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간의 대규모 설비 계약이나 건설 공사에서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납기 지연, 성능 미달, 대금 지급 거절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법정으로 간 다툼은 수년간의 소송 절차를 거쳐 판결이 내려지지만, 많은 기업이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이 법적 정의는 실현해 줄지 몰라도 이미 지나가 버린 세금의 시간까지 되돌려주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최근 상담사례에서 기업 법무팀과 회계팀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 사례가 있었습니다.
사업을 영위하다 보면 예기치 않게 거래처와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대금 지급이 미뤄지거나, 계약 내용에 대한 이견으로 소송까지 가게 되는 상황은 경영자에게 큰 스트레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법적 분쟁 과정에서 간과하기 쉬우나 중요한 문제가 바로 '부가가치세(VAT)'입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세금계산서는 언제 발급해야 하며, 과세 당국이 보는 '공급시기'는 언제일까요? 이번 기사에서는 소송으로 인해 부가가치세 공급시기가 모호해진 상황에서의 법적 판단 기준과 실무적 적용 방안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1. 원칙과 예외 사이: 부가가치세법의 기본 입장
부가가치세법상 재화의 공급시기를 판단하는 원칙은 명확합니다. 부가가치세법 제15조에 따르면, 재화의 공급시기는 원칙적으로 재화가 인도되거나 이용 가능하게 되는 때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 기준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재화의 공급이 확정되는 때'를 공급시기로 봅니다. 용역의 경우에도 역무의 제공이 완료되고 그 공급가액이 확정되는 때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평범한 거래라면 이 원칙만으로 충분합니다. 물건을 넘겨준 날, 혹은 서비스를 마친 날이 곧 세금을 신고해야 하는 날이 됩니다.
하지만 소송이 개입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물건은 건네주었으나 가격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가격은 정해졌으나 상대방이 지급을 거부해 법정 다툼이 벌어진 경우, 과연 '인도 시점'을 공급시기로 볼 것인지, 아니면 '판결 시점'을 공급시기로 볼 것인지에 대한 혼란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2. 핵심 판별 기준: 가액의 확정인가, 단순 청구인가?
관련 판례와 유권해석을 종합해 볼 때, 소송 중인 건의 공급시기를 가르는 핵심적인 분수령은 소송의 성격에 달려 있습니다. "해당 소송이 공급가액 등 거래의 중요 부분을 확정시키는 역할을 하는지" 여부가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이 기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 소송을 통해서 비로소 공급가액이 결정되는 경우에는 '법원의 판결 확정일'이 공급시기가 됩니다.
둘째, 이미 거래 내용과 금액이 확정된 상태에서 단순히 대금 지급을 독촉하는 소송이라면, 원칙으로 돌아가 '재화가 인도되거나 이용 가능하게 된 때'가 공급시기가 됩니다. 이 원칙은 재화뿐만 아니라 용역의 공급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3. Case Study 1: 법원의 판결이 곧 공급시기가 되는 경우
법원의 판결 확정일을 공급시기로 보는 경우는 거래 당사자 간에 '얼마를 줄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법원이 이를 대신 확정해 주는 상황입니다. 이는 법원의 판결 전까지는 과세표준이 되는 공급가액이 불확정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이른바 '가단가(假單價) 계약' 분쟁을 들 수 있습니다. 금지금(고순도 금괴) 거래 등에서 일단 임시 가격(가단가)으로 물건을 주고받은 후, 향후 시세 변동 등을 반영해 최종 정산하기로 했으나 그 정산 금액과 청산일에 다툼이 생긴 경우입니다.
이때는 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공급가액을 알 수 없으므로, 판결 확정일이 공급시기가 됩니다.
건설 현장에서의 추가 공사비 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초 계약한 공사는 끝났지만, 설계 변경 등으로 인한 추가 공사 금액에 대해 발주자가 인정하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진다면, 그 추가분에 대한 공급시기는 법원의 확정판결일이 됩니다.
