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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만 빌려줬을 뿐인데 세금 추징" - 차명계좌와 명의대여의 위험성

  • 2025.12.18(목) 08:00

[프리미엄 리포트]서승원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친구가 급하게 부탁해서 명의만 빌려줬을 뿐인데 수억 원의 증여세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과거 세무상담 현장에서 자주 접하던 사연이다. 주식투자를 하던 친구가 "명의 좀 빌려달라"고 해서 별 생각 없이 증권계좌를 만들어줬는데, 몇 년 후 세무서로부터 거액의 증여세 납부고지서가 날아왔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은 "나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는데 왜 내가 세금을 내야 하느냐"며 억울해했지만, 당시 법은 냉정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2는 주식이나 채권 등 권리의 이전이나 행사에 등기등이 필요한 재산의 실제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실제소유자가 명의자에게 해당 재산을 증여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A가 자신의 돈 5억원으로 주식을 매수하면서 친구 B의 명의로 증권계좌를 개설하고 주식을 취득했다면, 법은 A가 B에게 5억원 상당의 주식을 증여한 것으로 간주했다. 2018년 12월 31일 개정 전에 명의대여를 한 경우, 증여세 납부의무가 명의를 빌려준 B에게 발생했고, 실제 돈을 낸 A는 연대납세의무를 부담했다. 

이 규정은 명의신탁제도를 이용한 조세회피행위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조세법은 실질과세원칙에 따라 명의가 아닌 실질 소유자에게 과세하는 것이 원칙이나, 명의신탁의 경우 조세회피 목적이 다분하고 실질 소유자 파악이 어려워, 입법자는 실질과세원칙의 예외를 인정하여 강력한 제재 수단을 마련했다.

그렇다면 모든 명의신탁이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되는 것일까? 법은 조세회피 목적 없이 타인 명의로 재산을 등기, 명의개서한 경우에는 증여의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2 제1항 제1호). 명의신탁이 조세회피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 이루어졌음이 인정되고, 그에 부수하여 사소한 조세경감이 생기는 것에 불과하다면 조세회피 목적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예외 규정을 적용받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법은 타인 명의로 재산을 등기, 명의개서한 경우 조세회피 목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2 제3항). 조세회피와 상관없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고, 명의신탁 당시나 장래에 회피될 조세가 없었다는 점을 객관적이고 납득할 만한 증거자료로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

한편, 2018년 12월 31일 법 개정으로 명의신탁 증여의제의 납세의무 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개정 전에는 명의를 빌려준 명의수탁자가 1차적 납세의무자였고 실제 돈을 낸 명의신탁자는 연대납세의무를 졌다. 명의를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이 받은 것도 없는데 세금을 내야 하는 억울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러나 개정 후에는 실제소유자인 명의신탁자가 증여세를 납부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조의2 제2항). 이는 조세회피 목적으로 명의신탁을 활용하는 주체는 실제소유자라는 점을 감안하여 납세의무자를 실제소유자로 변경한 것으로, 명의신탁의 실질을 반영한 합리적인 개정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실제소유자가 증여세와 가산금 또는 강제징수비를 체납한 경우 그의 다른 재산으로 강제징수를 해도 징수할 금액에 미치지 못하면, 명의신탁된 재산으로써 실제소유자의 증여세 등을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조의2 제9항).

실제 사례를 보면 명의대여의 위험성이 더욱 명확해진다. 대학 동창인 A와 B가 있었다. A는 주식투자로 큰 수익을 내고 있었는데, 양도소득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친구 B에게 "명의 좀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B는 "친구 사이에 그 정도야"라며 흔쾌히 증권계좌를 만들어줬다. A는 B 명의로 주식 5억원어치를 매수했고, 몇 년 후 10억원에 매도하여 5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A는 B에게 사례금으로 1000만원을 주고 끝났다고 생각했다.

2018년 12월 31일 이전의 명의대여 건이었으므로 B에게 세무서로부터 증여세 고지서가 날아왔다. 5억원에 대한 증여세에 가산세가 붙어 약 1억5000만원이 나왔다. B는 "나는 1000만원밖에 받지 않았는데 왜 1억5000만원을 내야 하느냐"며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법은 A가 B 명의로 주식을 취득한 시점에 B에게 5억원을 증여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B가 실제로 받은 돈이 1000만원이든 1억원이든 상관없었다. B는 결국 A에게 세금을 대신 내달라고 했지만, A는 이미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B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서 증여세를 납부해야 했고, A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A의 행방을 찾을 수 없어 소송도 진행하지 못했다.

2018년 12월 31일 법 개정 이후에 명의를 빌린 경우는 실제소유자인 A에게 증여세 납부의무가 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조의2 제2항).

결국 메시지는 명확하다. 첫째, 명의와 실질이 다른 구조는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둘째, 부득이하게 명의 차이가 발생했다면 조세회피 목적이 없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도록 거래 구조·자금흐름·신고 이력을 정교하게 관리해야 한다. 셋째, 이미 차명관계가 존재한다면, 관련 리스크를 점검해 실제소유자 명의로의 환원, 사전 증여·상속 설계 등 합법적인 정리 방안을 서둘러 모색할 필요가 있다.

"명의만 빌렸을 뿐"이라는 변명은 세법 앞에서 통하지 않는다. 

☞서승원 변호사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제39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다. 제52회 사법시험에도 합격하고 사업연수원(제42기)을 수료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에 입사해 조세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주로 조세일반자문, 조세불복, 관세일반자문, 관세불복, 외국환거래법위반 등 제반 법률문제와 관련된 자문 및 소송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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