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 납세자보호관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개인의 논란을 넘어 조세행정 전반의 신뢰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납세자 권익 보호를 위해 마련한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는 오히려 국세청을 보호하는 '국고주의' 성향으로 뒤바뀌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국세심사위원회 민간위원 교체 과정에서 집단 사퇴설까지 불거지면서 국세청의 납세자 보호 기능을 근본적으로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세청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국세청 납세자보호관, 반복되는 독립성 논란
국세청의 납세자 보호 제도를 논하기 위해서는 국세청 납세자보호관(납보관)을 빼놓을 수 없다. 국세청이 납세자 보호를 위해 첫 발을 내딛었던 일이 국세청 납보관 자리를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2009년 8월, 납세자가 부당한 세금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도입됐다. 납보관은 고위공무원 나급이며, 개방직으로 임명된다.
납보관은 위법하거나 부당한 세무조사를 중단시킬 수 있다. 또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부당한 행위를 한 국세공무원을 교체하거나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과세전적부심사청구나 심사청구 심의에도 참여한다. 납세자 권리 보호와 관련된 주요 사안을 담당하는 핵심 직위다.
제도 도입 당시에는 세무조사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세공무원에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국세청 납보관 제도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초대 납보관이었던 이지수 현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는 당시 독립성 논란과 관련해 "조직 문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소신 있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기대는 점차 약화됐고, 납보관의 독립성에 대한 의문이 반복되고 있다. 납보관으로 임명되는 순간 국세청 소속이 되는 구조상 조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판단이 가능하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여기에 2년 임기제 구조도 한계로 지목된다. 임기 종료 후 민간으로 복귀하는 특성과 재계약이 가능한 구조가 맞물리면서, 국세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고주의 논쟁…국세청 안팎 논란 확산
과거부터 반복된 논란 속에서도 국세청이 납보관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자기시정' 기능 때문이다. 과세나 세무조사 과정에서 부당함이 발견될 경우 내부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를 두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이러한 자기시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최근 국세심사위원회 민간위원 교체를 둘러싸고 해석이 엇갈리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세무대리업계에서는 "국세청의 납세자 보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세무대리인들은 심사청구 심의과정에서 납세자 권리 구제보다 과세 유지 성향이 강화됐다고 보고 있다.
국세청 출신 한 세무사는 "최근 기각 결정이 늘었다는 말이 현장에서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대형 세무법인 관계자 역시 "국고주의 성향이 강해졌다는 평가가 업계에 퍼져 있다. 세무대리인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세무대리인도 "대부분 조세심판원으로 간다. 국세청 심사청구는 어차피 기각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국고주의는 납세자의 권익보다 국가 재정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외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국세청 납세자 보호 조직의 회의 진행 방식과 발언 태도를 둘러싸고 내부에서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심사위원회 회의에서 납세자가 발언하는 도중, 국세청 내부 인사가 박수를 한 번 '탁' 치며 발언을 제지하는 모습을 보여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납세자 보호 조직이 납세자 보호 역할보다 판단 주체로서 적극 개입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도 한다.
납세자 보호 조직 인사가 국세청 타 직무 직원에게 "저 사람은 세법을 잘 모른다"고 지적하거나, 국고주의 논란과 관련해 "기각 결정을 더 내릴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증언이 복수의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더해 납세자 보호 관련 인사가 국세청 고위직 만찬 자리에서 퇴직 후 세무대리인으로 일하는 인사가 맡은 사건을 우호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세무조사 담당 직원들의 '뒷돈' 요구 의혹이다. 조사 과정에서 이른바 뇌물을 요구하는 일부 조사관들의 일탈에 대해 납세자 보호 조직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납세자들은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가 없는 것이다. 법적으로는 국세공무원의 위법·부당한 요구에 대해 납세자는 납보관에게 권리보호를 요청할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인 셈이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납세자보호관실의 책임자인 이광숙 납보관은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 납보관은 "국세심사위원회 민간위원의 경우 4명의 임기가 만료돼 교체한 것이지, 집단 사퇴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국고주의 성향 지적에 대해서도 "모든 판단은 법적 근거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며 "국세심사위원회는 다수 위원으로 구성된 합의체로 특정 개인이 결정을 좌우하는 구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부 인사의 부적절한 발언이 있었다는 논란과 관련해서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일부 조사관들의 뒷돈 요구 의혹에 대해서는 "타 기관이면 몰라도, 국세청은 강도높게 감찰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세무대리업계에서는 국세청 납세자 보호 자체의 제도적 한계와 더불어 국세청 납세자 보호 조직 소속 인사의 태도 논란이 국세행정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납세자 보호의 본질과 납세자보호관의 독립성 확보 방안을 둘러싼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제도냐 사람 문제냐…엇갈린 해법
현재 불복 청구는 국세청 심사청구, 조세심판원 심판청구, 감사원 심사청구 등 세 가지 경로로 나뉜다.
2025년 기준 조세심판원의 심판청구 처리 대상 사건 수는 4650건으로, 같은 해 국세청 심사청구 373건에 비해 약 12배에 달한다. 이 수치만 보더라도 납세자 입장에서 국세청 심사청구를 상당히 부담스러운 절차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세를 한 기관에 직접 불복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상당수 납세자가 외부 기관인 조세심판원을 선택하면서 국세청 심사청구 규모는 크게 위축된 상황이다.
납세자 권리구제 제도 중 하나인 세무조사 권리보호요청의 경우 심사청구보다 시정률이 더 낮아 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권리보호요청은 납세자의 사전 권리구제에 초점을 맞춘 제도로 조사와 일반 분야로 나뉜다. 조사 분야의 경우 위법·부당한 세무조사나 국세공무원의 부당 행위, 세무조사 기간 연장·범위 확대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납세자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조사 중단이나 조사팀 교체 등의 결정을 내린다.
권리보호요청 중 조사 분야의 시정률은 2016년부터 현재까지 평균 31.6%다. 시정률이 낮더라도 매년 20%대를 유지해왔지만, 지난해에는 역대 최저인 16.4%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대로 떨어졌다.
반면 신고내용 확인 절차 미준수, 과도한 자료 요구, 무리한 현장 확인 등으로 권리 침해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때 신청하는 일반 분야의 권리보호요청은 매년 90% 이상의 시정률을 기록했다.
납세자 권리구제의 핵심인 세무조사 권리보호요청이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국세청 심사청구와 조세심판원의 심판청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다만 제도 자체보다 운영 주체의 문제라는 반론도 있다. 국세청 출신 한 세무사는 "납세자 보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제도보다 사람의 문제"라며 "견제 기능을 위해 다양한 불복 경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최근 택스워치와의 인터뷰에서 국세청 납보관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납보관이 내부 인력과의 접촉이 많아질수록 조직 논리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며 "제도의 한계를 인식하고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란은 국세청 내 납세자 보호 제도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권리 보호가 충분히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납세자 권익 보호라는 제도의 본질이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