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집을 짓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요구를 마주했다. 공정을 나눠 벽지·싱크대 등 시공업체와 각각 계약을 진행했는데, 대부분이 현금 결제를 요구했다. 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하자 돌아온 답은 "부가가치세 10%를 더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좌이체를 하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안내받은 계좌는 업체 대표자가 아닌 배우자 명의였다. 이유를 묻자 "원래 이렇게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한 거래 방식처럼 보였지만, 국세청 직원의 눈에는 다른 신호로 읽혔다.
이처럼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거래 관행 속에는 탈세로 이어질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세청은 탈세 단서들을 놓치지 않고 내부 시스템에 기록한다. 이른바 '밀알정보(2024년 2월부터 현장정보로 명칭 변경)'다.
앞선 사례 역시 차명계좌를 통한 탈세 가능성이 의심돼, 관련 내용을 밀알정보로 남겼다. 해당 직원은 "조사를 나가기 전, 관련 업종의 특성이나 차명계좌 활용 방식을 알고 들어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4만개의 눈이 일상 속 탈세 단서 좇는다
국세청 직원은 모두 2만1157명(2025년 9월 기준). 이 중 5급 이하인 2만746명이 업무와 관계없이 6개월마다 3건의 밀알정보를 의무적으로 낸다. 약 4만개의 눈이 일상 속 탈세 의심 정보를 모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정보수집 활동은 2010년 3월부터 시작했다.
이 활동을 의무화 한데는, 세원 발굴과 세금 추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밀알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이다. 승진 잣대가 되는 개인 성과 평가(BSC)와도 연결되어 있다. 다만, 업무 특성을 고려해 부서별로 밀알정보 제출 횟수는 차등(예: 민원실 1건)을 두고 있다.
제출된 정보는 각 지방청 평가 부서에서 1차로 채택 여부를 판단하고, 이견이 발생했을 때는 본청 세원정보과에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구조다. 동일·유사한 내용은 BSC 점수에 반영되지 않는다. 타 직원이 발굴한 내용을 이른바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해서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밀알정보 제출건수는 2022년 9만7576건에서 이듬해 10만건(10만522건)을 넘긴 이후 지난해까지 10만건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밀알정보 1건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정확한 가치를 수치로 환산하기는 어렵지만, 가늠해볼 수 있는 기준은 있다. 밀알정보 1건을 수집·운영하는데 들어간 평균 비용(예산)이다. 2025년 기준 밀알정보 수집 예산은 455억6900만원, 같은 해 제출 건수는 10만631건이다. 이를 단순 환산하면 밀알정보 1건의 가치는 약 45만원 수준인 셈이다.
세원정보 수집 과정에서 질 높은 내용은 이른바 '자탈(자체탈세정보)'로 불린다. 밀알이 동향 파악이라면, 자체탈세정보는 비정기 조사를 착수할 때 만드는 보고서 수준이라고 한다. 자체탈세정보가 채택된다면 세무조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연예인·스포츠 선수도 늘 감시망에 있다. 불과 몇 년 전, 스케이트 국가대표 출신 안 모씨와 A급 남자배우 남 모씨가 자체탈세정보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 차명계좌…탈세 단서가 되는 순간
딱히 '이게 밀알이다'라고 정해진 기준은 없다. TV를 보다가 연예인의 부동산 투자로 수익이 발생했다는 내용도 제출 대상이 된다. 채택 여부를 떠나, 일상 속 포착된 탈세 단서를 모으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택된 사례를 보면, 어떤 정보가 '쓸모 있는 밀알'로 인정되는지 알 수 있다.
한 국세청 직원은 신혼여행 스냅 촬영을 맡겼다가 현금 결제만 요구받은 경험을 밀알정보로 제출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해당 업체는 수개월 전부터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현금영수증은 발행되지 않았다. 이 직원은 "매출 규모를 고려하면 탈루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세청 직원은 중고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의아한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업체 측이 회사 계좌가 아닌 임직원 개인 계좌로 대금을 나눠 입금해 달라고 한 것이다. 실제로 수천만원에 달하는 차량 대금이 대표자가 아닌 상무 계좌와 개인 계좌로 분산 입금됐다. 이 직원은 이를 차명계좌를 활용한 매출 누락 가능성이 있는 사례로 보고 밀알정보로 남겼다.
작은 단서의 축적…밀알정보의 진짜 가치
그렇다고 밀알정보가 세무조사의 씨앗이 되는 건 아니다. 국세청 내부에서도 밀알정보를 활용한 추징실적을 별도로 뽑아내기는 어렵다고 한다.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국회에서 실효성을 두고 꾸준히 지적이 제기되어 온 사안이기도 하다.
내부적으로도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단순히 제출 건수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질 높은 정보를 발굴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4급 이상 간부들 사이에서 "승진해서 가장 좋은 점이 밀알정보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밀알정보의 의미를 높게 평가한다. 한 국세청 직원은 이를 야구의 '9번 타자'에 비유했다. 그는 "모든 정보가 바로 적중한다면 굳이 밀알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일부 단서가 조사에 도움이 되는 구조라는 의미다.
실제 조사 과정에서 밀알정보 쓰임은 분명해진다. 또 다른 국세청 직원은 "정기 세무조사를 나가기 전 밀알시스템을 확인해보니, 해당 업체와 관련된 정보가 한꺼번에 모여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사를 내실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밀알이)씨앗은 아니더라도 거름 역할을 한다"고 했다.
예산 대비 제출된 밀알정보는 1건당 약 45만원의 가치가 있다. 밀알정보 한 건을 만들어 내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투입되지만, 현장에서는 그보다 쌓이는 정보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둔다. 숫자로는 담기지 않는 밀알정보의 진짜 가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