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세정책은 크게 손질돼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변화가 두드러진 세목은 법인세다. 법인세율을 둘러싼 논쟁은 흔히 '보수는 친기업, 진보는 과세 강화'라는 구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를 반영하듯, 정권의 성향에 따라 법인세율은 인상·인하를 반복하고 있다.
'법인세율을 올리면 수조 원의 세수가 더 걷힌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세율과 세수는 비례한다는 직관적인 논리 때문이다. 실제 정책 논쟁에서도 세율 인상은 곧바로 세수 확대 효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통념이 실제 데이터에서도 그대로 확인될까. 지난 20여년간 정권별 법인세율은 적지 않게 변동해 왔고, 세수 역시 큰 폭으로 오르내렸다. 다만 두 흐름을 함께 놓고 보면, 그 관계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경기 변동 등과 같은 다른 변수들이 더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도 드러난다. 역대 정부의 법인세율 변화와 세수 추이를 비교해 봤다.
세율 내렸지만, 5%대 성장이 끌어올린 세수 : 노무현 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2003년) 직후부터 법인세 인하 논쟁의 한복판에 서야 했다. 당시는 재정경제부와 한나라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법인세 인하 주장이 나오면서 법인세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던 시기였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부정적 입장이었지만, 집권 이후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2003년 7월 청와대 행사장, 노 전 대통령은 기업활동 입지 결정에 법인세율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며 인하 필요성을 시사했다. 이러한 기류는 그해 말 법인세 최고세율을 27%에서 25%(2005년 사업연도분부터)로 낮추는 입법으로 이어졌다.
세율은 내려갔지만, 법인세수는 안정적인 증가 흐름을 보였다. 2003년 25조6000억원 수준이던 세수는 집권 말기인 2007년 35조4000억원까지 늘었다.
이는 당시 경제 여건과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03년 2.8%, 2004년 4.6%, 2005년 4.0%, 2006년 5.2%, 2007년 5.1% 등으로 전반적으로 4~5%대 성장세를 보였다. 세계 경제성장률(3.8%→5.1%→4.7%→5.2%→5.3%)과 비교해 다소 낮은 수준이었지만, 흐름은 글로벌 경기와 궤를 같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법인세 관련 발언
"전 세계에서 기업하는 사람이 활동 무대를 어디로 정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법인세율을 갖고 고려한다면 정부는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2003년 7월 30일, 청와대 행사-

감세, 그리고 금융위기…급감한 세수 :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 프렌들리(친화적)'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이러한 기조는 당시 정부의 경제 정책인 'MB노믹스'에 그대로 반영됐다. 특히 법인세 인하는 MB노믹스의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2009년에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낮아졌고, 2012년부터 20%로 추가 인하할 계획이었지만 야당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이명박 정부 시기 법인세수는 큰 폭의 변동성을 보였다. 2008년 39조1000억원 수준이던 법인세수는 이듬해 32조2000억원으로 급감했다. 세수 감소 배경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기업실적이 악화됐고, 이는 법인세수 감소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후 법인세수는 2010년 37조2000억원, 2011년 44조8000억원, 2012년 45조9000억원으로 다시 증가세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는 감세정책이 추진됐음에도 세수 흐름은 세율보다는 금융위기와 경기회복 여부에 따라 크게 좌우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법인세 관련 발언
"새 정부는 많은 규제를 풀고 법인세를 낮춰 외국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고 싶은 나라, 일하기 편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
-2008년 4월 16일, 한국투자환경 설명회-
증세 효과 톡톡, 발목 잡은 코로나 : 문재인 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10년간 큰 변화가 없던 법인세율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 변화를 맞게 된다. 2018년 법인세 최고세율이 종전 22%에서 25%로 인상된 것이다.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기업은 77개(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로, 당시 이들 기업으로부터 2조3000억원의 세수를 더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세율 인상 효과는 일정 부분 확인된다. 법인세수는 2017년 59조원 수준에서 2018년 70조9373억원으로 크게 늘었고, 2019년 72조1742억원을 기록하며 증가세를 이어갔다.
다만 법인세는 과세 시점과 납부 시점 사이에 시차가 있어, 세율 인상 효과는 2019년에 본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세수 증가 폭은 1%대에 그친다. '세율 인상 덕분에 세수가 늘었다'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간이다.
같은 시기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주요 기업(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수 증가는 세율 인상뿐 아니라 산업 호황의 영향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흐름은 더 분명해진다. 2020년 법인세수는 55조5132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넘게 급감했다. 세율 변화 없이 나타난 감소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위축과 기업실적 악화가 세수 감소로 직결된 사례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법인세 관련 발언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다. 중산층·중소기업들에는 증세가 전혀 없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다"
-2017년 7월 21일, 재정전략회의-

역대 최대 뒤 급감…감세 이후 꺾인 법인세수 : 윤석열 정부
2022년 법인세수는 100조원(103조5703억원)을 넘기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법인세수가 가장 많았던 2019년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였다.
법인세수가 증가한 요인으로 기업실적 호조가 꼽힌다. 실제 코스피 12월 결산법인 영업이익이 2020년 67조5000억원에서 2021년 106조8000억원으로 58.2% 대폭 늘어났다. 반도체 기업 실적도 크게 한몫한다. 2021년 반도체 수출액(1287억 달러)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실적(1267억 달러)을 상회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2022년 7월, 정부는 과표 3000억원이 넘는 대기업이 적용받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춘 안을 제시했지만, 국회 통과 과정에서 24%로 조정됐다.
이후 법인세수는 감소세로 전환됐다. 2023년은 약 80조원 수준으로 줄었고, 2024년에는 62조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법인세수 감소는 세율 인하와 함께 나타났지만, 반도체 경기 둔화와 기업실적 악화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법인세 관련 발언
"한국이 법인세가 높아서는 좋은 투자처가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도 역외 기업 국내 유치를 위해서는 투자 유인책으로써 세금 인하가 필요하다"
-2021년 12월 28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초청 특별 간담회-
바닥 찍은 법인세수…세율과 무관한 회복 흐름 : 이재명 정부
2024년 저점을 찍었던 법인세수는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해에는 84조60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고, 올해는 86조5000억원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증가 폭만 놓고 보면, 세수 급락 이후 기저효과와 업황 회복이 먼저 반영된 뒤 점차 정상화되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세율 인상 효과(법인세 최고세율 24%→25%, 2026년 사업연도분부터)가 아직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세수가 반등했다는 점에서, 법인세수는 세율보다 경기와 기업 실적에 더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법인세 관련 발언
"예산이 부족하면 재정을 늘릴 생각을 하는 게 상식적인데 급하지도 않은 3000억원 영업이익 초과 초대기업 세금은 왜 깎아준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2022년 9월 1일,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