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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교훈, 공급망 잔혹사를 끝낼 마지막 퍼즐

  • 2026.01.16(금) 15:28

[프리미엄 리포트]신민호 대문관세법인 대표관세사

최근 쿠팡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들은 우리 사회에 날 선 질문을 던지고 있다. 현장의 노동 이슈와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겉보기에는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공급망의 관점에서 보면 그 뿌리는 같다. ‘성장의 속도’가 ‘안전 시스템’의 설계 한계를 넘어섰을 때 발생하는 구조적 마찰음이기 때문이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특정 부서를 질책하거나 경영진의 도덕성만 문제 삼아서는 근본적인 해법에 도달하기 어렵다. 원인을 개인의 실수나 불운으로 치부하는 순간, 위기는 이름만 바뀐 채 반복된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다. 이제 비난을 멈추고, 위기를 사전에 제어하고 견뎌낼 ‘구조적 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질문해야 한다.

CSM(Consolidated Supply-chain Management Security, 통합 공급망 보안) 거버넌스(관리체계)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실무적 설계도다. 필자가 저서 『2026 쇼크』에서 제안한 개념으로 공급망 전 과정의 물류·데이터·통관·보안 리스크를 하나의 의사결정 체계로 통합 관리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그래픽=One AI(더존비즈온 AI 솔루션)

1. ‘내 일, 네 일’로 나뉜 칸막이 관리가 기업을 침몰시킨다

그동안 많은 기업은 물류는 물류팀이, 보안은 IT팀이, 세무와 통관은 재무팀이 각각 책임지는 이른바 ‘사일로(Silo) 관리’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공급망은 지정학적 정책, 관세, 탄소 규제, 정보 보안이 실시간으로 얽혀 작동하는 단일 유기체에 가깝다.

물건이 흐르는 길목에는 반드시 데이터가 흐르고, 그 과정에 법적·윤리적 위험이 함께 실린다. 만약 물류, 재무, IT가 서로 다른 언어로 리스크를 해석한다면 사고는 시간문제다. 독자 여러분은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회사의 물류 책임자와 데이터 책임자는 같은 리스크 지도를 보고 있는가.

이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렵다면, 이미 구조적 과부하가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CSM(통합공급망보안)은 조직을 새로 만드는 개념이 아니라, 기존 기능들이 동일한 리스크 언어와 판단 기준으로 정렬되도록 만드는 전략적 오케스트레이션이다.

2. 사고 반복을 끊어내는 3단계 실천 로드맵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면 선언적 사과가 아니라, 단계적이고 기술적인 실행이 뒤따라야 한다.

1단계: 데이터 전 과정을 관통하는 ‘통합 리스크 실사(Integrated Audit)’
단순한 서류 점검이나 형식적 보안 진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원재료 조달 과정에서 생성되는 원산지·통관 데이터와 고객의 개인정보가 시스템상에서 어떻게 결합되고 전달되는지를 엔드 투 엔드(End-to-End)로 점검해야 한다. 특히 FTA 적용, 보조금, 미국·EU 통상 규제에 노출된 기업이라면, 규제 당국의 요구 이전에 원산지 입증 추적(Audit Trail)을 확보하는 능동적 실사 체계가 CSM의 출발점이 된다.

2단계: 72시간 내 방향을 결정하는 ‘회복탄력성 설계(Resilient Design)’
법에 정해진 기준은 아니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위기 대응 사례를 보면 사고 발생 후 72시간이 경영 판단의 분수령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문서 속 매뉴얼이 아니라, CEO를 중심으로 CFO, SCM, 법무 조직이 즉각 가동되는 실질적인 비상 의사결정 구조다. 트럼프 2.0 시대의 통상 규제처럼 예고 없는 충격 앞에서, 어느 공급망을 멈추고(Stop) 어느 거점을 살릴지(Secure)를 결정할 권한과 책임이 사전에 구조화돼 있어야 한다.

3단계: 데이터로 증명하는 ‘검증 가능한 신뢰(Signal)’
앞으로는 가격과 속도보다 과정의 투명성이 더 큰 경쟁력이 된다. ESG, 탄소 배출, 통관 데이터를 시스템으로 연결해 외부의 엄격한 실사에도 흔들리지 않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신뢰는 경영진의 의지가 아니라, 언제든 제시할 수 있는 정제된 데이터로 증명된다.

3. 2026 통상 쇼크를 막을 최후의 평형수

글로벌 공급망은 이미 기업 생존을 가르는 전쟁터가 됐다. 이제 기업은 위기를 몰라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판단할 공통의 구조가 없어서 흔들린다. 물류와 데이터, 보안과 재무를 하나의 거버넌스로 묶는 CSM은 단순한 관리 비용이 아니다. 이는 사고 발생 시 기업 가치가 급격히 훼손되는 것을 막는 ‘손실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장치다.

거친 파도 속에서도 배가 전복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평형수처럼, CSM은 위기 속에서 기업을 가라앉지 않게 만드는 구조적 안전장치다. 쿠팡의 시련이 대한민국 수출 제조기업과 플랫폼 기업들에게 공급망을 다시 설계할 골든타임의 신호가 되기를 바란다. 만약 지금, 사고 이후 72시간 동안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조차 모호하다면,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강력한 경고다.

☞신민호 관세사는?
현재 서울관세사회 회장이자 대문관세법인 대표 관세사를 맡고 있다.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건국대에서 국제상무 전공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무법인 율촌·충정 등 대형 로펌에서 관세통상 자문을 이끌었으며, 미국 워싱턴 D.C. 글로벌 로펌 파견 경험을 통해 국제 통상 식견을 쌓았다. 실무와 정책을 아우르는 공급망 전략가로서 『2026 쇼크: 공급망은 이미 전쟁터다』, 『트럼프 2.0의 경고』 등을 집필하며 기업들의 글로벌 생존 전략을 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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