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상한 조사를 원칙으로 하자
기업에 불편을 끼치던 세무조사 방식을 과감히 개선해 나가겠다
임광현 국세청장이 취임사에서 한 발언입니다. 세무조사는 기업을 비롯한 납세자에게 언제나 부담입니다. 5년마다 하는 정기 세무조사라고 할지라도, 납세자 입장에서는 세무조사 대응을 하기 위한 시간과 인력 등의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잘못 대응했다가는 정기 조사라도 추징액이 많을 수도 있죠.
비정기 세무조사의 심리적 위축과 실질적인 경제적 타격은 두 말하면 입아플 정도입니다. 탈세 혐의를 포착해 착수하는 비정기 조사는 납세자에게 크나큰 부담이자 제약입니다.
세무조사 본연의 목적은 신고내용 검증과 탈세 방지 및 조세정의 실현입니다. 이처럼 목적이 분명한 세무조사가 어떻게 자상할 수 있을까요?
이에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세무대리인과 전·현직 국세공무원을 비롯한 11인에게 자상한 세무조사의 의미와 개선해야 할 세무조사 과정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자상한 조사' 대체 뭐야?
'자상한 조사'가 무슨 의미일지 묻자, 대부분은 "그게 가능하겠냐"라는 반응이었습니다. 한 국세공무원은 '따뜻한 얼음'이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라고 밝혔는데요.
이들이 왜 이러한 반응을 내비쳤을까요?
세무조사의 목적이 검증이고, 그 결과는 추징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잘못을 지적하겠다고 착수한 조사가 어떻게 따뜻할 수 있냐는 말인 셈이죠.
국세청 관계자는 "자상한 조사에 대해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따뜻한 얼음처럼 왜 반대되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외부 시선이 있으니 많이 괴롭히지 않겠다는 의미 정도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K 세무사는 "고압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세무조사를 세팅해놓고 자상한 조사가 가능할 지 의문이다. 몇 년 전에도 국세청에서 세심한 세무조사를 얘기했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며 "지금 나라에서 세수가 부족하다고 하기 때문에 기업인들은 세무조사를 더 많이 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상황에서 자상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사랑의 매를 때리겠다는 말처럼 들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창기 전 국세청장은 지난 2022년 6월 취임식에서 세심한 세무조사를 하겠다며 성실한 중소납세자에 대해서는 간편조사와 조사시기 선택도 할 수 있도록 개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요. 세심한 조사와 자상한 조사는 결국 같은 맥락이 아니냐는 지적인 것입니다.
한 세무법인의 임원은 "추징을 적게 하면 납세자 입장에서 자상한 세무조사라고 느낄 것"이라며 "그렇다고 추징을 적게 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조사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래서 조사는 자상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다른 시각도 있었습니다. 자상한 조사는 정기 세무조사에만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현직 국세공무원은 "정기 세무조사는 5년에 한 번 하는 순환조사로 강압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조사를 나가서 세무컨설팅을 해주고, 잘못된 것은 추징하면 된다"며 "자상한 조사라는 의미는 결국 강압적인 자세로 추징할 의도를 가지고 조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비정기 조사는 탈세 혐의가 있어서 착수하기 때문에 기존대로 하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했습니다.

세무대리인이 말하는 어려움 3가지
납세자와 세무대리인 입장에서 세무조사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을 것입니다. 조세정의라는 대의명분이 있더라도, 이른바 두들겨 맞는 입장에서는 많이 아플 수밖에 없죠.
이들이 말하는 어려움은 ①조사기간 연장 ②세무조사 쟁점 불명확 ③강압적인 분위기 정도로 구분됩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조사기간 연장은 납세자의 편의를 봐주는 것처럼 비춰집니다. 세무조사 대응이 원만하지 않을 때 시간을 더 확보해 대응하는 것이 납세자 입장에서는 유리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S 세무사는 "세무조사 기간이 생각보다 긴 것이 힘든 점이다. 보통은 이슈가 있을 때 세무대리인이 조사팀에 요청해 조사 기간을 연장하지만 최근에는 아니다"라며 "최근 조사 건수 자체가 많다 보니, 국세공무원들이 시간이 부족하다고 오히려 납세자에 기간 연장을 신청하라고 압박을 한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안 따라줄 수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L 세무사는 "납세자 입장에서는 기간 내에 조사를 끝내고 싶어 한다. 당초 계획보다 조사 기간이 늘어나면, 조사 대응에 투입한 직원들을 다른 업무로 전환하기 어렵다"며 "납세자가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것도 조사 기간 연장 사유 중 하나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조사팀에 협조하도록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사팀이 막상 조사에 착수해서는 과세쟁점 사안이나 혐의를 명확하게 거론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방식이 납세자를 더욱 불안하고 위축되게 만든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전직 국세공무원이자 대형 세무법인의 한 대표세무사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면 어떤 범죄 혐의가 있는지 명확하게 말하지만, 국세청이 비정기 세무조사를 할 때는 신고 내용이 틀린 혐의가 있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한다"며 "일부 지방국세청에서는 탈세 혐의를 명확하게 말해주는데, 서울이나 중부지방국세청은 자료 제출만 요구한다. 납세자와 국세청이 힘겨루기만 하다보니 조사 기간이 연장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조사 방식을 바꿔야 한다. 무슨 혐의가 있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해야 한다"며 "이제는 국세청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다고 하니 조사국이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며 "지금처럼 조사를 질질 끌고 가서 혐의를 찾아내는 방식은 신뢰를 얻기 힘들다"고 덧붙였죠.
A 변호사는 "최근에는 조사관들이 최대한 납세자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라며 "다만 독단적으로 판단해 감면했다가 나중에 감사에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어 조사관이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말했습니다.
납세자를 굉장히 압박하는 조사팀의 고압적인 태도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는데요.
D 세무사는 "40대 중반 정도 되는 조사관이나 이른바 MZ 세대 공무원들은 갑질도 없고 대체로 대화가 잘 통하지만 가끔 꽉 막힌 조사관들이 있다. 무리한 자료 제출에 대해 항변을 해도 제대로 못 알아 듣는다"며 "비정기 세무조사의 경우 갑자기 들이닥쳐 세무대리인 등 조력인을 부르라고 한다. 납세자는 세무대리인이나 변호사에게 연락해 당장 와달라고 해야 한다. 세무대리인이 오기 전까지 조사관들은 자료를 예치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기다린다. 그 시간을 버티는 것이 굉장한 압박"이라고 밝혔습니다.
Y 세무사는 "한 번은 조사 대응을 위해 지방국세청에 납세자와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몇 호실인지도 모를 밀실 같은 곳으로 끌려갔다. 창문도 없고 조사관 2~3명이 앞에 앉아서 질문을 하는 분위기 자체가 고압적으로 느껴진다"며 "같이 갔던 납세자는 손을 벌벌 떨었는데, 그 과정 자체가 납세자에게는 힘이 든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밖에 김 전 국세청장이 세심한 세무조사를 하겠다며 늘린 간편조사에 대한 지적도 있었는데요.
L 회계사는 "코로나19 이후로 간편조사가 많이 늘었지만, 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다. 세무조사는 줄었지만, 해명자료 요청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며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심각한 혐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추징액이 대략 얼마라고 터 놓고 말해줬으면 한다"고 제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