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맞으시죠?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인터뷰 도중,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영세한 전통주 업체를 백화점과 연결하는 것까지는 세정지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구지방국세청 직원들이 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령의 사업자를 대신해 전자계약 절차를 챙기고, 200만원짜리 쇼케이스 냉장고를 구입해 무상으로 빌려줬다. 팝업스토어 개장을 앞두고는 늦은 밤까지 술을 나르고 행사장을 설치했다.
급기야 사무실에서는 시음회까지 열렸다. 도수가 높은 탁주를 편하게 마실 방법을 찾겠다며 유자청과 레몬즙, 탄산수, 바카디와 커피시럽을 섞었다. 그렇게 '유자 막테일'과 '빈 배히또'라는 레시피가 탄생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전통주가 많이 팔린다고 이들에게 별도의 성과급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일을 하나씩 더했다. 술을 백화점 진열대에 올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소비자가 제품을 맛보고 기억한 뒤, 다시 구매하는 과정까지 고민했다. 광복절에는 이육사 시인의 후손이 만든 청포도 와인에 독립운동과 시의 이야기를 입힌 팝업스토어도 준비하고 있다.
그 이유를 묻자 대구청 직원들은 "현장을 보고 나니 연결만 해주고 끝낼 수 없었다"고 답했다.
택스워치는 박규동 대구청 성실납세지원국장과 조희선 부가가치세과장, 김태형 소비세팀장 등 이른바 대구청의 '주(酒)벤저스'를 만났다. 세금을 걷는 공무원들이 어쩌다 전통주 판로를 개척하고 브랜드 이야기를 만들며, 맛있게 마시는 방법까지 연구하게 됐는지 들어봤다.
Q.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국의 전통주 제조업체들이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장에서 확인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최근 술 소비가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 소규모 전통주 제조업체들은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대구·경북뿐 아니라 전국의 전통주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예전보다 회식과 2차 문화가 줄었고, MZ세대를 중심으로 여러 사람이 많은 술을 마시기보다 혼자 또는 소수로 가볍게 즐기는 소비 패턴이 확산하고 있다. 이런 변화도 전통주 업체의 판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인지도를 높이려면 홍보와 마케팅이 필수적이다. 영세한 업체들은 광고와 홍보에 충분한 비용을 투자하기 어렵다.
그래서 주류 박람회와 백화점, 지역축제 등의 팝업 행사에 참여해 제품을 알리고 소비자를 직접 만나려고 노력한다. 영세한 전통주 업체에는 좋은 술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릴 기회를 확보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Q. 국세청이 전통주 업체의 백화점 입점까지 지원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신세계백화점 팝업스토어를 추진한 계기는 무엇인가?
(김태형 팀장) 국세청 본청 소비세과에서 근무하면서 영세한 주류 제조업체들을 많이 접했다. 수출 지원이나 납세자 상담 업무를 하면서 좋은 제품을 만들고도 판로와 홍보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자들을 봤다.
대구에 와서 지역 업체들을 살펴보니 상황이 비슷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6월 열린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였다. 소비세팀 직원들과 함께행사를 방문했는데, 대구·경북에서도 23개 업체가 참가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여러 업체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부스비나 숙박비, 장비 대여비 등을 빼면 남는 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소비자를 직접 만나 제품을 알릴 수 있어서 계속 참가한다"고말씀을 하시더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국세청에서도 영세 전통주 업체들의 홍보와 판매를 도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게 됐다.
마침 관내 업체가 백화점에서 팝업 행사를 진행하는 사례를 접했다. 많은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백화점이 좋은 판로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해 신세계백화점과 팝업스토어를 추진했다.
Q. 유동인구가 많은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입점은 업체들에도 좋은 기회였을 것 같다. 추진 과정은 어땠나?
처음에는 지역의 다른 백화점과 접촉했다. 그런데 팝업스토어 경험이 있는 사업자에게 물어보니 유동인구와 매출 측면에서 기대할 만한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의 매출이 상대적으로 잘 나온다는 의견을 들었다. 사업자를 통해 신세계 측 담당자의 연락처를 받아 접촉했고, 백화점에서도 행사 취지에 공감해 흔쾌히 수락했다.
