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려받은 돈이 바로 '그' 통장에 없다고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서울의 오래된 부촌에 사는 박 씨 집안은 동네에서도 이름난 알부자였습니다.
건물이 몇 채 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이 집이 알부자로 유명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현금 부자였기 때문이었죠. 예금 잔고가 웬만한 중소기업 운영자금보다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월말 카드값이 수천만 원씩 나가도 이번 달은 '좀 적게 썼네'라고 말하곤 했죠. 이 집에서는 큰 돈이 움직이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수억원짜리 정기예금이 만기되면 다른 은행으로 옮겨 다시 묶어두고, 필요하면 그중 일부를 생활비로 썼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병을 앓던 박 씨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인 박 씨는 상가 지분과 예금, 그리고 생전에 미리 받은 현금까지 적지 않은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관리가 힘든 상가 몇 개를 처분하면서 목돈도 들어왔죠. 박 씨는 많은 현금을 한 곳에 묶어 두지 않고 늘 그랬듯이 예금을 통해 자산을 불렸습니다.
부잣집 딸로 살아온 박 씨는 원래 씀씀이가 큰 편이었습니다. 생활비 지출이나 카드값에 연연하지 않고 쓰고 싶은만큼 썼죠. 가족을 돌보는 비용, 집을 유지하는 비용에 가끔은 큰 목돈이 들어가는 지출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재산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쓰는 돈이 있는 만큼 다른 계좌에는 여전히 거액의 예금이 남아 있었고, 정기예금과 보통예금을 합치면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돈도 많았어요.
그런데 박 씨도 어느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 씨 어머니에게서 받은 재산이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유족들은 상속세 신고를 준비하면서 '단기재상속 공제'를 적용했습니다.
단기재상속 공제는 이미 한 번 상속세가 매겨진 재산이 짧은 기간 안에 다시 상속되면, 같은 재산에 세금이 거듭 붙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정 부분을 공제하는 제도입니다.
유족들로서는 공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할머니가 남긴 재산이 그대로 어머니를 거쳐 다시 가족에게 넘어왔으니까요.
하지만 세무서는 전혀 다르게 봤습니다.
#세금이 늘어난 이유
"통장에서 빠져나갔다고, 다 써버렸다는 건 억지예요"
"계좌별로 보는 게 맞습니다. 그래야 추적이 되니까요"
조사 과정에서 박 씨 명의의 여러 계좌를 들여다본 뒤, 상속받은 금액이 들어온 통장들에서 빠져나간 돈을 문제 삼았습니다.
특히 상속받은 현금과 상가를 팔아 받은 돈이 입금된 계좌를 지적했습니다. 그 계좌들에서 시간이 지나며 돈이 빠져나갔고, 카드값 등으로 상속받은 금액을 다 썼다는 이유였습니다.
세무서는 약 20억원을 이미 써버린 돈으로 보고 단기재상속 공제 대상에서 제외했고, 수억원의 세금이 추가로 붙었습니다. 단기재상속 공제는 이미 한 번 과세된 재산이 실제로 다시 상속될 때만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세무서는 이 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다시 상속된 재산으로 볼 수 있지만, 이미 사용돼 없어졌다면 더 이상 상속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겁니다.
박 씨 유족들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돈이 사라진 게 아니라, 통장이 바뀌어서 운용된 거라고 여겼으니까요. 늘 그래왔듯이 어느 통장에서 생활비가 나갔든, 다른 계좌에는 여전히 더 큰 돈이 남아 있었거든요.
#움직인 걸까, 사라진 걸까
"돈은 하나로 이어진 자산이라 어디든 이동할 수 있어요"
"단기재상속 공제는 그 계좌에 남아 있어야 인정됩니다"
유족들은 돈은 원래 이 계좌 저 계좌로 이동하고, 섞이고, 다시 묶이는 재산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정 통장에서 먼저 빠져나갔다는 이유만으로 그 돈이 사라졌다고 보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무서는 단기재상속 공제는 예외 규정인 만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유족들은 세무대리인과 논의를 거쳐, 심사청구를 통해 국세청장에 판단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결론은 '전체 돈' 흐름에
"특정 계좌만이 아닌 전체 내역을 더 들여다 보세요"
"억울하지만…. 재조사에 성실히 응하겠습니다"
국세청은 세무서도, 유족들도 일부 맞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현금과 예금은 아파트나 토지처럼 형태가 고정된 재산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이동하고 섞이는 성질을 가진다고 봤습니다. 때문에 특정 계좌만 떼어 볼 것이 아니라, 전체 계좌의 잔액과 자금 흐름을 함께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유족들 역시 '전체적으로 돈이 많았다'는 사정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각 시점마다 얼마가 어떻게 남아 있었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국세청은 박 씨가 사망하기 전까지 전체 계좌의 잔액과 입출금 내역을 다시 살펴보고,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이 유지된 것인지 재조사해 다시 계산하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절세Tip
단기재상속 공제는 이미 과세된 재산이 10년 이내 다시 상속될 때 적용된다. 다만 '실제로 남아 있는 재산'이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현금·예금은 계좌 이동과 혼합이 잦기 때문에 특정 계좌만 기준으로 보면 불리한 판단을 받을 수 있다. 고액 자산가일수록 전체 자금 흐름과 잔액을 입증할 수 있는 관리가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