특히 피상속인이 과거 내연녀한테 증여한 것이 문제가 돼 불복도 많이 제기되는데, 제3자 증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리나라의 상속세 과세방식이 유산세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상속개시일 5년 전에 제3자 증여한 것은 사전상속재산에 포함돼 상속인들의 상속세율이 올라갈 수 있다.
해결책은 유산세 방식을 유산취득세로 바꾸는 것이다. 받은 만큼만 상속세를 부담하게 되면 해결될 문제다.

Q. 배우자 상속세도 논란이 많다. 이혼 시에는 세금이 없는데, 상속받으면 세금이 나오고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는 아예 없애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
=배우자 상속공제 한도는 30억원이다. 재산이 없는 사람은 상관없지만, 재산이 많은 사람은 배우자 상속공제 한도가 적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배우자가 상속받으면 얼마 안 있다가 어차피 자녀에게 재산이 가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배우자 상속공제 한도를 상향할 필요가 있다.
제가 용산세무서장을 했었는데, 용산도 집값이 상승해서 집 한채 있어도 상속세가 많이 나오는 지역 중 하나다. 가격이 30억원 정도 하는 아파트에서 부부가 같이 살다가 상속이 개시돼, 세금이 7억~8억원이 나오면 부동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집을 팔고 타지로 이사가면 된다고 하지만, 배우자를 잃은 상실의 아픔에 더해 평생 살던 곳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두 번이나 상실의 아픔을 겪으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배우자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고 세금을 내면 문제가 없지만, 체납이 발생했을 때 재산을 배우자 명의로 옮기는 사해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차라리 배우자 공제 한도를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Q. 올해 세무조사 트렌드나 키워드는 무엇일까
=시장경제가 많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국세청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어려운 사업자 또는 중소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소득자 위주로 조사를 할 것이다.
국세청도 세무조사 주기가 있다. 시기마다 업종별로 세무조사를 하는데, 현재 경제상황도 힘들고 그런 주기를 봤을 때 고소득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할 때가 됐다. 세무조사는 고소득자를 집중해서 할 가능성이 높다.
Q. 용산세무서장 등 세무서장을 여러 번 역임하시고,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에서도 근무하시는 등 자산가에 대한 세무조사 경험이 풍부하신데 '세무조사 때 이것만 조심해야 한다'는 팁을 알려주신다면
=자산가들이 재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세무컨설팅 비용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의 조언을 받지 않고 실행부터 하는 분들이 있다.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으라는 것은 절세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매매나 증여 행위를 했을 때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사전에 점검을 받으라는 뜻이다.
시간을 좀 가지고 플랜을 세웠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사례를 종종 봤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세무조사가 나왔다면 이미 늦었다.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명심할 것은 국세청의 전산시스템이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라는 점이다. 국세청도 인공지능(AI)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은 방대한 양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계약서 등을 종이로 편철해 보관했다면, 지금은 무조건 PDF로 변환해서 보관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분석을 한다.
국세청의 개별사업자에 대한 전산분석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대부분의 오류를 검증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납세자들이 소위 말하는 탈세보다는 각종 조세지원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다.
Q. 오랫동안 과세관청 입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지금은 세무대리인으로 일하시면서 많은 것을 느끼셨을 것 같다. 세무대리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제가 국세청에서 근무할 때, 선배들이 하는 말이 '우리는 납세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세공무원으로 일을 하든, 세무대리인으로 일을 하든 납세자를 항상 이해하려고 한다.
단순히 세무대리인이기 때문에 납세자 편만 들어서 과세관청의 역할이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방으로 가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과세관청과 납세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조정하는 것이 세무대리인의 역할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국세청에서 오래 근무하신 만큼,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절세비법을 알고 계실 것 같은데, '절세 블루오션'이 있다면 살짝 공개해달라.
=미술품에 대해서는 소득세를 상당히 적게 부과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영화나 음악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K-ART(케이-아트)는 발전이 느리고 덜 알려졌다. 최근 K-ART를 알리기 위한 노력들이 있어서 예술분야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세법상 소득세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상당히 좋은 절세방안이다.
최근에는 그림에 대한 상속세 물납제도가 생겼다. 물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물납이 가능하고 아직은 태동단계이지만, 이를 잘 활용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용어 TIP!
미술품에 대한 양도소득세는 그동안 논의만 됐다가, 2020년부터 시행됐다. 6000만원 이상 거래 시 양도세를 과세하며, 부가가치세의 경우 사업자가 거래했을 때는 과세하지만 개인 간 거래의 경우에는 면세해준다.
지난 2023년부터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초과하면서 상속재산의 금융재산가액보다 상속세액이 클 경우 문화재나 미술품 등으로 물납을 할 수 있다. 다만 예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문체부 장관이 인정하는 문화재와 미술품에 한해서만 물납이 가능하다.

☞박진하 세무법인 리원 회장은?
박진하 회장은 국세청 조사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베테랑 국세공무원 출신이다. 그는 자산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 조사관리과장과 법인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사2국 조사1과장을 역임했다. 조사 업무뿐만 아니라, 불복 대응 전문성을 인정받아 서울청 송무국 송무1과장을 맡은 바 있으며, 동대문·구로세무서장을 거쳐 용산세무서장을 끝으로 지난해 6월 퇴직했다. 이후 세무법인 리원에 합류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세무법인 리원은 김현성 대표이사가 지난해 1월 설립한 세무법인으로, IT 및 노무법인을 포함한 '원스톱 컨설팅' 그룹이다. 40대인 김 대표는 젊은 감각과 리더십으로 50여명의 직원과 함께 리원 그룹을 이끌고 있으며, 재산세제와 법인 전환 등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 회장의 합류로 리원은 세무조사 및 불복 대응 분야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해 경쟁력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