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 뉴스를 통해 보도된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워싱턴 연방대법원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건 미국을 위한 관세이며, 판결이 잘못되면 엄청난 비용을 물어야 한다”고 호소했죠.
이번 심리의 쟁점은 미 트럼프 행정부가 IEEPA(국제비상경제권한법) 을 근거로 전 세계 각국에 국가별로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있었느냐가 쟁점입니다.
실제로 대법관들은 이 법이 대통령에게 그런 광범위한 권한을 위임했는지에 대해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신중하고도 비판적인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관세는 세금인가, 아니면 외교 무기인가.’ 트럼프 2기 시대의 핵심 논쟁이 이제 미국 헌법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셈입니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무엇인가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IEEPA(국제비상경제권한법) 을 근거로 대부분의 국가에 대해 이른바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 행정명령을 발동했습니다.
겉으로는 “미국에 관세를 매기면 우리도 그만큼 되갚겠다”는 단순한 보복 원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별 무역적자 규모, 불공정 무역 관행, 산업별 민감도 등을 감안해 각국에 차등 관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25% 수준으로 예고되었던 상호관세율이 무역수지·산업 영향 등을 반영해 약 15%로 조정되는 형태로 산출되기도 했습니다.
즉,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단순한 세율 맞불이 아니라,정치적 협상력과 경제적 이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맞춤형 관세 전략’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5월 국제무역법원(CIT)에 이어 8월 연방순회항소법원(Fed. Cir.)이 잇따라 “IEEPA에는 ‘tariff(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위임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의 핵심 논지는 명확합니다.
관세와 조세는 헌법상 의회의 고유 권한이며, 대통령이 이를 행사하려면 명시적 법률 위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사건은 연방대법원 심리 단계에 있으며, 구두변론에서도 대법관들은 “국가 경제 전반을 좌우하는 결정이라면 의회가 명확히 위임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는, 이른바 ‘주요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 에 근거한 회의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편, 부산 회동에서의 트럼프–시진핑 협상은 미·중 간 긴장 완화의 짧은 숨 고르기로 해석됩니다.
양측은 중국산 수입물품에 대한 평균 관세율을 약 57%에서 47% 수준으로 낮추는 ‘부분 휴전’ 이 발표됐습니다. 그 대가로 중국은 희토류 공급 확대와 미국산 대두 대량 구매를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어디까지나 조건부 완화에 불과하며, 약속 불이행 시 ‘관세 스냅백(재부과)’ 이 즉시 작동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결국 이번 논쟁의 본질은 단순한 세율 인하나 협상의 기술이 아니라, “관세를 누가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가” 라는 미국 헌법적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왜, 나와 우리 회사의 문제일까?
관세 이야기는 멀게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 일상과 바로 맞닿아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로 보죠.
• 스마트폰
한국에서 120만 원에 판매되는 휴대전화가, 어떤 부품이 어느 나라를 거쳤느냐에 따라 미국에서는 하루아침에 가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관세가 내려가 10만 원이 싸지더니, 내일은 다시 20만 원이 더 붙는 식이죠. 이것이 바로 ‘스냅백(관세 되돌리기)’의 현실입니다.
•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에 들어가는 니켈·리튬의 ‘국적’ 이 불명확하면, 관세·보조금·수출통제가 동시에 작동합니다. 항만에서 원산지 증빙 한 장이 누락되는 순간, 완성차 출고 일정이 멈추고 납품 계약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 식품
‘원산지 결정 및 표시’ 체계를 허술하게 관리하면, 제품이 수퍼마켓 진열대에 오르기도 전에 통관 반송이나 폐기 판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세는 더 이상 단순한 세금 계산식이 아닙니다. 이제 그것은 정치·안보·공급망이 얽힌 새로운 언어입니다.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관세가 곧 외교정책이 되는 시대’ 라는 흐름은 이미 되돌릴 수 없습니다. 최근 구두변론에서도 그 분위기가 분명하게 감지됐습니다.
쟁점 포인트 3가지, 쉽게 정리해보면
① IEEPA로 ‘전면 관세’가 가능한가?
법원은 “IEEPA 조문 어디에도 ‘tariff(관세)’라는 단어가 없다”며, “regulate importation(수입을 규율한다)” 는 포괄적 표현만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하고 무기한의 관세 부과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관세는 본질적으로 의회의 권한이라는 헌법 원칙을 재확인한 셈입니다.
② 그렇다면 기존 관세는 모두 사라지나?
