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은 행정이 아니다"
지난해 말,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던진 이 한마디는 정책 자체만큼이나 설명과 홍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발언으로 읽힌다. 이런 영향인지, 오랫동안 폐쇄적인 조직문화가 강했던 국세청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대국민 소통을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인 잣대는 보도자료 건수다. 보도자료는 기관이 어떤 정책과 메시지를, 얼마나 자주 국민에게 직접 전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식 소통 수단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부터 현 이재명 정부까지, 보도자료 건수를 기준으로 국세청장별 소통 강도를 비교해 봤다. 그 시기 국세청 보도자료에서 눈에 띈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월평균 15회' 소통왕 전군표·임광현…누적 1위는 이용섭
택스워치가 2003년 3월 24일부터 2026년 1월 26일까지 국세청의 보도자료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보도자료를 낸 국세청장은 이용섭이었다. 이용섭 전 청장은 재임 기간 총 320건의 보도자료를 발표, 노무현 정부 이후 역대 국세청장 가운데 대외 소통이 가장 활발했다. 그 뒤를 이어 김창기(258건)·임환수(250건)·이현동(247건) 전 청장 순으로 보도자료 발표 건수가 많았다.
다만 재임 기간이 길수록 보도자료 총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 단순한 건수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이에 국세청장별 재임 기간을 한 달(30일) 기준으로 환산해 월평균 보도자료 건수를 살펴봤다.
월평균 기준으로는 전군표 전 청장과 임광현 현 국세청장이 각각 월평균 15회 안팎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상대적으로 짧은 재임 기간에도 불구하고 정책과 현안을 빠른 주기로 설명하며, 소통의 밀도 측면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반면 월평균 보도자료 건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세청장들도 있었다. 임환수·한승희·이현동 전 청장 시기의 월평균 보도자료 건수는 7~8회 수준에 머물렀다. 이들 시기는 재임 기간이 비교적 길었음에도 보도자료 발표 빈도는 높지 않은 편으로, 대외 메시지 발신보다는 내부 집행 중심의 국세행정에 무게를 둔 운영 기조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강민수 청장과 김덕중 전 청장은 월평균 8~9회 수준으로 중하위권을 위치했다.

이용섭 : 현금영수증, 설득의 시간
2005년, 국세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현금영수증' 제도를 시행했다. 거래 과정에서 별도의 신청 없이 현금 사용 기록을 국세청이 전산으로 관리하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새로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참여를 끌어내는 사전 홍보와 설득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 이용섭 전 청장 재임 시절(2003년 3월~2005년 3월) 보도자료에서 집중된 메시지도 현금영수증이었다. 시연회 개최, 전용 홈페이지 개설, 수취자 보상금, 활성화 대책 등 보도자료 제목만 살펴봐도 제도 도입 전후 전 과정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특히 현금영수증 복권 등은 국민을 참여 주체로 끌어들이기 위한 캠페인형 소통으로 평가된다.
◇ 지금은?
현금영수증 제도가 시행된 첫해인 2005년, 현금영수증 발급 건수는 4억4893만건·발급 금액은 18조5598억원 규모였다. 이후 제도는 빠르게 정착됐고, 2024년에는 발급 건수 4억8747만건·발급 금액 180조6648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주성 : 부동산 투기 경고, 종부세
노무현 정부 시절 국세청을 이야기할 때 부동산을 빼놓기는 어렵다. '투기 억제를 통해 주거 안정'을 꾀하려던 정부의 조세정책 기조에 국세청 역시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주성 전 청장 재임 기간(2005년 3월~2006년 6월) 발표된 보도자료에는 아파트값 급등지역 세무 대책, 다수 주택 보유자 세무조사, 송파신도시 부동산투기특별대책팀 긴급 투입 등 부동산시장 과열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과세 당위성을 둘러싼 논쟁과는 별개로,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 제도를 흔들림 없이 집행해야 하는 최전선의 위치에 있었다. 종부세 전담 조직 신설, 기준시가 고시, 제도 궁금증 해소 등 관련 보도자료는 제도 집행 의지와 준비 과정을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 지금은?
종부세가 본격 시행된 2005년, 3만6000명이 총 392억원을 냈다. 2024년, 종부세 납부자는 무려 54만2895명으로 불어나 총 4조4629억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약 20년 만에 납부 인원은 15배, 과세금액은 훨씬 커진 114배나 늘었다.
전군표·한상률 : 무너진 신뢰, 조직 쇄신
전군표 전 청장 재임 시기에도 종부세 제도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개별 세목으로는 이례적으로 인기 연예인인 박상원·김미숙씨를 '명예홍보위원'으로 위촉할 정도였다.
이 시기에는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2006년 개통)도 처음 선보였다. 지금은 편의성이 크게 체감되는 제도지만, 도입 당시에는 개인정보 보호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의료비 공제자료 제출과 관련해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세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병명 정보는 수집되지 않고 제3자의 접근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하며 논란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세청 안팎의 관심을 끈 것은 다른 문제였다. 청장 개인이 불명예스러운 사법 리스크에 연루되면서 조직의 신뢰도는 급격히 흔들렸다. '전군표 국세청장이 구속영장 발부 직후 밝힌 발언'과 같은 보도자료가 나온 것도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이 때문에 후임자인 한상률 전 청장은 정책이나 세정현안이 아닌 조직 신뢰를 회복하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떠안게 됐다.
