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년, 용산세무서가 그해 거둔 소득세는 12억7000만원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크지 않은 금액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전국 81개 세무서 가운데 10억원을 넘긴 곳은 용산과 영등포(12억300만원), 단 두 곳뿐이었다. 용산세무서의 세수는 대전지방국세청 산하 세무서를 모두 합한 규모(12억4100만원)를 웃돌 정도로 많았다.
소득세는 지금이나 당시나 국가 재정을 떠받치는 핵심 세원이다. '3대 세목(소득·법인·부가가치세)' 가운데서도 세수 규모가 가장 크다. 개인의 소득이 모이는 곳에서 걷히는 만큼, 부(富)가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이 소득세수의 흐름을 60년간 따라가 보니, 단순한 통계를 넘어 대한민국에서 돈이 어디에서 벌어지고 어떻게 이동해 왔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부는 강남에 있지 않았다 : 1960년대
1966년 3월 3일 오후 3시. "700억원의 세금을 징수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미션과 함께 국세청이 출범했다. 그해 말 내국세 수입은 704억6900만원으로, 목표치와 거의 맞아떨어졌다. 이 가운데 소득세는 203억500만원으로 약 30%를 차지하며, 전체 세목 중 비중이 가장 컸다. 국세청 출범 당시부터 소득세가 핵심 세원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소득세 상위 10곳 세무서 중 9곳이 서울 지역에 몰려있었다. 현재와는 명칭과 관할구역이 다르지만, 광화문·소공·북부세무서 등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부산(동래세무서)을 제외하면 사실상 서울 도심이 주요 세원을 만든 지역이었다는 의미다.
소득세가 어디에서 걷혔는지를 넘어서, 어떤 소득에서 비롯됐는지를 보면 당시 경제 구조를 더 선명하게 읽을 수 있다.
1966년 소득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갑종근로소득세(94억4000만원)'였다. 지금으로 치면 직장인의 급여에서 원천징수되는 세금이다. 용산서가 10억1800만원으로 가장 많이 거뒀고 그다음은 영등포서(5억2100만원), 광화문서(4억8300만원), 소공서(4억3100만원) 순이었다. 당시 경제활동 인구가 서울 도심에 집중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소득세 하위 10개 세무서 중 수도권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가장 적게 걷힌 곳은 진안세무서(2800만원)로, 용산과 비교하면 약 45배 차이가 난다. 진안을 비롯해 의성세무서(3200만원), 강진·삼천포·하동세무서(각각 3300만원) 등 지방 중소도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방이 상대적으로 세원 기반이 취약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강남 떠오르고, 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1980년대
1980년대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강남권 개발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서울 도심에 집중됐던 소득세 세원 구조에도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1980년 소득세가 가장 많이 걷힌 곳은 용산서(330억3000만원)로, 1966년 한 해 전체 소득세 규모(203억5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여전히 세원 근원지는 서울 도심 중심이었지만, 상위권에 강남세무서(268억2300만원)가 3위로 등장한 점이 눈에 띈다. 강남이 새로운 부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소득세만 보면 변화는 더디지만, 전체 세수에서는 이미 흐름이 바뀌고 있었다. 한국전력 등 대형 법인의 법인세가 늘고 강남권 사업자의 부가가치세 수입이 증가하며, 1986년 강남세무서가 처음으로 세수 1위에 올랐다. 1989년에는 단일 세무서 최초로 세수 1조원(1조166억5900만원)을 넘기기도 했다.
또 다른 변화로는 지방의 약진을 들 수 있다. 대구(118억2300만원)·울산(104억8300만원)·부산진세무서(101억500만원) 등 산업도시 세무서들이 소득세 100억원을 넘어서며 의미 있는 세원으로 등장했다. 이는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제조업과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확산한 결과로 풀이된다.
1960년까지 서울과 지방 간 격차가 극단적이었다면, 1980년대에는 서울 중심을 유지하면서도 부의 일부가 산업도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과도기로 볼 수 있다.
부는 강남으로, 자본은 여의도로 : 1990년대
1990년대 들어서 소득세 구조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1990년 기준, 소득세가 가장 많이 걷힌 곳은 강남서(2111억7700만원)였다. 특히 소득세 상위 10개 세무서 중 강남·개포·반포·송파·서초 등 강남권 세무서가 절반을 차지한 점도 큰 변화다. 부의 중심이 사실상 강남으로 완전히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의도세무서(1722억3600만원)가 2위에 오른 점도 주목된다. 금융기관과 증권사가 밀집한 여의도는 단순한 부의 축적지를 넘어 자본이 움직이는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증권시장이 활황을 보였던 1990년대 중반에는 증권거래세 영향으로, 전체 세수 기준으로 여의도세무서가 1994년과 1995년 두 차례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에는 부는 강남에 쌓이고, 자본은 여의도를 통해 움직이던 시기로 볼 수 있다.
