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기본법 제81조13에 따라 답변할 수 없습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의 국정감사 또는 전체회의에는 매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여야 의원들이 특정 기업이나 고액 자산가에 대한 세무조사 여부를 묻지만, 국세청장은 어김없이 같은 답변을 내놓는다. 세무조사 정보는 납세자 권익과 직결되는 민감한 과세정보인 만큼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세기본법 제81조의13은 세무공무원이 직무상 알게 된 납세자 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세무조사 착수 여부 자체도 비밀 보호 대상 정보로 꼽힌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작 시장에서는 주요 기업 세무조사 정보가 공공연하게 공유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조사 착수 사실이 알려지기도 하고, 세무대리업계나 법조계에서는 조사 대상이나 조사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사전에 돌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국민들은 의문을 품는다. 국세청이 법에 따라 비공개하는 세무조사 정보를 업계와 언론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이하늬 세무조사 정보 유출로 깨진 '금기'
지난해 초 연예인들이 수십억원대 세금을 추징당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며 논란이 커졌다. 그중에서도 배우 이하늬 씨는 당시 알려진 연예인 추징 사례를 훨씬 웃도는 약 60억원을 추징당했다는 보도가 쏟아지며 지탄을 받았다. (현재는 배우 차은우 씨가 세무조사로 약 130억원을 추징, 최고 추징 사례로 거론된다.)
당시 보도에서는 이 씨가 어떤 방식으로 세금을 과소 신고했는지, 추징액 규모가 얼마인지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됐다. 이에 국세청 안팎에서는 개인과 과세관청만 알 수 있는 민감한 과세정보를 언론이 어떻게 확보했는지를 두고 궁금증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그동안 이어진 국세청의 불문율을 깨뜨린다. 세무조사 정보 유출과 관련해 국세청에 직접 항의 공문을 보낸 것이다.
그동안 세무조사를 받는 납세자나 세무대리인 입장에서는 국세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억울함이 있더라도 침묵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조사가 끝난 뒤에도 납세자는 과세당국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나 고소득 개인사업자는 조사 대상으로 또 선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씨는 이례적으로 국세청에 공문을 보내 세무조사 정보 외부 유출 차단, 불복절차 중인 사건에 대한 적극 대응, 언론 추가 보도 차단, 국세공무원의 비밀유지 의무 준수, 국세청 내부 관리와 감독 강화를 요구했다.
공문을 받은 국세청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납세자가 세무조사 정보 유출과 관련해 공식 항의에 나선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고, 내부 과세자료가 외부로 흘러나갔다는 사실 역시 국세청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즉시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 관할 세무서가 아닌 타 관서 직원이 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세청 조사팀은 일반적으로 옆 부서에서 어떤 사건을 조사하는지조차 알기 힘들 정도로 보안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타 관서 직원은 해당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최근 감사원의 국세청 정기감사 결과를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다. 2023~2024년 국세청 직원 389명이 예비 배우자 부모의 납세 정보를 사적으로 열람했다가 적발됐다. 이들은 국세행정시스템을 이용해 예비 배우자의 가족·친인척 과세자료를 조회했지만, 국세청 내부 정보보안 감사에서는 적발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국세청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다만 모든 세무조사 정보가 국세공무원을 통해 유출되는 것은 아니다. 조사 대상 기업 내부 직원이나 거래 관계자 등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상장사의 경우 세무조사 착수 사실만으로도 주가와 투자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과거보다 시장 충격은 줄었다고 하지만, 경쟁 업체가 의도적으로 관련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경우도 업계에서는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국세청 고위직과 '정보력'
세무업계에서는 세무조사 정보가 흘러가는 구조를 단순한 개인 일탈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세무조사 대응 시장이 커지면서 정보 자체가 일종의 경쟁력이 됐다는 것이다.
국세청 고위직이 퇴직하면 대형 법무법인이나 세무법인들이 영입 경쟁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업체들은 전직 고위직의 조사 경험과 네트워크를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한다.
표면적으로는 세무조사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한 영입이지만, 업계에서는 전관 출신 인사들이 가진 정보력 자체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국세청 고위직 출신 인사들은 재직 시절 다양한 기업 관계자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가 수임 경쟁에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복수의 세무업계 관계자들은 "일부 전관 출신 인사들이 조사 동향과 관련한 분위기를 영업 과정에서 활용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업계에서 반복돼 왔다"며 "고위직을 영입한 업체는 사전에 입수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영업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결국 국세청의 강한 비밀주의 원칙과 실제 시장의 정보 유통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는 셈이다. 법으로는 엄격히 보호되는 세무조사 정보가 현실에서는 비공식 네트워크와 이해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시장에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