처음에는 전통주 업체와 백화점을 연결해주면 나머지는 업체가 알아서 준비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실무에 들어가 보니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 많았다.
행사를 진행하려면 신세계 파트너포털 회원 가입부터 전자계약까지 모든 절차를 온라인으로 처리해야 했다. 첫 참여 업체인 배금도가의 정현선 대표는 일흔이 넘은 고령이어서 이런 디지털 행정 절차를 혼자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업체에 별도 직원이 없다 보니 홍보 시안이나 제품 가격 안내문 등 마케팅에 필요한 자료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 대구청 직원들이 머리를 맞대 아이디어를 내고 디자인과 제작 과정까지 함께 챙겼다.
팝업스토어 운영에 가장 필요했던 것은 쇼케이스 냉장고였다. 업체가 직접 준비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대여가 쉽지 않았다. 앞으로 다른 전통주 업체들도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대구청 예산으로 구매했다.
처음에는 중고 제품도 검토했지만 고장이 잦고 오래 사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와 약 200만원을 들여 새 냉장고를 구매했다. 현재 참여 업체에 무상으로 대여하고 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팝업스토어 개장을 하루 앞두고 늦은 밤까지 무거운 술을 운반하고 행사장을 설치한 일이었다. 팀원들이 많이 고생했다.
그래도 청장님과 국장님을 비롯한 여러 직원이 "어떻게 하면 제품 홍보와 판매를 늘릴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내준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제품을 활용한 칵테일 레시피를 직접 개발한 일이다.
직원들이 술과 칵테일 재료를 구입해 여러 조합으로 섞어봤다. 알코올 도수가 12도인 프리미엄 탁주를 하이볼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직원들이 맛을 평가해 가장 반응이 좋은 조합을 골랐고, 이를 명함 크기의 레시피 카드로 만들었다. 막걸리에 유자를 섞은 '유자 막테일'과 막걸리에 바카디와 커피시럽을 넣은 '빈 배히또' 레시피를 팝업스토어에서 소개했는데 많은 고객이 카드를 가져갔다.
카드에는 QR코드를 넣어 소비자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해당 전통주를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Q. 첫 팝업스토어 당시 스타벅스 논란과 리모델링 공사로 백화점 방문객 감소가 우려됐다. 실제 소비자와 업체의 반응은 어땠나?
우리도 그 부분을 걱정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백화점과 국세청이 함께 준비한 행사라는 점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이 많았다. "국세청에서 이런 행사도 하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시음에 참여한 고객들이 평소 접하지 못했던 지역 탁주를 맛본 뒤 "생각보다 맛있고 괜찮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첫 팝업스토어 당시 백화점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유동인구가 많지 않았는데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 동안 약 8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주일 전체 매출은 1200만원을 넘었다.
전통주 업체 가운데 연 매출이 1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영세 업체가 일주일 만에 1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백화점 측도 판매 속도와 소비자 반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반기에도 팝업스토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참여 업체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또 경쟁력 있는 제품을 계속 발굴해준다면 백화점 주류 코너에서 지역 전통주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전통주 업체 대표들이 가장 만족한 부분은 홍보 효과다. 소규모 전통주 업체는 소비자와 직접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백화점에서 소비자에게 제품을 맛보게 하고, 제조자가 직접 술에 관해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Q.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다. 주류회사 기획영업팀도 아닌 국세공무원들이 늦은 시간까지 레시피를 개발하고 술까지 운반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통주 산업이 침체돼 있고 업체 대부분이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직접 제조 현장을 방문해보니 직원 한 명 없이 혼자 일하는 대표들이 많았다.
홍보를 하고 싶어도 인력이 없고, 어디에서 어떻게 제품을 알려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세금 신고나 납부만 돕는 것을 넘어 사업자가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했다.
이런 것도 넓은 의미의 세정지원이라고 생각한다. 업체와 백화점을 연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매출과 홍보 효과가 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다.
