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한 내가 현관문을 열자 소영이가 인형을 번쩍 들고는 우다다다 뛰어온다.
"엄마, 이거 1만5000원짜리 인형인데 내가 2000원에 샀어. 오늘 운이 1등인 날이야"
학교 수업시간에 필요없는 물건을 친구와 거래하는 '나눔장터'가 열렸는데, 거기서 운 좋게 갖고 싶은 물건을 저렴하게 사게 됐다며 자랑했다. 아이들에게 1만원의 가짜 돈을 나눠준 뒤 물건을 나눔장터에서 물건을 사고팔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소영이 입장에서는 공짜로 인형을 얻게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형을 보니 의문이 들었다. 거의 새 상품이나 다름없었던 데다, 최근 유행하는 인형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저 인형을 2000원에 팔았을까?
궁금해서 묻자 소영이가 답했다.
"우리가 물건의 가격을 크기로 정하기로 했거든. 큰 물건은 3000원, 작은 물건은 1000원인데 이 인형은 크기가 중간 정도라 2000원인거야.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우리 반 애들이 가격을 제대로 정한 것 같지는 않아"
"그러면 적정가격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게 적정가격이겠지. 비슷한 물건이 있다면 중고라도 적정가격을 찾기 쉬울 거야. 대표적인 예가 아파트야. 옆집은 10억원에 집을 팔았는데, 엄마가 소영이에게 5억원에 팔면 그게 적정가격일까?"
"가격은 파는 사람 마음이지. 그리고 엄마, 사랑하는 딸에게 돈을 받으려고 했어?"
고민이 됐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최근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 정책 때문에 대출과 세금 규제가 강화됐고, 저가 양도에 대해서도 국토교통부와 국세청이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자금조달계획서도 전수 검사하겠다고 발표했다.
현행 세법은 가족 간 거래라도 적정가격, 즉 시가를 벗어나면 과세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시세보다 싸게 집을 팔면, 그 차액을 증여로 본다.
가족 간 거래에 대한 과세는 집에만 이뤄지지 않는다. 가족 회사끼리의 거래도 일감몰아주기 증여세를 내야 할 수도 있다. 가족회사에게 일감을 많이 몰아주거나, 일감에 대한 대가(가격)를 과도하게 주면 증여로 간주해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소영아, 물론 엄마는 네게 다 주고 싶지. 그런데 세상은 그걸 공정하지 않다고 해. 예를 들어서 대기업 회장님이 아들에게 재산을 주고 싶은데, 세금 내기는 싫으니까 아들에게 회사 하나를 만들라고 해. 그리고 이 회사에서 파는 물건이 원래 1만원이라면, 10만원에 사주는 거지. 이렇게 아들에게 돈을 몰래 몰래 주는 거야. 이게 공정할까?"
"엄마, 너무 복잡해서 머리가 아파. 머릿 속이 세금으로 가득찬 것 같아. 그래도 엄마가 나한테 주는 것까지 세금내라고 하는 건 국세청이 너무한거야. 대기업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볼게"
사실 공정은 무척 중요하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서 일개 근로자인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면 그 사회가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다고 공정을 위해 무조건 증여세를 무겁게 과세해야 할까? 아이를 키워보니 부모가 자녀에게 한없이 해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하다고 세금을 매기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의 눈에는 부모의 사랑에 가격을 매기고, 그 가격에 따라 내야 하는 벌금이 증여세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세법이 모든 가족의 사랑에 가격표를 붙이려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정한 세상을 위해서는 때로는 사랑에도 세금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손주 사진을 보여주는 어르신에게 "손주 자랑하려면 돈 내고 하라"고 농담하듯이 말이다.
[어린이도 이해하는 세금 이야기]부모님의 사랑과 세금
◎ 증여세란?
누군가에게 돈이나 물건을 그냥 주면 그걸 '증여'라고 해요.
나라에서는 이렇게 받은 재산에도 세금을 매기는데, 그게 바로 증여세예요.
부모가 자녀에게 집이나 돈을 줄 때, 그냥 주면 증여세를 내야 해요.
◎시가와 증여세
'시가'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물건의 값이에요. 적정가격이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시가 10억원짜리 아파트를 5억원에 가족에게 팔면 너무 싸게 판 거예요.
세법은 이런 차이를 공짜로 재산을 준 것으로 보고 세금을 매겨요.
가족이라도 시가보다 30% 또는 3억원 이상 싸거나 비싸게 거래하면 그 초과분에 증여세가 붙어요.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부모 회사가 자녀 회사에 일이나 주문을 몰아줘 자녀 회사의 이익이 늘면, 돈을 직접 주지 않아도 재산이 옮겨진 것과 같아요.
자녀 회사에서 파는 1만원짜리 물건을 아빠 회사가 10만원에 사줬다면, 아들은 9만원을 공짜로 받은 것과 다름 없어요.
나라에서는 이런 거래도 '증여'로 봐요. 이런 거래를 막기 위해 만든 세금이 '일감몰아주기 증여세'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