아닙니다. 이번 판결은 IEEPA(국제비상경제권한법) 을 근거로 한 상호관세 명령에 한정됩니다. 이미 시행 중인 철강·알루미늄 232조 관세나 대(對)중국 301조 보복관세 등 다른 법률 근거에 따른 조치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즉, 관세정책 전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③ 트럼프–시진핑의 ‘부분 휴전’, 이제 안심해도 될까?
아직 아닙니다. 이번 합의는 조건부 완화 조치일 뿐입니다. 중국이 약속한 희토류 공급 확대나 미국산 대두 구매 이행이 흔들릴 경우, 언제든 ‘관세 스냅백(재부과)’ 이 작동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의 관세 완화는 잠시 열린 ‘정치적 휴식 시간’에 불과하며, 정책 방향은 언제든 다시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을 기업들은 유념해야 합니다.
기업이 당장 점검해야 할 4가지 포인트
① 환급(Refund) 대비 체계 정비
만약 대법원이 IEEPA 상호관세의 위법성을 확정한다면, 이미 납부한 관세 일부에 대해 환급(Refund) 청구가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환급 절차는 건별(entry) 기준 증빙, 납부 영수증, 원산지 서류 등을 갖추어야 하며, 청구 기한과 형식 요건이 매우 엄격하므로 지금부터 폴더 단위로 체계화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② 계약 구조의 ‘트리거(Trigger) 조항’ 삽입
관세나 수출통제 조건이 변동될 경우, 가격·납기·페널티 조항이 자동으로 조정되도록 하는 트리거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해야 합니다. 특히 재협상 절차와 해지 조건을 명시해 두면 ‘관세 스냅백(재부과)’ 발생 시 불필요한 분쟁을 줄일 수 있습니다.
③ 미국시장 대응: ‘이중 안전장치’ 전략
정치 일정 하나로 관세 정책이 급변할 수 있는 만큼, ‘Made in USA’ 표시 요건(예: 품목별로 핵심 공정을 미국 내에서 수행)을 충족하는 현지 조립·포장 체계를 갖추는 동시에, 캐나다·멕시코·베트남 등 우호국(Friend-shoring) 경유 시나리오도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시장 접근 경로를 이중화해 두면 정책 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④ 통관 데이터 거버넌스 강화
HS코드, 원산지, 부속 서류 등 통관 관련 자료를 전면 디지털화하고 감사추적(이력관리; audit trail)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특히 철강·알루미늄(232조), 반도체·배터리 핵심 광물, 농식품 원산지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품목일수록 문서 체계의 정확성이 생명입니다. 이는 APEC 이후 본격화되는 디지털 통관·데이터 표준화 흐름과도 맞물리는 변화입니다.
전문가와의 동행이 중요한 이유
이번 사건에서 미국 대법원은 ‘주요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 MQD)’ 까지 언급했습니다.
이는 “국가 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결정이라면, 의회가 명확히 위임했을 때만 행정부가 실행할 수 있다”는 법리입니다. 결국 이번 분쟁은 단순한 관세 논쟁이 아니라, 헌법적 권한 배분과 통상정책의 경계선을 가르는 시험대인 셈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이제 법·정책·통관이라는 세 갈래를 동시에 읽어내야 합니다. 관세사는 법∙정책∙현장을 잇는 ‘현장형 전략가’ 입니다. 급변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기업의 생존 해법은, 바로 이 전문성과의 동행에서 나옵니다.
☞한 줄 정리
대법원의 판단이 어떻든, 이미 현실은 '관세 = 정치'의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얼마나 싸게 파느냐'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누구와 손잡고,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느냐'가 가격표를 바꿉니다.
뉴스에서 본 대법원 앞 트럼프 대통령의 호소 장면은 그 변화를 상징합니다. 앞으로의 무역은 세율이 아니라 데이터·계약·공급망의 '국적 구조'로 결정됩니다. 그것이 바로 트럼프 2.0 시대, 기업이 읽어야 할 새로운 언어입니다.
☞신민호 관세사는?
국내 유력 관세펌의 하나인 대문관세법인의 대표로, 25년 이상 관세와 외환 및 무역통상 분야에서 컨설팅과 통관을 아우르는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관세사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기업의 통상 리스크 대응, FTA 활용 전략, 외환거래 및 원산지 검증 분야에서 국내 유수 기업의 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2025년 7월, 책으로 펴낸 『트럼프 2.0의 경고: 관세 전쟁 속 Made in Korea 생존 전략』에서 트럼프 취임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상호관세(Mirror Tariffs) 체제를 중심으로, 한국 수출기업이 직면할 통관·관세·FTA 리스크에 대한 분석과 대응 전략을 소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