Q. 전통주는 제품마다 맛이 다르고 숙취도 심하다는 인식이 있다. 소비자가 전통주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소주와 맥주는 편의점이나 식당 등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다. 반면 소규모 전통주 업체는 일반 유통망에 들어가기 어렵고 온라인 판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전국적으로 제품 종류는 매우 많지만, 소비자가 직접 맛보고 그중 하나를 고를 기회는 적다.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다고 해도 소비자가 이름조차 모르는 술을 맛보지 않고 주문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먼저 제품을 경험하게 하고, 누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설명할 접점이 필요하다.
팝업스토어는 소비자가 직접 맛본 뒤 온라인 판매처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국 전통주의 높은 진입장벽은 제품 자체보다 마케팅과 유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Q. 소비자가 전통주를 보다 편하게 즐길 방법이 있다면?
과음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맛있다고 짧은 시간에 많이 마시기보다 조금씩 맛보고 즐기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전통주를 사발에 가득 따라 한 번에 마시는 술로만 생각하지 말고, 음식과 함께 천천히 곁들이는 술로 생각하면 된다. 막걸리를 와인잔에 따르면 자연스럽게 천천히 마시게 된다. 한 번에 들이켜기보다 향과 맛을 음미하게 되고, 술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진다.
도수가 높은 탁주는 얼음을 넣어 조금씩 마시면 알코올의 자극도 줄고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전통주는 탁주(막걸리)뿐만 아니라 약주와 과실주, 와인 등 종류가 다양하다. 향이 가볍고 산뜻한 술은 식전주로 활용하고, 풍미가 진한 술은 식사나 안주와 함께 곁들이는 식으로 각 술의 특성에 맞게 즐길 수 있다.
Q. 대구청 주(酒)벤저스가 추천하는 전통주와 음식의 조합은 무엇인가?
전통주나 음식은 개인의 취향이 워낙 다양해서 특정 제품 하나를 꼭 추천하기는 어렵다.
굳이 추천한다면 대구의 10미(味)중의 하나인 무침회나 동인동 찜갈비 같은 매콤한 음식에 이번 백화점 팝업 행사에 참여했던 지역 탁주나 약주를 함께 곁들이면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대구·경북지역에서는 배추전을 많이 먹는데, 담백한 배추전과 탁주의 궁합이 좋다.
매운 닭발처럼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떡볶이 등 매운 음식과 함께 마시면 탁주의 은근한 단맛과 부드러운 질감이 매운맛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Q. 팝업스토어를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인가?
하반기에도 몇몇 업체의 팝업스토어를 추가로 기획하고 있으며, 가능한 범위에서 행사를 정례화할 계획이다. 백화점이 일 년 내내 공간을 제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신세계백화점 측에서 제안하는 일정에 맞춰 추진하려고 한다.
앞으로는 대구청이 일일이 업체를 찾아다니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 전통주 제조업체가 먼저 참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팝업스토어 사업을 적극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장아찌 등 지역 먹거리 업체를 전통주 업체와 함께 입점시키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전통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를 함께 소개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에는 청년 농부와 청년 기업인이 만든 제품도 많다. 이들이 만든 음식 가운데 전통주와 어울리는 제품을 발굴해 함께 소개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제품에 이야기를 더한 팝업스토어도 준비하고 있다. 안동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육사의 후손인 이동수 대표가 운영하는 '이육사 와인'이 있다. 이 대표는 이육사 시인의 시 제목을 딴 청포도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광복절을 전후해 이육사의 독립운동과 시, 후손이 만드는 청포도 와인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 팝업스토어를 기획하고 있다.
단순히 술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소비자의 기억에 오래 남기 어렵다. 제품이 태어난 지역과 제조자의 이야기, 계절과 기념일의 의미를 함께 전달하면 소비자가 제품을 기억할 이유가 생긴다.
요즘 젊은 소비자들은 의미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를 다시 확산하기도 한다. 판매와 홍보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이번 행사에서 대구청 주(酒)벤저스가 최종적으로 기대하는 성과는 무엇인가?
팝업스토어의 판매액만으로 행사를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대구·경북의 좋은 전통주가 제대로 알려지고, 지역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전통주를 즐겨 찾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업체가 스스로 소비자를 만나 판로를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구청이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