다만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소득세수는 1997년 14조8678억원에서 1998년 17조1940억원으로 증가했다가, 1999년 15조8546억원으로 다시 감소하며 큰 변동성을 보였다.
소득세는 남대문으로 몰렸다 : 2000년대
2000년대 소득세수는 대기업 본사가 몰려있는 남대문세무서가 사실상 독점했다. 2000년 2조원(1조9884억5500만원) 수준에서 2007년 3조원을 돌파한 이후 2010년까지 3조원대를 유지했다. 여기에 금융회사 본사가 밀집한 영등포세무서가 2위(2000년 기준, 1조4436억7800만원)로 자리 잡으면서, 남대문(기업)과 영등포(금융)가 세수를 양분하는 구조였다.
남대문세무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흐름이 뚜렷했다. 관할구역 조정을 통해 세원을 빠르게 흡수한 영향이다. 1994년 8월 소공세무서를 통합한 데 이어, 1999년 9월에는 을지로세무서와 서대문세무서 일부(중구 관할)까지 편입되면서 세원 집중으로 이어졌다.
전체 국세 수입으로 따졌을 때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울산세무서가 1위였는데, 2005~2009년에 남대문이 선두를 탈환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세수에 영향을 미친 변수도 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당시 관광과 소비가 크게 늘면서 부가가치세를 중심으로 한 간접세에서 그 영향이 나타났다. 실제 부가가치세는 2001년 25조8000억원에서 2002년 31조6000억원으로 약 6조원 가까이 급증했다.

NTIS 이후, 세금은 놓치지 않기 시작했다 : 2010년대
이전까지 세수가 어디에서 걷히느냐가 핵심이었다면, 2010년대 들어서는 '어떻게 걷히느냐'가 흐름을 좌우하기 시작했다.
2010년 8월, 국세청은 전산시스템을 전면 손질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2010년부터 2015년까지 202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국세통합시스템을 기존 TIS에서 NTIS로 바꿨다. NTIS는 납세자가 제출한 모든 과세자료를 한데 모아 분석하는 거대한 전산 허브로 보면 된다. 이로 인해 세금 사각지대가 줄고, 과세의 정확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있다.
NTIS 도입 전후로 세수 증가 속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도입 이전인 2010~2014년 총세수는 연평균 증가율은 4%대에 그쳤지만, 도입 이후인 2015~2019년에는 8%대로 두 배 가까이 커졌다. 소득세도 2015년 60조7217억원에서 2019년 83조5619억원까지 늘며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 시기에 소득세만으로 1조원을 넘는 세무서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게 됐다. 2019년 기준 총 17곳으로, 서울(종로·남대문·영등포·강남 등)이 12곳을 차지했다. 수도권(동수원·분당·동안양)을 포함하면 15곳에 달해, 세원이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된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지방에서는 원주세무서와 수성세무서만이 이름을 올렸다. 특히 원주세무서는 전체 소득세수(1조3031억원)에서 약 76%인 9903억원이 사업소득세로 구성돼, 자영업과 숙박·관광업을 중심으로 한 세원 구조를 보여준다.
부의 위치는 바뀌었지만 쏠림은 그대로 : 2025년 현재
60년 전, 12억7000만원의 소득세를 거둬 전국 1위를 기록했던 용산세무서는 2025년 현재 약 3280배에 달하는 4조1653억원을 걷고 있다. 다만 1위의 자리는 바뀌었다. 지금은 영등포세무서가 8조원을 넘기며 전국 1위에 올라 있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세원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업과 금융이 몰린 곳에 부가 쌓였고, 서울과 지방 간 격차 역시 여전히 뚜렷하다.
변하지 않은 건 소득세의 중심이 여전히 근로소득에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전체 소득세 130조4525억원 중 근로소득세는 71조3960억원에 달했다. 개별 세무서도 비슷한 구조다. 영등포세무서는 51%(8조1756억원 중 4조1986억원), 남대문세무서도 약 45%(7조6635억원 중 3조4828억원) 수준이었다.
상위권 20개로 범위를 넓히면 서울 강남권 세무서는 6곳(서초·삼성·역삼·강남·반포·잠실)이다.
이들 세무서의 특징은 자산(부동산 등) 관련 소득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반포세무서는 전체 소득세 2조6391억원 중 양도소득세가 9015억원(34%)이다. 강남세무서는 종합소득세가 1조26억원(33%), 양도소득세가 8446억원(28%)에 달해 사업·자산소득 비중이 6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덕세무서는 소득세로 792억2700만원을 거둬, 전국에서 꼴찌였다. 영등포와 영덕의 격차는 100배를 넘는다. 부의 지형은 바뀌었지만, 쏠림의 크기는 오히려 더 커졌다(1966년 당시 용산과 진안의 격차 45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