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은 세무서다. "증명서 하나만 발급받으려는데…" 하며 창구를 찾는 민원인부터 세무조사 대상이 될지 초조해하는 기업인까지, 세금과 관련한 거의 모든 길은 세무서에서 시작한다.
국세행정의 변화는 일선 세무서에서 가장 먼저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 국세청이 강조하는 화두는 인공지능(AI)이다. 국세청장은 "국세행정 모든 영역을 AI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국세행정의 최전선을 지휘하는 세무서장들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세무서 골칫거리 '민원' 사라진다"
세무서장들이 가장 큰 변화를 예상한 건 '민원 대응 방식'이었다. 사실 민원은 세무서의 숙명과도 같다. 하지만 단순 문의부터 악성 민원까지 섞이다 보니, 때로는 직원들이 본연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선 세무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것도, 직원들을 지치게 하는 것도 결국 민원이라는 말이다. 세무서장들은 AI가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민원을 줄여줄 수 있다고 봤다.
서울의 A 세무서장은 "AI가 1차로 상담을 해주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세무서에 되묻는 건 아니지 않겠느냐"며 "그만큼 직원들은 본연 업무에 집중할 수 있고, 납세자 역시 더 깊이 있는 상담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무 행정의 디지털 전환으로 전자 신고율은 이미 90%를 훌쩍 넘어섰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종합소득세·법인세 전자 신고 비율은 각각 99.7%·97.8%였다. 전자 신고율 자체는 높지만, 현실에 작은 오류나 공포감 때문에 직접 찾아가는 민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수도권 소재 B 세무서장은 "온라인으로 신고가 가능한 시대라지만, 납세자 입장에서는 사소한 실수나 오류가 생기면 결국 세무서를 직접 찾게 된다"며 "AI 상담이 이 부분을 선제적으로 걸러주면 민원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AI 상담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걱정은 잘못된 답변이다. 세무 문제는 돈이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만큼, 납세자가 "AI가 이렇게 말했는데 왜 다른 대답이냐"는 불만이 곧바로 제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B 세무서장은 "AI가 답변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기록을 담당자도 열람·검증할 수 있도록 보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세금 불만 줄어들 것"
세무서장들이 예측한 AI의 또 다른 효과는 '납세자 불만을 줄이는 것'이었다. 납세자 불만이 집중되는 영역인 세무조사 대상 선정으로, AI를 활용하면 더 많은 데이터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정기조사 대상자는 본청에서, 비정기 대상 일부는 세무서에서 고른다고 한다.
서울 소재 C 세무서장은 "사람이 100건을 검토하던 것을 AI가 1만건까지 돌려볼 수 있다면, 특정 기업이 '왜 내가 조사 대상이냐'는 불만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 징후가 뚜렷한 기업을 더 고정하게 골라낸다면, 조사 선정의 투명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AI의 힘을 빌려 조사 대상자를 뽑고 있다.
납세 서비스 측면에서도 기대가 크다. 대표적으로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신고 전 사전 안내문'이다. 법인세 신고 때 신고 도움 자료를 홈택스에 제공하는 서비스로, 기업별로 취약한 부분을 AI가 더 짚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였다.
중부청 산하 D 세무서장은 "개별 사업자들이 주로 실수하는 사례가 지금보다 상세하게 안내된다면, 납세자로서는 불필요한 가산세를 내지 않아 납세 서비스의 질이 오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청 산하 E 세무서장도 "최근 기업인들과 세정간담회를 했는데, 기업 측에서는 사전 안내문이 신고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며 "AI로 지금보다 세밀하게 개선됐으면 한다"고 했다.
"불복 답변서 작성 시간 줄었으면…"
세무서장들은 불복 절차 대응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도 봤다.
납세자가 세금에 불만이 있다면 조세심판원(심판청구)이나 국세청(심사청구)에 불복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때 처분청인 세무서(또는 지방청)도 답변서를 제출해야 한다. 답변서의 형식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사건마다 사실관계와 법리를 다시 정리해야 해 적지 않은 시간을 쓴다고 한다.
B 세무서장은 "AI가 답변서 작성을 보조할 수 있다면, 반복적인 행정 부담이 크게 줄어 내부 업무 효율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조세심판원도 사건조사서 작성을 단축하는 도구로 AI를 택했다. 청구인과 과세관청이 제출한 자료를 분석·정리하고, 관련 선결정례나 법령·판례를 탐색하는 업무에 AI를 쓰겠다는 것이다. 세무서장들은 이런 흐름이 세무서 내부에도 확산하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