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어온 경제학의 공식이나 '저축이 우선', '가성비가 최고'와 같은 소비의 원칙들이 순간순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죠.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딸에게는 앞으로 살아가며 돈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면 좋을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놓아도 되는지 작게나마 이야기해주고 싶었습니다.
제 말이 정답일 리도 없고, 어쩌면 틀릴 때도 많을 것입니다. 부모란 누구나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단 하나,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입니다.
제 삶이 실수투성이일지라도, 그 사이에서 나눈 대화의 한 조각이 아이 마음속에 작은 등불처럼 남는다면 그 자체로 값진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즌2에서는 그런 등불 같은 순간들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따뜻한 관심과 동행을 부탁드립니다.

엄마, 이거 3000원짜리인데 기분은 1만원만큼 좋았어
세 살 아기가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는 푸딩을 먹여주겠다며 숟가락을 내민다. 조잡한 장난감에 어이없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소영이가 황급히 변명한다.
"네가 이걸 갖고 논다고? 이건 너무 유치하잖아"
"엄마, 이건 내가 전부터 갖고 싶었던 거야. 내가 이 숟가락으로 엄마 사진에 열심히 먹여줬어"
"이거 샀을 때 네 기분이 어땠어? 쓸데없는 걸 샀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
"아니야. 내가 쓴 돈보다 기분이 훨씬 좋았어"
이 말을 들으니, 대학생 때 친정엄마와 같이 백화점에 갔던 일이 생각났다. 인터넷에서 최저가로 살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백화점에서 물어본 뒤, 비싼 걸 알면서도 매장 직원한테 미안하다며 구매하는 것이다.
용돈을 받아 쓰던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나도 그 기분을 알 것만 같다. 나도 가끔 아이를 데리고 아울렛을 가서 옷이나 운동화를 살 때 인터넷에서 구매하면 더 저렴한 걸 알지만, 귀찮거나 또는 아이가 바로 집에 가져가고 싶어 해서 1만~2만원 정도의 가격 차이는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우는 가성비라는 잣대는 감정의 세계에서는 아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3000원짜리 장난감이 주는 기쁨이 1만원이고, 반대로 10만원짜리 백화점 쇼핑이 남기는 허무함이 0원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대화를 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소영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인형뽑기를 제안했는데 마지막에는 소영이가 눈물을 흘린 것이다.
난 평소에 인형뽑기에 인색한 엄마이지만, 이날은 소영이가 좋아하는 포켓몬 띠부띠부씰을 할머니께서 묻지도 않고 안경케이스에 붙였다며 속상해했다. 그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인형뽑기를 제안했지만 문제는 퇴근한 내가 녹초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저녁을 먼저 먹고 인형뽑기를 하면 안 되냐는 내 부탁을 거절한 소영이는 신나게 인형뽑기를 시작했다. 나는 배고픔과 피로에 조급해져 옆에서 "빨리 해, 엄마 배고파"를 반복했다.
5분 만에 7000원을 쓰고서도 인형을 뽑지 못한 소영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내가 왜 마음이 아픈지 생각해봤어. 이모와 인형뽑기를 할 때는 같이 재미있게 하거든. 서로 즐기면서 하니까 5000원을 20분 동안 쓰면서도 즐거워. 그런데 엄마는 옆에서 빨리 하라고 재촉하니까 인형을 뽑는 게 목표가 돼 버려. 그래서 인형을 못 뽑으니까 너무 속상해"
이 말을 들은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아이의 기분을 달래주기 위해 돈을 썼는데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졌다니, 나도 덩달아 속상해졌다.
"소영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퇴근해서 배도 고팠고, 빨리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가서 씻고 자야 내일 네가 학교를 갈 수 있어서 마음이 급해서 그랬어. 엄마가 반성할게"
소영이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가 반성까지 할 문제는 아니야. 앞으로는 우리 저녁 먼저 먹고 인형뽑기를 하자. 내가 인형뽑기를 먼저 하려고 하면 나를 말려줘"
소영이의 말을 곱씹다 보니, 소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효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좋은 물건을 최저가로 사는 이른바 '가성비'를 최고의 소비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에서 감정효용은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으로 소비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고 본다.
그날 소영이가 울었던 건 7000원을 쓰고도 인형을 뽑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만든 상황효과 때문이었다. 재촉 속에서 하는 소비는 한계효용도, 즐거움도 모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며칠 전 3000원짜리 장난감은 그 가격의 세 배 이상의 행복을 줬다.
아이에게는 물건 자체보다 엄마에게 푸딩을 먹여줬다는 경험이 심리회계의 '기쁨 항목'에 기록된 것이다.
우리는 흔히 가성비를 따지지만 소영이는 그보다 더 정확한 기준을 들려줬다.
"함께 즐겨야 좋아"
경제는 숫자로 계산하지만, 소비의 진짜 가치는 결국 감정이 매기는 가격인지도 모른다.
[어린이도 이해하는 경제학 & 행동경제학]
◎ 경제학은 무엇일까?
경제학은 사람들이 돈으로 무엇을 사고,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공부하는 학문이에요.
"돈이 부족한데 어떻게 알뜰하게 써야 할까?" 같은 문제를 다뤄요.
◎ 행동경제학은 뭐야?
사람들은 항상 계산처럼 움직이지 않아요. 기분이 좋으면 더 쓰고, 속상하면 아무것도 사고 싶지 않기도 하죠. 행동경제학은 이런 마음의 영향을 함께 살펴봐요.
◎ 감정효용이란?
물건값은 3000원이어도, 그걸 사고 마음이 훅 밝아지면 마음속에서는 1만 원짜리 기쁨이 되는 거예요.
값이 싸다고 해서 가치도 작은 건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행복해지는지가 진짜 값어치를 정하거든요.
◎ 상황효과는?
같은 놀이라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 어떤 분위기에서 하느냐에 따라 즐거움이 크게 달라져요.
인형뽑기를 할 때 "빨리 해!"라고 재촉하면 금세 재미가 줄어들지만, 옆에서 응원해주면 더 신나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상황이 감정에 색을 칠하는 것, 그것이 상황효과예요.
◎ 한계효용은 무엇?
처음엔 세상이 다 행복해 보일 만큼 좋다가도, 계속 하면 조금씩 감흥이 줄어드는 현상이에요.
아이스크림도 첫 입은 황홀한데, 두 번째부터는 그만큼 감동적이지 않은 것처럼요.
즐거움도 처음의 반짝임이 조금씩 옅어지는 순간이 찾아오죠.
◎ 심리회계는 무엇일까?
심리회계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감정 통장'이에요.
같은 돈을 써도 즐거울 때 쓰면 '행복 칸'에 기록되고, 속상할 때 쓰면 '속상함 칸'에 기록돼요.
그래서 어떤 돈은 아깝지 않은데, 어떤 돈은 괜히 마음이 쓰일 때가 있죠.
신용카드는 아직 내 손에 들어오지 않은 '미래의 돈'이라서, 쓰는 순간에는 돈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잘 안 나요. 그래서 지금 지갑에 얼마 남았는지 잊어버리고 쓰다가 깜짝 놀랄 때도 있어요.
◎ 가성비는?
가격 대비 값어치가 있는 것을 뜻해요. 좋은 물건을 싼 가격에 사는 걸 "가성비가 좋다"고 말하죠.
어른들은 가성비를 많이 말하지만 마음의 세계에서는 싼 것도 행복하면 최고, 비싸도 기분이 나쁘면 꽝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