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 지갑이 왜 소영이의 신용이 된다고 생각해?"
할아버지의 소득이 자신의 소득이라고 말하던 소영이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할아버지한테 매일 가서 1000원씩 받을 수 있거든. 그러면 이건 정기적인 소득이니까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지!"
사건의 발단은 체크카드였다.
나는 소영이가 학교가 끝난 뒤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 먹을 때면,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하곤 했다. "오늘은 문구점에 갔구나" 그 짧은 기록 하나가 하루의 안부처럼 느껴졌다.
일하느라 늘 곁에 있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어디쯤 머물렀는지는 알고 싶었다. 카드 내역은 나에게 작은 안심이었다.
그런데 소영이는 모아놓은 세뱃돈을 야금야금 꺼내어 현금을 쓰고 다녔다.
"소영아, 대채 왜 체크카드를 안 쓰는 거야?"
"엄마가 충전 안 해놓을 때도 있잖아. 잔액 얼마 남았는지도 모르겠고. 계산대에서 결제가 안 되면 창피하단 말이야"
결제가 거절되는 순간의 불안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 차라리 나도 신용카드 만들어줘. 그럼 돈이 없어도 결제는 되잖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용카드는 매달 일정하게 돈을 버는 어른만 만들 수 있어. 직업을 가진 사람 말이야. 카드 회사는 그 사람이 나중에 빌린 돈을 스스로 갚을 수 있는지 믿을 수 있어야 카드를 만들어줘."
"나 소득 있어! 할아버지한테 용돈 받아. 5만원 받을 때도 있고, 2만원 받을 때도 있고!"
"그건 할아버지의 소득이잖아. 그게 어떻게 네 소득이 될 수 있니?"
소영이는 목소리를 높였다.
"매일 찾아가면 매일 주실 거야!"
나는 잠시 물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오늘은 용돈 못 준다'고 하시면? 그때는 누가 돈을 갚을까?"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곧 레이저 같은 눈빛이 날아왔다.
"엄마는 나빴어. 날 무시했어. 내가 돈 못 갚으면 할아버지가 대신 갚아주실 거야!"
그 말은 사실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누군가 대신 책임져 줄 것이라는 기대.
나는 조용히 말했다.
"신용은 '믿을 수 있다'는 뜻이야. 카드 회사는 이 사람이 자기 힘으로 돈을 갚을 수 있다고 믿어야 카드를 만들어줘. 할아버지가 주시는 용돈이 신용이라면, 카드사는 할아버지 명의로 카드를 발급해 주겠지"
그리고 예를 들었다. 선생님이 "소영이는 숙제를 안 해오니까 학교에서 하고 가라"고 하셨을 때, 소영이가 "제 친구는 매일 숙제를 잘해와요. 그건 제가 한 것과 마찬가지예요"라고 한다면 어떨지 말이다.
소영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신용은 지금 돈이 있느냐가 아니라, 나중에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는 것이다.
어른들도 종종 착각한다. 부모의 재산이 내 능력이라고, 회사의 간판이 내 실력이라고, 국가의 신용등급이 영원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남의 신용에 기대면 내 신용은 자라지 않는다. 내가 내 힘으로 감당할 때 신용이 쌓인다.
신용카드는 돈을 먼저 쓰게 해주는 도구가 아니다. 나중에 꼭 갚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카드다.
"소영아. 신용은 용돈에서 시작하지 않아. 네가 약속을 지키는 습관에서 시작해. 숙제를 미루지 않는 것처럼, 빌린 건 꼭 갚는 것처럼. 신용은 돈보다 먼저 책임이야"
소영이는 여전히 억울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할아버지의 지갑은 사랑이다. 그러나 신용은 사랑이 아니라 책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소영이가 스스로 돈을 벌게 되는 날이 오면, 오늘의 대화도 함께 떠올릴 것이다.
[어린이도 이해하는 경제금융 이야기]
① 체크카드
체크카드는 내 통장에 들어 있는 돈만큼만 쓸 수 있는 카드입니다.
통장 속 저금통에 돈이 남아 있으면 '딩동'하고 열리고, 돈이 다 떨어지면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하고 멈춰 서는 카드죠.
② 신용카드
신용카드는 "지금은 제가 대신 내드릴게요" 하고 카드 회사가 먼저 돈을 내주는 카드입니다.
대신 "다음 달에는 꼭 갚아주세요"라는 약속을 해야 하죠. 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만 계속 쓸 수 있는 카드입니다.
③ 신용
신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름표 같은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약속을 잘 지켜요", "이 사람은 빌린 돈을 꼭 갚아요"
사람들이 이렇게 믿어줄 때, 그 믿음이 바로 신용이 됩니다.
④ 상환
상환은 빌린 돈을 다시 돌려주는 일입니다. 친구에게 빌린 연필을 다 쓰고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처럼 말이죠.
⑤ 보증
보증은 내 뒤에 서서 이렇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혹시 이 사람이 못 갚으면, 제가 대신 갚겠습니다"라고 말이죠.
조금 든든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함께 지는 약속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