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세 가지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경험을 통해 기본적으로 체득합니다.
첫 번째, 그 어느 나라보다 높은 주택 소유욕이죠. 내 집 마련의 꿈은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꿈꾸는 일입니다.
두 번째, 국가는 다주택자를 사실상 죄인처럼 다룹니다. 이유는 국민 대다수가 꿈꾸는 내 집 마련의 가장 큰 걸림돌이 다주택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 정책도 달라집니다. 정부 성향에 따라 보유세와 거래세가 오르거나 내리기도 했습니다. 다주택자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볼지, 주택 공급자로 볼지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달라집니다.
다주택자는 왜 죄인이 된 걸까요?
경제 불안에 비례한 생활 안정에 대한 욕구
과거 고속성장기였던 1970~1990년대에는 현재보다 의식주 등 생활 여건이 떨어졌을지는 몰라도, 상대적 박탈감은 덜 하던 시기였습니다. 생활 수준과 사는 방식이 비슷했기 때문이죠.
당시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8~10%였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미래에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던 것도 주택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막아내는 방패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 1998년 외환위기(IMF)가 찾아오고 경제성장률은 -4.9%로 고꾸라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평균 3~4%의 경제성장률을 나타냈고, 2015년 이후부터는 평균 1~2%의 저성장을 보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청년층의 일자리와 주거 불안은 더욱 커졌습니다. 사실 실업률만 보면 고속성장기와 저성장 시기는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고속성장기였던 1980~1990년대의 평균 실업률은 2~4%, 저성장 시기인 2015년 이후는 3%대를 보였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비정규직의 등장입니다. 과거에는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없었지만 1990년대 이후 비정규직이 등장하면서 일자리 불안이 커졌습니다.
국가데이터처에서 공개한 비정규직 규모를 살펴보면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462만2000명이었다가, 매년 꾸준히 늘어 2020년에는 742만6000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2021년 처음으로 비정규직이 800만명을 돌파한 이후 작년에는 856만8000명을 기록했습니다.
청년층의 고용도 불안정해졌습니다. 20~29세 청년의 정규직 비율은 2003년 70%에서 2024년 57%로 크게 줄었습니다. 20대 청년 10명 중 절반만 정규직이라는 의미입니다.
숫자는 다르지만 흐름은 분명합니다. 성장의 속도는 느려졌고, 일자리는 불안정해졌습니다.
그런데 주택 가격은 어떨까요?
서울 강남의 은마아파트는 한국 부동산 시장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1979년 가격은 2000만원대지만, 2000년대 초에는 2억원, 최근에는 35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물가 상승과 화폐 가치 하락을 고려해도, 자산 가치가 한 세대 만에 크게 뛴 것입니다.
무주택자는 급격하게 오르는 주택 가격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 주거 불안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집값이 너무 올라 마음 편히 누울 집 하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이죠.
여기에 주거 문제가 갖고 있는 정치적 민감성도 작용합니다. 집값 상승은 곧바로 생활 부담으로 이어지며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직결됩니다. 이것은 곧 정치적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이런 복잡한 문제로 인해, 다주택자는 정부의 주요 규제 대상이 됐습니다.
이념·지지층에 따라 달라지는 부동산 정책

이처럼 누적된 경제적 불안은 정책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들은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주식 투자는 투자라고 하는데, 부동산은 왜 투기로 보는 걸까요?
현 정부는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해 해외주식 투자자들을 국내 시장을 복귀시키는 세제혜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5월 9일 이후 양도세 중과 유예를 종료합니다.
차이는 생산성입니다. 주식 투자는 기업의 생산성과 연결됩니다. 즉, 자본투자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지만, 주택의 경우 실물 경제의 생산성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 어렵습니다.
또 다주택자가 많아지면 집값이 오를 위험이 있습니다. 집은 꼭 필요한 재화이므로, 가격이 안정돼야 국민 생활도 안정됩니다. 다주택자가 집을 많이 소유하면 공급이 줄고, 가격이 오르기 쉽습니다.
이러한 논리로 부동산 세제를 강화하는 것이 바로 진보 정권입니다. 종합부동산세도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에서 탄생했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도 문재인 정부에서 탄생했습니다. 주택을 여러 채 소유하는 것을 투기로 보는 것이죠.
반면 보수 정권은 다주택자가 임대주택을 공급해야 주거가 안정된다고 봅니다. 시장 규제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는 입장입니다.
안정된 소득과 자산을 가진 기성세대는 보수 정권을 더 많이 지지합니다. 그래서 보수당은 부동산 세제 완화 정책을 자주 내놓습니다.
같은 문제라도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 방향도 달라집니다.
문제는 정책이 정부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부세는 다주택자 세 부담을 늘리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집값이 오르자 1주택자도 세금 부담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물 잠김 현상으로 집값이 더 올랐습니다.
결국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남겨진 질문
무주택자에게 내 집 마련은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집을 가진 순간, 목표는 달라집니다. 상급지로 갈아타거나, 두 번째 집을 고민하게 됩니다.
1주택자가 더 좋은 집으로 갈아타지 못하면 "벼락거지가 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남들 집값은 올랐는데, 내 집만 오르지 않았을 때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무리해서라도 갈아타기를 하려고 하죠.
다주택을 꿈꾸는 사람들은 "집은 두 채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한 채는 거주용, 다른 한 채는 노후 대비 소득원으로 생각합니다.
1주택자가 다주택을 바라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노후를 대비한 생활 안정 욕구 때문입니다. 노후에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으면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있으면 다주택에 대한 바람이 더 커집니다. 해가 갈수록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게 됩니다. 이에 부모는 자녀에게 하루라도 빨리 집 한 채라도 주고 싶어 합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살 곳이 없어 불안한 걸까요, 아니면 노후나 자녀 미래가 걱정돼서일까요?
주택을 보유하려는 근본적인 동기를 줄이지 못한 채, 다주택자를 세금으로만 규제하려면 답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주택자 규제의 강도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한 채의 주택만으로는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결국 집은 주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집이 아니면 불안을 견딜 수 없는 사회가 된 점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