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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발언 후 세무조사…우연인가, 정책 코드인가

  • 2026.03.05(목) 07:00

윤석열·이재명 정부, 국세청 보도자료 현황 분석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조용하게 이뤄진다. 국세기본법(제81조의13)상 '비밀 유지'를 이유로 세무조사 대상과 내용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그래서 대부분의 세무조사는 소문으로만 떠돌며, 세무조사 착수 여부에 대해서도 국세청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국세청이 직접 세무조사 착수를 알리는 경우다. 특정 업종이나 집단을 콕 집어, 세무조사 추진 배경까지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낸다. 실명은 공개하지 않지만, 시기나 업계 상황이 맞물리면 대상이 사실상 특정되는 일도 벌어진다. 

세무조사는 조용히 이뤄지지만, 발표되는 세무조사는 선별된 결과물에 가깝다. 의도했든 아니든, 공개 대상에는 정부가 지금 무엇을 문제로 보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이 때문에 '정권 코드에 맞춘 세무조사'라는 의혹도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국세청이 발표한 세무조사 자료를 기준으로 살펴봤다. 

공개된 세무조사,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1월 26일, 임광현 국세청장은 '전국 세무관서장회의'에서 한해 세무조사 운영 방향을 밝혔다. 구체적인 숫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예년 수준을 유지한다고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전체 세무조사 건수는 2022년 1만4174건, 2023년 1만3973건, 2024년 1만3980건으로 최근 3년간 1만4000건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를 보듯, 조사 총량은 정부마다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숫자만 놓고 보면 정권에 따라 세무조사가 급증하거나 급감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국세청이 어떤 조사를 공개적으로 발표했는지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교 대상은 현 정부와 직전 정부 시기다. 각 국세청장 재임 기간의 세무조사 보도자료를 기준으로 삼았다.

①우선 국세청이 낸 보도자료에서 세무조사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김창기 전 국세청장 재임(2022년 6월~2024년 7월) 때 국세청이 낸 보도자료는 258건이다. 이 중 세무조사 착수(또는 결과)를 공식 발표한 건은 14건으로, 전체의 약 5% 수준이었다. 

강민수 전 국세청장 재임(2024년 7월~2025년 7월) 때는 세무조사 발표 비중은 4%였다. 눈에 띄는 점은 2025년 초에 상대적으로 집중된 부분이다. 당시 정치적 긴장 국면과 시기가 겹치면서, 국세청이 집행 의지를 강조하려 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현 임광현 국세청장은 재임 기간이 아직 짧고 현재 진행 중임에도, 세무조사 보도자료 비중은 8%대로 이전 청장들보다 높다. 직전 시기와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세무조사 발표를 정책 메시지 수단으로 더 적극 활용하는 흐름으로 읽힌다. 여섯 차례 조사국장을 지낸 '조사통'이라는 이력이 현재의 조사 발표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조사 총량은 같지만, 칼끝은 달랐다

②국세청장별 차이는 어떤 조사를 공개적으로 알렸는지에서 드러난다.

김창기 전 청장 시기를 보면, 2023년 하반기부터 '불법사금융'이 전면에 부상한다. 그해 11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사금융 척결을 강조한 이후 국세청도 대규모 세무조사 착수를 잇달아 발표했다. 

같은 해 6월에는 대통령실(현 청와대)이 교육 당국과 사교육 간의 '이권 카르텔(담합)' 문제를 제기하며 엄정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런 입장이 나온 이후 국세청의 보도자료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업계 발로 대형 사교육 업체(메가스터디·대성학원 등)에 대한 세무조사 착수 사실이 확인됐다. 

강민수 전 청장 때는 사회적 박탈감이나 세대 갈등과 맞닿은 영역을 내세운 점이 특징이다. 발표 건수 자체는 많지 않았지만, 발표 문구에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이라는 대중적인 표현이 많이 쓰였다. 

