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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법인' 꼼수의 종말, 대법원의 '실질과세' 신호탄

  • 2026.01.27(화) 13:21

[프리미엄 리포트]곽영국 세무법인 HKL 대표세무사

최근 가수 겸 배우 차은우가 국세청으로부터 200억원의 세금을 추징된 사실이 알려지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앞서 배우 이하늬·이준기·유연석 등도 1인 기획사를 활용해 거액을 추징 받아 논란이 됐는데요. 반복되는 가족법인 논쟁,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등 약 20여 년간 대기업과 고액 자산가에 대한 세무조사 업무를 담당했던 곽영국 세무법인 HKL 대표세무사가 대법원 판례를 통해 가족법인의 문제점을 분석했습니다.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가족 명의로 기획사를 세우거나 부동산 법인을 설립해 탈세를 시도했다는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 소식이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슈퍼카를 법인 명의로 굴리고, 실제 근무하지 않는 친인척에게 고액의 급여를 지급하는 행태는 고전적인 수법이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025년 12월 24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2025두34044)은 이러한 '무늬만 법인'을 이용한 조세 회피 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얼마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판결을 심층 분석해 '명의' 뒤에 숨은 '실질'을 파헤치는 과세 당국의 논리와 납세자가 유의해야 할 변화된 법적 환경을 5개 파트로 나누어 진단한다.

#1. '합법'을 가장한 '회피': 1달러의 마법과 깨진 침묵

자산가들에게 '절세'와 '탈세'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들 한다. 그 종이 한 장을 넘나드는 기법 중 가장 흔한 것이 바로 '별도 법인'의 설립이다.

이번 대법원 사건의 발단은 피상속인(망인)이 사망 직전, 자신이 보유한 말레이시아 에너지 회사 주식 약 30만 주를 세이셸 공화국에 설립된 한 회사(소외 4 회사)에 단돈 '1주당 1달러'에 넘기면서 시작됐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주식 매매 계약이었다. 계약서가 존재했고, 대금이 오갔으며, 주식 명의가 넘어갔다.

하지만 과세당국인 반포세무서장은 이 거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거래가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급조된 '가장행위'라고 본 것이다. 피상속인이 사망하기 불과 한 달 전, 조세회피처로 유명한 세이셸에 자본금 1달러로 설립된 페이퍼컴퍼니가 매수자였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국세청이 칼을 빼든 연예인 가족법인 사례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연예인 A씨가 자신의 가족 명의로 매니지먼트사를 차리고, 자신의 소득을 해당 법인으로 분산시키는 구조. 겉으로는 적법한 법인 설립과 계약 같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실체 없는 '껍데기'를 이용해 소득세 누진세율을 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바로 이 '형식(Form)'과 '실질(Substance)'의 괴리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2. 1심과 2심의 오해: "계약서가 진짜라면 탈세가 아니다?"

이 사건의 원심(서울고등법원)은 납세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원심의 논리는 간명했다. "주식매매계약서가 위조된 것이 아니고, 피상속인의 계좌로 실제 대금이 입금되었으므로 이를 가짜 매매(가장매매)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민법적 사고방식에 갇힌 해석이었다. 민법상 '통정허위 표시(짜고 치는 거짓 계약)'가 입증되지 않는 한, 개인 간의 계약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사법상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가장행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도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실질과 괴리되는 비합리적인 형식이나 외관을 취하였다고 볼 만한 조세회피행위에도 실질과세원칙이 적용된다"고 못 박았다.

계약서에 도장이 찍혀 있고 공증을 받았더라도, 그 거래가 경제적 합리성 없이 오로지 세금을 줄이기 위한 목적에서 설계된 '비합리적인 형식'이라면 세법상으로는 부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법인을 적법하게 설립했으니 문제없다"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가족 법인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3. 입증책임의 대전환: "오리처럼 걷고 운다면, 오리임을 증명하라"

이번 판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세무 소송의 핵심인 '입증책임'의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과세 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과세관청(피고)에 있다. 과거에는 국세청이 "이 법인은 가짜다"라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하면 패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에 과세관청의 짐을 덜어주었다. 경험칙상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추론에 의하여 과세요건 사실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과세 관청이 입증을 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심스러운 정황(간접사실)들을 지적했다.

1. 시점의 의혹: 매수 법인이 계약 불과 한 달 전,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자본금 1달러짜리 회사라는 점.
2. 가격의 비합리성: 1주당 1달러라는 가격이 어떻게 산출되었는지 근거가 희박하다는 점.
3. 사후 관리: 주식 양도 후에도 원래 주인(원고 측)이 실질적인 권리를 행사한 정황.