또한, 부동산 임대료 증감 청구 소송을 통해 임대료가 사후에 확정되는 경우나, 변호사의 성공보수금 약정처럼 승소라는 불확실한 조건이 성취되어야만 가액이 확정되는 경우 역시 판결 확정일을 공급시기로 봅니다.
4. Case Study 2: 원래의 공급시기(인도일)를 지켜야 하는 경우
많은 사업자가 오해하는 부분이 바로 '미수금 소송'입니다. 계약서에 금액이 명시되어 있고 물건도 넘어갔지만, 상대방이 돈을 주지 않아 '물품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합니다. 이때 사업자들은 "판결이 나서 돈을 받아야 거래가 끝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법원과 과세 관청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재화나 용역의 공급과 그 가액이 이미 계약이나 관행에 따라 확정되었다면, 소송은 단지 확정된 채권을 받아내기 위한(추심) 절차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원래 재화가 인도되거나 용역이 완료된 시점에 공급시기는 이미 도래한 것으로 봅니다.
실제 사례로, 인테리어 공사가 완료되어 사용승인까지 받았고 공사대금 합의도 마쳤으나, 발주자가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어 소송이 제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 소송이 공급가액을 새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급을 명하는 소송일 뿐이므로, 용역의 공급시기는 판결 확정일이 아닌 '공사 완공일(사용승인일)'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이 경우 판결일까지 세금계산서 발급을 미뤘다면, '공급시기 미도래' 혹은 '지연 발급' 등의 가산세 폭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5. 주의해야 할 '회색지대': 정산 방법의 명확성
여기서 한 가지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미묘한 지점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가단가 계약'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판결 확정일이 공급시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약 계약서상에 정산금을 산정하는 방법(수식, 기준 시세 등)이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었다면, 법원의 판결은 새로운 가격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계약에 의해 정해진 가격을 '확인'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비록 소송을 거쳤더라도, 계약서상 정산하기로 한 시점(실질적 확정 시점)을 공급시기로 보아야 합니다. 즉, 소송의 껍데기만 볼 것이 아니라, 계약 내용의 실질을 파고들어야 정확한 세무 처리가 가능합니다.
6. 결론: 소송의 본질을 꿰뚫어야 절세가 보인다
소송과 관련된 부가가치세 공급시기 판단의 척도는 ‘소송의 본질'입니다. 지금 진행 중인 소송이 "얼마인지 정해달라(공급가액 확정)"는 외침인지, 아니면 "이미 정해진 돈을 내놓아라(채권 추심)"는 독촉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판결 확정일까지 기다려 세금계산서를 발급하면 되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소송 여부와 상관없이 물건을 넘기거나 일을 마친 시점에 이미 납세 의무가 성립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억울하게 돈을 못 받은 것도 모자라 세금 문제까지 불거지지 않으려면 분쟁 발생 초기부터 전문가와 함께 계약의 성격과 소송의 목적을 면밀히 분석해 적법한 시기에 세금계산서를 발급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참고 문헌 및 근거]
-관련 법규: 부가가치세법 제15조(재화의 공급시기), 동법 시행령 제29조(용역의 공급시기)
-대금 지급 청구 소송 관련: 조세심판원-심판결정례-조심2023부9963
-공급가액 확정 소송 관련: 조세심판원-심판결정례-조심2015서1686
-변호사 성공보수금 관련: 서울행정법원 2014. 4. 4. 선고 2013구합31455 판결
-정산 방법 명확 시 판단: 심사부가2014-0146.

☞곽영국 대표세무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국세청 조사국 등에서 약 20년간 대기업과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 실무를 담당했다. 이후 2011년부터 2024년까지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에서 세무조사 실무대응팀 책임 세무사로 활동하며 조세심판·세무조사 대응 분야를 이끌었다. 대기업 총수 상속·증여세 인용 사건과 기업 분할·합병 과세 취소 사례 등 굵직한 승소 실적을 쌓았다. 현재는 세무법인 HKL의 공동 대표세무사로서 세무조사 사전 진단, 조세 쟁송, 상속·증여세 자문 등 조세 리스크 관리 전반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