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에서 논의 중인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 정책을 두고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기대 섞인 관측이 반복된다. 행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면, 결국 미 대법원이 제동을 걸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 결정 구조와 최근 입법 흐름을 함께 살펴보면, 이러한 기대는 오히려 위험한 판단일 수 있다.
만약 미 대법원이 상호관세 관련 행정명령을 법적 근거 부족을 이유로 취소한다면, 상호관세 정책은 좌초되기보다 입법을 통해 더 빠르게 제도화될 가능성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
상호관세는 구상이 아닌…이미 입법 언어로 준비된 아젠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상호관세를 트럼프의 발언이나 선거용 공약 수준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상호관세가 더 이상 선언적 구호에 머물러 있지 않다. 트럼프 2기 통상 공약으로 제시된 이후, 공화당 진영에서는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입법 검토가 지속돼 왔고, 실제로 그 결과물이 의회에 공식 제출된 상태다.
2025년 1월 24일, 미 하원에서는 라일리 무어(Riley Moore) 의원 등을 중심으로 '미국 상호무역법안(United States Reciprocal Trade Act, H.R. 735)'이 정식 발의됐다. 이 법안은 현재 하원 세입위원회(Ways and Means Committee) 등 소관 위원회에 회부되어 입법 절차를 밟고 있으며, 상호관세 구상이 이미 ‘입법 언어’로 구체화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H.R. 735를 비롯한 상호관세 입법 구상의 공통된 골격은 비교적 명확하다.
•미국 제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 또는 비관세 장벽을 적용하는 국가가 존재할 경우
•의회가 법률로 사전에 정한 위임 범위 내에서
•대통령이 해당 국가의 제품에 대해 동일하거나 상응하는 수준의 관세(Mirror Tariff)를 부과하거나, 이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구조다.
이는 기존 무역법 301조나 232조처럼 장기간의 조사와 분쟁 절차를 거친 뒤 대응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상대국의 관세·비관세 조치 그 자체를 정책 발동의 출발점으로 삼아, 보다 신속하고 직접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하도록 설계된 프레임에 가깝다.
중요한 점은 상호관세가 더 이상 정치적 수사나 정책 아이디어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입법 절차에 진입한 정책 아젠다라는 사실이다. 이는 미 연방대법원이 상호관세 부과 취소판결을 확정하더라도, 상호관세를 재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이미 마련돼 있음을 의미한다.
행정명령이 먼저였고, 입법은 '대기 상태'였다
그동안 상호관세 논의가 본격적인 입법으로 폭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행정부가 행정명령이나 기존 무역법의 확장 해석을 통해 먼저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여당 의원들 입장에서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며 법안을 서둘러 밀어붙일 필요가 없었고, 반대 진영 역시 "법원 판단을 지켜보자"는 명분 아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미묘한 균형은 미 연방대법원 판결 하나로 즉시 깨질 수 있다.
대법원이 취소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경로다
미 연방대법원이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높은 쟁점은 상호관세라는 정책 개념 그 자체가 아니다. 핵심은 대통령이 의회의 명시적 위임 없이 관세를 설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판결의 논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관세 부과는 헌법상 본질적으로 의회의 권한이며
•기존 법률(무역법 301·232조, IEEPA 등)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 경우
•행정부의 단독 조치는 무효라는 판단
이 경우 대법원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 정책을 추진하려면, 의회의 명시적 동의를 거쳐라"
사법 제동은 입법을 늦추기보다 앞당긴다
행정명령이 무력화될 경우, 상호관세 정책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경로는 입법이다. 정책 추진의 정치적 책임은 전면적으로 의회로 이동하고, 행정부를 지지하는 의원들은 "통상 전략을 지지한다면 입법으로 뒷받침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미 준비돼 있던 상호관세 관련 입법 초안과 정책 설계안들이 다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다.
현재 이와 같은 구상들은 하원 세입위원회(Ways and Means Committee)를 중심으로 정책 검토 및 입법 준비 대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의회의 공식 입법 절차로 진입할 수 있는 대기 상태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대법원 판결은 입법의 '기준점'이 된다
대법원 판결은 직접적인 입법 지침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판결문에는 통상 다음과 같은 기준점이 담긴다. 어떤 점이 위임 부족으로 문제 되었는지, 어떤 범위와 절차라면 헌법적으로 허용될 여지가 있는지.
의회는 이를 반영해 상호관세 법안을 다음과 같이 재설계할 수 있다. 대통령의 관세 권한 범위를 법률로 명확히 규정하고, 적용 대상·조건·기간을 구체화하며, 의회 보고 및 통제 조항을 포함할 수 있다. 이렇게 설계된 법률은 행정명령보다 훨씬 안정적이며, 정책 변경 비용이 크게 높아진 구조적·상시적 리스크로 작동하게 된다.
한국 기업이 가장 경계해야 할 오해
이 흐름에서 가장 위험한 판단은 다음과 같다. "대법원이 막아주면 상호관세 정책은 끝난다"
현실은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행정명령 단계에서는 불확실성이 크지만 협상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입법 단계로 넘어가면 상호관세는 상시적·구조적 리스크로 기업 경영의 전제 조건이 된다.
기업이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상호관세가 행정조치가 아니라 법률로 굳어질 경우, 우리 공급망은 이를 견딜 수 있는가. 가격 경쟁력 이전에, 정책 정렬과 설명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가.
사법 리스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미 대법원이 상호관세 관련 행정명령을 취소하더라도, 그것이 곧 트럼프 2.0 관세·통상 정책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호관세는 입법이라는 더 단단한 형태로 재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관세는 단기 변수가 아니라 경영 환경의 전제 조건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막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형태로 고착화될 것인가"를 읽는 일이다. 미 상호관세는 더 이상 통관 실무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경영 판단과 공급망 전략의 문제로 다뤄야 할 시점이다.
☞신민호 관세사(경제학 박사)는?
현 서울관세사회 회장이자 대문관세법인 대표 관세사.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건국대에서 국제상무 전공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무법인 율촌·충정 등 대형 로펌에서 관세통상 자문을 이끌었으며, 미국 워싱턴 D.C. 글로벌 로펌 파견 경험을 통해 독보적인 국제 통상 식견을 쌓았다. 실무와 정책을 아우르는 공급망 전략가로서 『2026 쇼크: 공급망은 이미 전쟁터다』, 『트럼프 2.0의 경고』 등을 집필하며 기업들의 글로벌 생존 전략을 선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