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온 경제학의 공식이나 '저축이 우선', '가성비가 최고'와 같은 소비의 원칙들이 순간순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죠.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딸에게는 앞으로 살아가며 돈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면 좋을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놓아도 되는지 작게나마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제 말이 정답일 리도 없고, 어쩌면 틀릴 때도 많을 것입니다. 부모란 누구나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단 하나,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입니다.
제 삶이 실수투성이일지라도, 그 사이에서 나눈 대화의 한 조각이 아이 마음속에 작은 등불처럼 남는다면 그 자체로 값진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즌2에서는 그런 등불 같은 순간들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따뜻한 관심과 동행을 부탁드립니다.

우후죽순 들어선 무인 문구점과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면, 누구나 한 번쯤 어린 시절의 문구점을 떠올릴 것이다.
준비물을 잊어도 문구점만 들르면 수업 준비가 해결되던 시절, 학교가 끝나면 달고나 냄새를 따라 문구점 앞에 서성이던 기억, 50원과 100원으로 사 먹던 군것질거리까지. 그런 장면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동네에서 오래된 문구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은 유난히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무인 문구점을 더 편하게 여긴다. 사장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신상 키링이나 포토카드를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매일 비슷한 시간에 울리는 소영이의 체크카드 사용 알림은 이제 아이의 하교 시간을 알려주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그날도 평소처럼 문자가 왔다. 하지만 사용처는 처음 보는 곳이었다. '아카데O, 2000원'
"이게 뭐야?" 하고 묻자, 소영이는 핑크색 공주 귀걸이와 목걸이를 내밀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줘도 안 할 것 같은 유치한 모양의 귀걸이였다.
"엄마, 원래 3000원인데 문구점 사장님이 2000원에 주셨어. 곧 문 닫을 거라서 다 싸게 판대"
귀걸이를 착용하는 소영이 표정은 어딘가 어색했다. 한쪽이 자꾸 빠지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이음새가 헐거워서 언제 만들어진 물건인지 살펴봤더니 놀랍게도 2022년 5월이라는 글자가 들어왔다. 3년 넘게 문구점 구석에 놓여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괜스레 답답해졌다.
"소영이가 사장님 재고 처리해준 거구나. 이거 먼지 쌓여있던 거 아니야?"
"엄마, 어떻게 알았어? 사장님이 닦아주겠다길래 내가 '사장님! 먼지까지 제가 산 겁니다. 닦아주지 마세요'라고 했어"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는 3년 된 악성재고에 2000원을 썼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소영이는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한 문장에 사장님이 버텨온 시간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무인 문구점과 편의점에 밀려 손님이 줄어든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나날들, 정리하지 못한 채 쌓여 갔을 재고들, 결국 폐업을 앞두고 내렸을 무거운 결정을 하기까지….
소영이의 말 한마디가 그 시간들을 의미없이 버려진 세월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으로 이어진 시간처럼 느껴졌다.
"소영아, 아마 사장님은 네 말 듣고 집에 가서 눈물을 닦으셨을지도 몰라.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끼셨을 거야"
소영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 난 그냥 말한 건데? 내가 돈 주고 샀으니까 먼지도 산 거잖아"
"보통 사람들은 먼지를 닦아달라고 해. 그런데 그 먼지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쌓였잖아. 너는 그 시간까지 산 거야. 사장님에게 그 시간은 굉장히 힘들었을거야. 아마 사장님은 결국 폐업할 것을 왜 긴 시간을 버텼을까 자책할 수도 있어. 그런데 소영이의 말 한 마디로 지나온 시간에 의미가 생긴거야"
소영이는 그냥 던진 말이지만, 내게는 많은 생각을 남겼다.
경제학에서는 소비를 합리적 선택이라고 설명하지만 현실의 소비는 가격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인다.
감정경제학에서는 이를 경험효용이라고 부른다.
물건의 만족은 금액·상태·기능이 아니라 그 물건을 둘러싼 순간과 감정에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오래되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 모든 물건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골동품, 레트로 장난감, 빈티지 가구처럼 시간이 지나서 오히려 가치가 생기는 물건도 있다.
이것이 바로 '시간이 만든 프리미엄'이다. 물건 자체보다 그 위에 쌓인 흔적·경험·감정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생전에는 그림이 팔리지 않았지만, 사후 동생의 부인이 그가 남긴 편지와 삶에 이야기를 입혀 브랜딩함으로써 작품의 가치가 크게 올라갔다.
소영이의 "먼지까지 제가 산 거예요"라는 말은 귀걸이를 단순한 재고품이 아니라 3년의 시간이 스며든 이야기 있는 물건으로 본 셈이다. 아무 것도 아닌 물건도, 이야기가 입혀지면 가치가 생긴다.
며칠 뒤, 다이O에서 비슷한 물건을 봤다. 소영이는 "어라? 이건 절반 가격이네"라고 슬퍼했지만, 난 이렇게 말해줬다.
"너는 한 사람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줬어. 그렇다면 그 돈은 이미 충분히 가치 있게 쓰인 거야"
[어린이도 이해하는 감정 경제학]
◎ 감정경제학이 뭐야?
사람은 물건을 살 때 숫자만 보고 결정하지 않아요. 그 순간의 기분, 상황, 기억이 함께 작용해요.
◎ 경험효용
같은 물건도 누구에게는 별 감정이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마음이 크게 움직일 때가 있어요.
이처럼 내가 직접 느낀 만족이 진짜 가치를 결정합니다.
◎ 감가상각
물건이 오래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말해요. 하지만 그게 항상 나쁜 건 아니에요.
오래된 물건에는 시간이 남긴 이야기와 흔적도 함께 있어요.
소영이가 말한 '먼지의 가치'처럼요.
◎ 시간 프리미엄
골동품이나 빈티지처럼 시간이 지나서 오히려 가치가 올라가는 물건이 있어요.
기능보다 그 물건이 지나온 시간에 사람들이 마음을 줘서 생겨요.
◎ 내러티브 경제학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실러가 제시한 개념으로, 사람들의 행동과 시장은 이야기(내러티브)에 의해 움직인다는 이론이에요.
물건에 이야기가 붙으면 가치가 달라져요. 같은 물건이라도 어떤 사연이 있느냐가 사람 마음을 움직여요.
반 고흐 그림이 가치가 있게 된 것은 그림에 이야기를 입혔기 때문이에요. 이야기가 붙으면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면 가치가 생긴다는 것이 바로 내러티브 경제학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