현 정부 들어 첫 국세청장인 임광현 청장의 세무조사 키워드는 '물가'였다. 이 시기 발표된 세무조사 9건 중 4건이 물가와 직접 관련돼 있었다. 민생침해분야 조사는 상시적으로 이뤄지긴 하나, 국세청이 공식적으로 연달아 발표한 건 이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설탕, 밀가루 등 생활 밀착 품목을 직접 언급하며 물가 안정을 강조한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빈도만 따지자면 '부동산(세무조사 착수 2건)'도 두드러진 키워드다. 이 역시 부동산 투기 억제를 강조해 온 정부 기조와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한강 벨트 지역 초고가 주택에 대한 조사 착수를 발표한데 이어, 강남4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고가아파트 증여 검증처럼 사실상 조사 이전 단계로 읽히는 자료까지 냈다. 최근 발표된 유튜버 관련 세무조사 자료에는 부동산 투기·탈세와 연관된 사례도 담겼다.

앞선 통계와 사례가 보여주듯 세무조사 건수는 비슷했지만 발표된 조사의 방향은 달랐다.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긴 어렵지만, 보도자료는 그 시기 정부의 관심사를 읽을 수 있는 단서다.

대통령 발언과 세무조사

이재명 대통령이 물가 관련 발언을 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하는 일종의 '연결 고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반대로 국세청이 기획 세무조사를 발표한 후 대통령이 관련 발언을 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은 인과관계가 있는 것일까.

사실 물가관리나 독과점, 부동산 투기 등이 세무조사 사유는 아니다. 세무조사 대상은 국세기본법 제81조의6에 따라 ▲불성실 혐의 ▲신고 내용 검증 필요 ▲납세협력의무 불이행 ▲구체적 탈세 제보 ▲명백한 탈루 자료 등일 때 선정된다.

대통령이 물가 상승과 부동산 투기를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특정 업종을 세무조사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대통령 발언 이후 세무조사가 이어지는 듯한 인상이 형성되는 배경에는 이재명 정부 들어 유사한 흐름이 반복돼 온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대통령의 물가·부동산 관련 발언과 이후 국세청의 세무조사 착수 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물가 관련 발언 및 국세청 세무조사]

#물가 1. 
(대통령 발언)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라면 한 개 2000원, 진짜냐"
-2025년 6월 9일, 비상경제점검TF 회의-

(국세청 발표)
원자잿값 상승을 핑계로 과도하게 가격을 올린 '생활물가 밀접 업종 탈세자' 세무조사
-2025년 9월 25일-

#물가 2. 
(대통령 발언)
"식료품 가격 높은 원인 파악해 대책 마련하라"
-2025년 9월 9일, 국무회의-

(국세청 발표)
고환율 흐름 속 가격담합 등 불공정 행위로 물가불안을 부추긴 '시장 교란행위 탈세자' 세무조사
-2025년 12월 23일-

#물가 3.
(대통령 발언)
"한국 생리대값이 39% 더 비싸다더라…이유 조사해보라"
-2025년 12월 19일,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

(국세청 발표)
불공정행위로 생활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서민부담을 가중시키는 '생필품 폭리 탈세자' 세무조사(생리대 제조·판매 업체 포함)
-2026년 1월 27일-

#물가 4.
(대통령 발언)
"할당관세, 특정 품목 관세를 낮춰 싸게 공급하라 했더니 물가에 전혀 도움 안돼"
-2026년 2월12일 수석보좌관회의-

(국세청 발표)
4차 '먹거리, 생필품 등 장바구니 물가불안 야기하는 탈세자' 14개 업체 세무조사 실시(할당관세 혜택 받은 업체 포함)
-2026년 2월 9일-

#부동산 1.
(대통령 발언)
"주택이 투기 수단되며 주거 불안정 초래했다"
-2025년 7월 1일, 국무회의-

(국세청 발표)
강남3구 등 고가 아파트 취득 외국인 탈세자 세무조사
-2025년 8월 7일-

#부동산 2.
(대통령 발언)
"부동산, 한두번 대책으로 안돼…끊임없이 투기 통제"
-2025년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

(국세청 발표)
'한강벨트' 등 초고가주택 전수 검증하여 세무조사 착수
-2025년 10월 1일-

#부동산 3.
(대통령 발언)
"망국적인 부동산 투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잡는다“
-2026년 2월 3일, 대통령 SNS-

(국세청 조사)
"팩트체크? 조회 수만 나오면 그만" 거짓 정보를 유통하며 탈세를 일삼아 온 유튜버 세무조사(투기·탈세 조장 부동산·세무분야 유튜버 등)
-2026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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