실제 한 전 청장 재임 시기 보도자료에는 근원적 세정 쇄신, 고위직 감찰 전담 특별감찰팀 설치 등 내부 통제와 조직 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메시지가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선언문에 가까운 셈이다. 또 '국세행정 종합 신뢰도'를 평가 지표로 공개하며, 쇄신 과정을 수치로 점검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현동 : 손안으로 들어온 세정
이현동 전 청장 재임 시기에는 국세행정의 초점이 세금 신고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재임 기간 2년 7개월로 비교적 길었던 만큼, 단기 현안 대응보다는 제도 이용 환경을 개선하는 데 무게가 실렸다.
'연말정산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알아보자', '홈택스와 국세법령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이용하세요'와 같은 보도자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용자 편의 개선을 소통의 중심에 놓았다. 특히 국세청은 SNS 기자단을 발족하며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창구를 넓혔다.
김덕중 : 지하경제 양성화, 드라이브 걸다
박근혜 정부 첫 국세청장이었던 김덕중 전 청장이 강조한 키워드는 '지하경제 양성화'였다. 당시 정부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거나, 지하경제 양성화 사업 등으로 복지 재원을 충당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른바 '증세 없는 복지'다.
이 시기 국세청은 지하경제 양성화 자문위원회 개최,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를 통한 총력 추진 결의 등 보도자료를 내며 정책 의지를 보였다. 세무조사와 체납징수 과정에 금융정보분석원(FIU) 정보를 본격 활용하겠다는 메시지 역시, 지하경제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집행 중심의 소통으로 읽힌다.
◇ 지금은?
2013년, 박근혜 정부는 4대 지하경제(역외탈세, 민생침해사범, 고소득 자영업자, 대법인·대재산가)를 바로 잡겠다고 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중점 관리 분야(4대)로 명칭이 고쳐졌다. 2024년 기준 중점 관리 분야에서 2289건의 세무조사가 이뤄졌다. 이 중 대기업·대재산가가 1069건으로 가장 많았다.
한승희·김현준 : 정치 세무조사 사과, 코로나19
2017년, 국세청 역사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 나왔다. 당시 한승희 전 청장은 이른바 '정치 세무조사'라는 과거사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동안 조직 차원에서는 부인해 온 국세청의 과오를, 기관 스스로 인정한 첫 사례다.
그해 발표된 '과거 세무조사 점검결과 발표 및 처리방안 권고' 자료에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자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겨냥한 세무조사 등 5건의 조사에서 국세기본법상 중대한 조사권 남용이 의심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국세청은 정치 세무조사 원인으로 지목받았던 비정기 조사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김현준 전 청장 재임 기간(2019년 6월~2020년 8월)은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때였다. 코로나가 한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준 만큼, 국민과 기업의 세금 신고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메시지가 많았다. 이때 국세청은 마스크 제조·유통업체 현장 방문하거나, 온라인 판매상·수출 브로커 세무조사 착수 등 시장 질서 유지를 위한 대응을 잇달아 알리기도 했다.
강민수 : 말투가 달라진 국세청
불과 몇 년 전부터 국세청 보도자료는 언어가 달라졌다. 이는 강민수 전 청장 재임 시기에 두드러진 변화였다.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똘똘한 한 채',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등 일상에서 쓰이는 표현을 전면에 내세운 보도자료는, 국세청이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에서 출발해 말하려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을 패러디해 '스드메의 문단속'이라는 제목을 붙인 자료는, 원작자까지 SNS에 공유할 만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강 전 청장 재임 시기는 대통령 탄핵 정국과 겹쳤다. 이 때문에 보도자료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국세청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자'는 발언처럼, 조직 안정과 행정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도 함께 담겼다.
임광현 : 국세행정에 스며든 AI
임광현 청장은 재임 기간이 길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보도자료 건수 자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보도자료를 통해 드러나는 국세행정의 방향성은 뚜렷하다. 국세행정 전반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본격적으로 이식하겠다는 선언이다.
보도자료 제목만 보더라도 '국세청은 지금 AI 대전환을 향해 열공 중', 'AI 3대 강국 도약을 국세청이 뒷받침한다'는 표현은 기술 도입을 넘어 조직문화와 업무 방식까지 바꾸겠다는 메시지에 가깝다.
세무조사 방식을 싹 뜯어고치는 시도도 눈에 띈다. 정기 세무조사를 납세자의 업무공간이 아닌, 조사관서에서 실시하는 사무실 조사 위주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당시 보도자료에 쓴 '기업에 상주하는 세무조사는 이제 옛말'이라는 표현은, 임광현 청장이 강조해 온 '자상한 세무조사' 기조를 대외적으로 선언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 지금은?
국세청은 국세행정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AI 대전환'을 추진 중이다. 올해는 정보시스템 마스터플랜(ISMP)을 수립하고, 내년에는 ▲납세서비스 혁신 ▲공정과세 구현 ▲세정 효율화 등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과제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