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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해외서 거액 세금, 누가 막아주나 봤더니

  • 2026.06.24(수) 07:00

해외주재 국세관 지원활동 살펴보니

"145억원을 낼 수도 있습니다."

2022년 3월, 인도에 진출한 국내 A은행이 현지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통보다. 다자간 금융정보 자동교환(CRS) 관련 계좌정보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액의 과태료를 매긴 것이다. A은행은 통지받은 뒤 정해진 기간(1달) 내 보고를 마쳤지만, 인도 국세청은 과태료 부과를 철회하지 않았다. 

상황이 바뀐 것은 주 인도 한국대사관 소속 국세관이 나서면서부터다. 국세관은 현지 변호사와 함께 관련 법령과 판례를 검토한 뒤 과태료 산정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인도 국세청 본부와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잇달아 만나 재검토를 요청했고, 주 인도대사 명의의 서한까지 전달하며 협의에 나섰다. 그해 8월, 국세관은 A은행에 대한 과태료 부과 절차가 보류된 사실을 확인했다. 

현지 정부의 오락가락한 조세정책이든 공격적인 과세 방침이든, 세정현안을 상시 논의할 전문가가 없다면 기업으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주요국에는 국세청 출신 '국세관(외교부 소속 주재관)'이 파견돼 있다. 앞선 사례에서처럼, 우리 기업이 현지 과세당국과 분쟁을 겪을 때 직접 협의에 나서는 '조세 외교관'인 셈이다.

도쿄부터 멕시코시티까지…9명의 조세 외교관

사실 공식 명칭은 국세관이 아닌 주재관이다. 파견 부처와 담당 업무에 따라 편의상 국세관(국세청), 관세관(관세청), 상무관(산업통상자원부), 국토관(국토교통부), 노무관(고용노동부) 등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5년 말 현재 국세관의 수는 9명이다. 파견 지역으로는 미국(뉴욕·워싱턴) 2명, 중국(북경·상해) 2명, 일본(도쿄) 1명, 베트남(하노이) 1명, 인도네시아(자카르타) 1명, 멕시코(멕시코시티) 1명, OECD(파리) 본부에 1명이 있다.

국세관 파견 지역은 대개 진출기업 수를 따진다. 실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2024년 현재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9930개로, 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73.1%(7263개)에 달한다. 전체 국세관의 절반 넘게 이 지역에 몰려있다. 경제 수치(GDP), 재외국민 수도 파견에 중요한 잣대로 쓰인다고 한다. 

베트남·인도서 빛난 국세관, 유럽은 공백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 흔히 겪는 세금 문제 중 하나는 이중과세다. 국가마다 과세 기준이 달라 같은 소득이나 거래에 두 나라가 모두 세금을 매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국세청이 해외 진출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이중과세 안심센터'를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우리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한 베트남에서는 이중과세 논란이 장기 분쟁으로 번진 사례도 있다.

2023년, 베트남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부가가치세 환급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베트남 국세청이 "영세율 적용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음에도 정부 부처와 지방 세무당국 간 관할권 갈등으로 환급 절차가 1년 넘게 멈춰 섰다. 이에 주 베트남 한국대사관은 재무부·국세청·총리실과 협의를 이어가며 '거래처 환급 후 송금'이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2025년 9월 부가세가 환급되면서 이중과세 문제도 마침표를 찍었다. 

세무 분쟁 해결 사례가 쌓이면서 정부 내에서도 국세관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실제 2024년 '주재관 축소' 방침에 따라 폐지됐던 인도 국세관 자리의 재배치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인도는 우리 기업 진출이 빠르게 늘고 있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2024년 기준, 인도 진출기업은 305개사로, 중남미(268개사)나 중동(214개사) 전체를 웃돈다.

그런데 정작 1000개가 넘는 우리 기업이 진출한 유럽에는 국세관 공백이 이어지고 있다. OECD 본부(파리)에 1명이 파견돼 있지만, 디지털세 등 국제조세 논의를 담당하는 자리여서 개별 기업 지원 역할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세청 내부에서는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지역에 국세관 신설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해외 진출기업은 1만 곳에 육박하지만, 이를 지원하는 국세관은 여전히 9명뿐이다. 기업들이 국경을 넘어 사업을 확장하는 속도를 조세 외교관 증원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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