대법원은 이러한 간접 사실들이 밝혀진 이상, 이제는 반대로 납세자가 "이 거래가 조세 회피 목적이 아닌, 뚜렷한 사업적 목적과 경제적 합리성이 있다"는 '특별한 사정'을 증명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를 연예인 가족법인에 대입해 보자.

* 국세청의 공격: "당신 가족법인은 직원이 부모님뿐이고, 사무실은 거주지이며, 하는 일이라곤 당신의 출연료를 받아 관리하는 것뿐이지 않느냐? 이는 조세회피 목적의 페이퍼컴퍼니(간접 사실)다"

* 납세자의 방어: 이제 연예인은 "법인이 등기되어 있다"는 항변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가족법인은 실제로 마케팅을 수행했고, MD 상품을 기획했으며, 부모님은 실제로 매니지먼트 업무를 수행했다"는 구체적인 '사업적 실체'를 증명하지 못하면 세금 폭탄을 맞게 되는 것이다.

#4. 법원의 직권 심리 의무: "판사는 심판자가 아닌 진실 탐구자가 되어야"

이번 판결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법원이 하급심 재판부에게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피고(세무서장)가 소송 과정에서 "이 계약은 가장행위다"라고 주장했을 때, 원심은 이를 단순히 "민법상 무효인 계약인가?"로만 좁게 해석했다. 대법원은 이를 질타했다. 

피고의 주장이 "민법상 유효하더라도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과세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었는지 판사가 적극적으로 물어보고(석명권 행사), 이를 심리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는 행정소송(조세소송)의 특수성인 '직권심리주의'를 강조한 것이다. 앞으로 조세 재판에서 판사들은 납세자가 짜놓은 법적 형식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도대체 왜 이런 거래를 했는가?"라는 실질적인 동기를 더 집요하게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일갈은 향후 조세 소송의 트렌드가 '형식적 법리 싸움'에서 '실질적 사실관계 규명'으로 변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5. 결론 및 제언: '무늬만 법인'의 시대는 끝났다

2025두34044 판결은 우리 사회 만연한 '지능적 탈세'에 대한 사법부의 선전포고와 다름없다. 이 판결이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형식(Form)만으로는 더 이상 실질(Substance)을 덮을 수 없다"

최근 국세청이 연예인, 유튜버, 웹툰 작가 등 신종 고소득자들의 가족법인을 전수 조사에 가깝게 들여다보는 것도 이 판결의 법리와 궤를 같이한다.

1. 법인을 세웠다면 그 법인이 독자적인 사업 활동을 하고 있음을 입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 가족 간 거래나 특수관계 법인 간의 거래 가격이 '제3자 간의 거래'라면 납득할 수 있는 가격(시가)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판결문의 '1주당 1달러'처럼 터무니없는 가격은 즉시 의심받는다.
3. 법인의 자금이 사적으로 유용되지 않고, 사업과 무관한 지출(비합리적인 비용)이 없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남들도 다 하니까", "세무사가 괜찮다고 해서"라며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법인 설립과 지분 이동에 경종을 울렸다. 특히 상속이나 증여를 앞두고 급조된 법인이나, 실체 없이 명의만 빌려주는 형태의 구조는 이제 세무조사의 '1순위 타깃'이 될 뿐만 아니라, 법원에서도 구제받기 힘든 '명백한 조세회피'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커졌다.

진정한 절세는 투명한 사업 구조와 합리적인 의사결정에서 나온다. '꼼수'를 '묘수'로 착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세무 전략을 짤 때 '세금을 얼마나 줄일까'보다 '이 거래가 경제적으로 합리적인가'를 먼저 자문할 때다.

☞곽영국 대표세무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국세청 조사국 등에서 약 20년간 대기업과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 실무를 담당했다. 이후 2011년부터 2024년까지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에서 세무조사 실무대응팀 책임 세무사로 활동하며 조세심판·세무조사 대응 분야를 이끌었다. 대기업 총수 상속·증여세 인용 사건과 기업 분할·합병 과세 취소 사례 등 굵직한 승소 실적을 쌓았다. 현재는 세무법인 HKL의 공동 대표세무사로서 세무조사 사전 진단, 조세 쟁송, 상속·증여세 자문 등 조세 리스크 관리 전반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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