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국세행정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국세청은 세금 신고부터 세무 상담·세무조사 선정까지 모든 업무를 AI로 바꾸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는 단순·반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납세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미리 알아서 도와주는' 지능형 세정으로의 진화가 목표다. 'AI 국세행정'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살펴보고자 한다.

AI 국세행정 첫걸음, 빅데이터
2017년 8월, 국세청의 한해 세정 운영 방향을 전파하는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빅데이터'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국세청이 보유한 세무 자료에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도입해, 고위험 탈세 혐의 분야·업종을 발굴해서 조사 대상자로 선정하겠단 구상이었다.
당시에는 정치적 논란이 된 세무조사(태광실업 등)에 대한 점검과 평가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빅데이터 도입 구상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같은 해 11월, 국세행정개혁위원회(국세행정의 현안에 대해 국세청장에게 자문하는 기구) 회의 테이블에 빅데이터 단어는 또 나온다. 개혁위는 이를 세정에 활용하면 납세자별 맞춤·통합형 서비스뿐만 아니라 지능적 탈세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제시된 게 '국세청 빅데이터센터 설립(2019년 7월)'이다.
AI는 데이터가 없으면 작동할 수 없는 구조다. 특히 국세행정처럼 납세자 수가 많고 과세 유형이 복잡한 분야에선, 단순한 정보의 양보다 정제되고 구조화된 데이터가 있어야 AI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빅데이터센터 설립은 AI 국세행정이 본격화하는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실제 AI라는 단어가 국세행정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빅데이터센터 출범 이후부터다. 국세청 관계자도 "현재의 AI 국세행정 기반은 빅데이터센터 설립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 고민 풀어주는 'AI 국세상담관'
AI 기술을 본격적으로 국세행정 분야에 적용한 건 2024년부터다. 그해 초, 국세청은 AI 기반으로 한 '세법 상담'을 상반기 내 구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납세자가 국세청 산하 국세상담센터에 전화(국번 없이 126)를 걸었을 때, 국세상담관에게 연결되기 전에 AI 상담사가 자동으로 대답하는 기술이었다.
과거든 현재든, 세법 상담(전화)은 세무사의 도움을 받기 힘든 영세한 개인 납세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문제는 세목 신고 등 상담업무 집중 시기엔 전화 응답률이 낮다는 데 있었다. 실제 2023년 기준, 국세상담센터의 응답률은 24%에 불과했다.
이른바 'AI 국세상담관'이 등장하며 국세청의 전화 응답률은 확 달라졌다. 5월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 AI 전화 상담이 시범적으로 운영됐는데, 이에 따른 통화 성공률은 무려 98%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납세자는 빠르고 정확하게 답변을 받을 수 있게 됐고, 과거처럼 전화 연결이 지연돼 스스로 끊어야 했던 불편함이 줄어들면서 만족도도 높아졌단 평가다.
국세청에 따르면, 통화 성공률을 100%까지 올리려면 1000명 넘는 상담사가 필요하다. 이들을 고용하려면 약 8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시범사업(AI 상담)에 쓴 돈은 4억원에 미치지 않았다. AI가 어떤 강점을 갖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만 과거 전화 상담 사례라든지 조세 법령, 예규·판례 등을 학습한 시나리오 대화형 기술이란 점에서 한계는 분명했다. 예컨대 "세금이 더 나왔는데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답변이 안 된다. 생성형(사람처럼 묻고 대답)과 달리 대화형은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AI 국세행정 관련 브리핑 당시 김국현 정보화관리관(현 자산과세국장)은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당장은 생성형 상담은 없지만, 가야 할 방향"이라고 했다.
올해부턴 종소세에 더해 연말정산, 부가가치세, 사업자등록, 근로·자녀장려금 관련한 궁금증도 AI 상담사가 풀어주고 있다.

세무조사 베테랑 노하우 학습…대상자 선정도
지난해 하반기부턴 AI가 세무조사 대상자까지 뽑고 있다. ①올해 착수(2023~2024년 사업연도)하는 정기조사로 ②법인사업자가 대상이며 ③AI가 조사 대상의 절반을 선정했다. 통상 정기조사 선정은 5년 주기로 이뤄지며, 연간 수입금액 2000억원 이상인 법인사업자가 조상 대상이 된다. 1984년 전산으로 조사 대상자를 선정하던 방식이, 40년 만에 AI 기반으로 확 바뀐 것이다.
AI의 조사 대상자 선정은 어떻게 이뤄질까. 먼저 AI가 법인의 과거 세금 신고서·재무제표를 들여다보고, 유사 업종의 조사 내용을 검토한 뒤 탈세 위험이 있는 사업자라는 결정을 내린다. 이후 조사담당자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조사 대상자로 뽑는 구조다. 탈세 위험이 큰 사업자를 찾는 적중률은 70~80%가 나온다고 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매출액 2000억원 이상 법인사업자는 5년마다 자동 선정 대상인 만큼, 기준금액 이하 법인사업자를 AI가 골랐다"고 말했다.
올핸 개인사업자에 대해서도 이런 방식(AI 학습→정기조사 선정)이 쓰인다. 또 조사 경력 10년 이상인 베테랑들의 노하우를 학습시켜 비정기 조사 선정에도 활용한단 계획이다. AI 기반 세무조사를 지원할 '탈세적발 시스템' 개발을 추진 중이다.
AI 국세행정 미래…전국 관서장회의때 틀 나올 듯

"대대적인 투자와 과감한 개혁으로 국세행정 모든 영역에 걸쳐 AI 대전환을 이뤄내겠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취임사(지난달 23일)를 통해 AI를 활용한 국세행정의 대수술을 예고한 상태다. 현재 국세청의 AI 서비스는 시나리오형 응답 수준이란 점에서, 이제 막 첫발을 뗀 단계에 있단 평가가 짙다.
이에 국세행정 영역(납세서비스 등)에 생성형 AI 기반 구축을 서두를 가능성이 높다. 생성형 AI를 통해 '전 국민에게 무료 세무 컨설팅을 제공하겠다'는 담대한 비전은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임 청장도 인사청문회 당시 "(생성형 AI 활용) 계획을 세우고 있는 단계다. 계획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갖춰져 있어, 예산이 확보되면 속도감 있게 진행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국세청 내부에선 오는 9월 열릴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에서 AI 국세행정 방향의 큰 틀이 제시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행정의 전면적 AI 전환(AX) 추진으로 책정한 예산은 약 1300억원으로, 구체적인 규모는 향후 수립할 정보정보화전략계획(ISP)에서 제시된다. 미국 국세청은 세무 행정을 AI로 전환하는데 10조원을, 영국 국세청은 1조원을 쓴다고 한다.
사실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따내긴 힘들다. 국가재정법(제38조)상 500억원 이상 국비를 투입하는 사업은 시행에 앞서 정부가 타당성을 검토하기 때문이다. 이 문턱을 넘어야 국세청의 AI 전환 추진이 본격화한다. 국세청은 AI 전환 사업의 시급성·필요성을 고려해, 해당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가 필요하단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내년에 예산이 반영되더라도 시스템이 구축되고 안정화돼야 하는 만큼, AI 국세행정 성과는 1~2년 뒤에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