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가 세금 신고를 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각종 증빙자료를 모으고, 신고서를 작성하며, 실수하지 않기 위해 여러 번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복잡해질수록 납세자는 결국 세무 대리인(세무사·회계사 등)에게 일을 맡기게 되고, 그만큼 직접적인 비용 부담도 생긴다.
이렇게 납세자가 세금을 제대로 내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여 부담하는 것이 '납세협력비용'이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가장 최근 수치만 해도 약 15조원에 달한다. 현재 국세청은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려 납세자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향성을 세워놓은 상태다.
국세행정이 AI로 전환됐을 때 납세협력비용은 얼마나 줄어들까?

AI를 통한 납세협력비용 절감 효과가 공식적으로 외부에 언급된 것은, 임광현 국세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7월 15일)였다.
이 자리에서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세청이 AI 대전환으로 국세행정의 모든 영역에서 전면적 혁신을 하겠다고 했다"며 향후 도입 계획을 물었다. 당시 국세청이 밝힌 혁신 분야는 납세 서비스(홈택스), 공정 과세, 업무 생산성 등이다. 조 의원은 이어 "이에 따른 세수 효과가 연간 10조~20조원 발생한다"는 국세청의 설명도 언급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납세협력비용, 행정업무 효율화, 세수효과 등을 포함한 종합적 기대효과를 의미한 것이라고 한다.
'납세협력비용 15조원' 어디서, 얼마나 부담할까
국세청은 5~6년 주기로 납세협력비용 추정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겨 보고서를 받아 보고 있다. 이를 통해 세목·업종별 비용의 규모를 살펴본 뒤, 납세자별 비용 감축을 위한 로드맵을 짠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2023년에 내놓은 '국세행정에 대한 납세협력비용 측정'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사업자가 부담하는 납세협력비용은 총 15조442억원이다. 조세연이 이 비용을 측정한 건 네 번째로, 2008년 최초로 측정한 추정 비용은 7조140억원(2007년 기준)이었다.
세목별로 소득세 납부 의무이행 때 드는 비용이 40.2%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은 부가가치세(28%)·법인세(21.9%) 등 순이었다. 업종으로 보면 도·소매업(22.5%), 서비스업(15.7%), 부동산업(15.7%), 제조업(14%) 순으로 납세협력비용 부담이 컸다.
사업자당 납세협력비용은 183만원이었는데, 세무 업무가 복잡할수록 부담은 커졌단 분석이다. 실제 법인·개인사업자 중 세무 업무가 가장 복잡하다고 할 수 있는 일반유형의 경우는, 사업자당 각각 580만원·307만원으로 추정됐다. 반면, 간편·단순 유형 개인사업자의 납세협력비용은 각각 94만원·50만원으로 두 유형 간 격차는 컸다.
정보제공의무 유형(13가지)별로는 '증빙수취·장부기장(44.6%)'이 전체 납세협력비용에서 절반 가까이 차지했고, 그다음은 신고납부(31.4%)·거래증빙발급(12%) 순으로 부담이 컸다. 조세연은 "사업자의 신고유형, 업종, 종업원 수 규모 등에 상관없이 증빙수취·장부기장과 거래증빙발급 부문에서 가장 많은 투입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AI로 신고 시간 줄이면…납세협력비용 2조2000억원↓
국세청은 납세협력비용을 측정한 뒤, 국세행정에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2차 측정(2013년 조사) 이후에는 전자세금계산서 도입 등 조치로 납세협력비용을 줄였단 분석이다. 실제 2011년(2차 추정치) 기준 납세협력비용은 국내총생산(GDP)의 0.8% 수준인 9조8878억원이었는데, 2007년(GDP의 0.85%인 7조6000억원)보다 늘었지만, GDP 대비 비율로는 줄었다.
4차 측정(2023년 조사)이 있고 나서도 세정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에 추진한 납세협력비용 감축 과제만 25개다. 주요 과제로는 부가가치세 전자신고 서비스 고도화, 종합소득세 모두채움 확대·정교화, 종합부동산세 경정청구 시스템 개발, 홈택스 지능형 통합검색 구현, 장려금 상담센터 보이는 ARS·콜백서비스 도입 등이다.
특히 올해는 "AI 기반 서비스(신고 항목 미리채움 등)를 제공하겠다"는 방향성까지 밝히며, 납세자들이 한층 더 편의를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국세행정의 AI 전환으로, 매년 약 2조2000억원(5년간 11조원)의 납세협력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봤다.
절감 금액은 '연간 신고 건수(4500만 건) × 건당 절약 시간(2시간) × 시간당 비용(2만5000원, 근로자 평균 시급)'이라는 계산식으로 추정됐다. 이때 신고 건수는 부가가치세·소득세·양도소득세·원천세 등 주요 세목을 포함한 수치이며, 절약 시간은 증빙서류 제출과 신고서 작성에 걸리는 최소 소요 시간 기준이다.
국세청은 AI 기반 기술을 활용해 납세자가 세금 신고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구체적인 감축 규모와 실행계획은 향후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 과정에서 보다 정교하게 제시될 전망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납세협력비용 감축 과제는 매년 초에 설정하고 있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 이후 AI가 화두가 된 만큼, AI 기술 관련 부분도 추가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