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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논란으로 읽는 '공급망의 비정한 수학'

  • 2025.12.31(수) 13:32

[프리미엄 리포트]신민호 대문관세법인 대표관세사

쿠팡이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여러 구조적인 사회 문제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데요. 우리는 어떤 부분에 주목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관세·통상·무역 전문가인 신민호 서울관세사회 회장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요즘 쿠팡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날이 서 있습니다. 노동 문제부터 독점 논란까지, 비판의 화살이 사방에서 쏟아집니다.

하지만 관세와 통상, 글로벌 공급망(SCM)을 설계해온 제 시각에 비친 이 풍경은 조금 다릅니다. 이 논란은 단순히 특정 기업의 윤리 문제를 넘어, 우리가 만든 ‘초연결 공급망 시스템’이 스스로 보내는 위험 신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픽=One AI(더존비즈온 AI 솔루션)

#1. ‘로켓배송’을 돌리는 연료: 재고는 잠자고 있는 현금이다

쿠팡의 무기인 ‘싸고, 빠르고, 편한’ 서비스는 공짜가 아닙니다. 직매입 비중이 높은 쿠팡 구조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시간’입니다.

물건이 항구에 들어오는 순간, 관세와 부가가치세, 물품 대금은 이미 지불되었거나 지불될 준비를 마칩니다. 만약 이 재고가 창고에 하루 더 머문다면, 그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잠자고 있는 현금’이 됩니다.

기업의 피 같은 운전자금이 창고에 묶일수록 재무적 기회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결국 물류 현장의 숨 가쁜 속도는 ‘현금 회전율’을 지켜내어 기업의 재무적 동맥경화를 막으려는 시스템적 절박함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2. 설계도의 빈틈: 완벽한 알고리즘이 놓친 ‘사람’이라는 변수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가장 뼈아픈 실책은 시스템 설계의 결함입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요구하는 초고속 회전율을 맞추기 위해 모든 과정은 데이터화되고 최적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완벽해 보이는 수식 속에 ‘인간의 한계’라는 변수가 충분히 반영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효율만을 극대화한 공급망은 작은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팽팽한 활시위와 같습니다. 활시위가 너무 팽팽하면 결국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지기 마련입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현장의 갈등은 기술적 효율성이 인간의 물리적 한계라는 벽에 부딪혔을 때 발생하는 구조적 마찰음인 셈입니다.

#3. 쿠팡은 예외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입니다

“쿠팡만 변하면 모든 게 해결될까?”라는 질문에 저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국경 없는 물류 시대에 쿠팡은 그 거대한 변화의 파도를 가장 먼저 맞이한 사례일 뿐입니다.

이제 모든 수입·유통 기업은 같은 시험대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초저가를 유지하기 위해 공급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세나 수입 가격 구조를 어떻게 짜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얻은 이익이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만큼 건강한지 증명해야 합니다. 이제 통관과 조달 구조는 장부 속에 숨겨진 영역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투명한 성적표가 되었습니다.

#4. 비난의 언어를 ‘구조의 언어’로 바꿀 때

누군가를 비난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이 거대한 시스템이 왜 삐걱거리는지 살피고, 비정한 수학 공식 안에 ‘지속 가능성’이라는 값을 어떻게 집어넣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공급망의 설계도는 숫자와 데이터로 그려지지만,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노동과 사회적 신뢰입니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이라는 거친 바다에서 속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최적의 균형’을 찾는 일, 그것이 저와 같은 전문가들이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이유입니다.

쿠팡이 던진 이 숙제를, 이제는 감정이 아닌 차분한 구조의 언어로 풀어가야 할 때입니다.

☞신민호 관세사는?
25년 경력의 관세·통상 전문가.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실행 가능한 해법으로 전환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한양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 대학원에서 국제상무 전공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실무와 정책을 아우르는 통찰력을 갖췄다. 국내 관세사 최초로 대형 로펌(율촌·충정)에서 관세통상 자문을 수행했으며, 미국 워싱턴 DC의 글로벌 로펌 파견을 통해 현지 통관 시스템을 직접 체득했다. 현재 대문관세법인 대표 관세사 및 서울관세사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2026 쇼크: 공급망은 이미 전쟁터다』와 『트럼프 2.0의 경고』 등 다수의 저서를 통해 기업이 나아가야 할 미래 통상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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