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부터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괴담이 있었죠. 세관 직원들이 주로 신혼부부만 노린다는 것입니다.
들어보면 그 이유도 나름 그럴듯합니다. 대부분 결혼할 때 명품가방이나 시계 등의 예물을 마련하는데, 해외 또는 면세점에서 구매하는 게 더 저렴하다 보니 신혼여행에서 명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신혼부부의 짐만 잘 살펴봐도 신고하지 않고 몰래 들여오는 명품을 잡아낼 확률이 높다는 것인데요. 사실 이런 괴담은 지금도 떠돌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명품을 몰래 가지고 들어오다가 적발된 사례가 상당수 있습니다.
이 괴담의 시작은 오래 전인 2013년입니다. 당시 젊은층의 해외여행이 급증하고 그 과정에서 명품가방이나 시계 등을 사오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세관의 단속이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타깃은 20~30대 젊은층이었습니다. 당시 주변 지인에게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개장검사를 당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을 갖고 계신 분들이 꽤 계실 텐데요. 개장검사는 가방을 여는 검사로, 모든 여행자가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무언가 의심이 될 만한 짐을 가진 여행자의 수하물만 골라 개장검사를 하는 것인데요.
대부분은 이 과정에서 신고 없이 몰래 들여온 물품들이 적발됩니다. 당시 명품쇼핑의 천국이라 불리던 홍콩으로 여행을 다녀온 여행자들이 주 단속 대상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더구나 2013년도에는 여행자의 해외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관세청이 통보받아 여행자 휴대품 통관에 활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한창 진행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라는 지적도 쏟아졌지만, 결국 법안은 2014년부터 시행됐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논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인천공항세관에 여행자 휴대품 통관 적발 목표세액이 할당돼 세관 직원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고생하고 있다는 소문도 접했습니다. 목표세수를 정했다는 것은 관세행정 신뢰도를 깨뜨리는 일이었습니다.
기업도 아닌 일반 개인인 여행자들을 잠재적 탈세자로 보고 목표세액을 달성할 때까지 계속 털겠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요. 이런 의혹이 확산되자 관세청은 목표세수도 없고, 타깃을 정해 검사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습니다. 다만 자진신고 비율이 줄어들면서 괌이나 하와이 등 미주지역이나 홍콩이나 유럽 등 주요 관광지에서 오는 여객기를 중심으로 검사를 강화했다고는 밝혔습니다.
연령대 또는 신혼부부 등으로 검사 타깃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명품 쇼핑을 주로 하는 관광지에서 오는 여행자에 대한 검사 강화는 인정한 셈이었는데요.
이런 논란이 있고 1년 뒤 저는 아주 흥미로운 자료를 입수하게 됩니다. 바로 관세청의 목표세수 자료였는데요. 2013년 인천공항세관 여행자 휴대품(개인 간이통관) 관련 목표세수가 230억원이었는데 이를 달성하자, 2014년에는 270억원으로 상향한 것입니다. 관세청은 이를 성과관리지표로 활용해 세관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곧 여행자에 대한 세수 쥐어짜기로 이어졌죠.
그 시기는 박근혜 정부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증세없이 복지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이를 국정과제로 채택했죠. 그래서 인천공항세관에 목표세수가 할당됐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천공항세관이 2013년 목표세수 230억원을 초과달성해 256억원을 걷게 되자, 2014년 목표세수를 270억원으로 상향해버린 것입니다. 이때부터 세관 직원들의 불만이 터져나옵니다. 256억원도 여행자들의 불만과 민원을 견뎌가며 달성한 것인데, 이보다 높은 세수를 걷으라니 직원들은 망연자실했죠.
이에 관세청은 목표세수를 230억원으로 하향조정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결국 관세청은 부인하던 목표세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상황은 어떨까요? 인천공항세관은 과거에 비해 통관 검사 인프라가 풍부해지면서 알고도 눈 감아주는 일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해외 신용카드 사용내역 통보의 경우 시행 초기와는 달리 현재는 800달러 이상 쇼핑했다면 관세청에 실시간으로 통보되기 때문에 그런 여행자만 골라서 검사해도 충분하다는 것인데요.
재미있는 점은 신혼부부에 대한 탈세 제보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신혼부부들은 패키지 여행을 많이 가는데, 단체 관광 중 개인 자유시간에 명품을 많이 쇼핑하는 신혼부부들은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특히 한 신혼부부가 명품을 많이 구매한 다른 신혼부부를 제보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말이죠.
여행자 휴대품 통관과 관련해 여러 논란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진신고입니다. 값비싼 물건을 샀더라도 신고만 잘하고 세금만 잘 낸다면 이런 논란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요? 여행자 휴대품을 자진신고하면 내야 할 세금의 30%도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세관에 적발되면 내야 할 세금의 40%를 가산세로 내야 하는데요.
무조건 신고를 피하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숙한 납세의식과 함께 어떤 선택이 내게 이익이 되는지도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