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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저항급 사고"…국세청, 세무조사 대상 200여곳 잘못 선정

  • 2025.10.23(목) 10:18

신규 세무조사 전면 중단…감사원 감사 진행중

"내가 왜 세무조사 대상이 됐을까?"

세무조사를 받는 대부분의 납세자들이 한 번쯤 품는 이 의문 때문에, 세무조사 대상 선정에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정치권에서는 간혹 국세청을 향해 불공정 또는 정치 세무조사라는 비판을 제기하지만, 국세청은 그때마다 법과 기준에 따라 공정하게 대상을 선정했다고 반박해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까지 도입해 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등 공정성 제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국세청이 조사 대상을 잘못 선정하는 바람에 신규 세무조사가 전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조사를 받아야 할 사업자는 빠지고 엉뚱한 납세자가 대상에 포함되면서, 세무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세무조사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조세저항급 사고'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세무조사 순위 뒤바뀌며 엉뚱한 곳이 타깃

세무업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올해 상반기부터 국세청 본청 등을 대상으로 '세무조사 운영 실태' 관련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무조사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감사 진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특히 조사 대상 선정의 핵심 잣대인 성실도 점수 산정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돼, 200여곳 법인이 조사 대상으로 잘못 지정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로 인해 올해 6월부터 착수 예정이던 신규 세무조사는 모두 일시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법인세과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감사원에 공식 보고했다.

세무조사 대상은 국세청이 아무 곳이나 임의로 선정할 수 없다. 세무조사는 정기와 비정기로 나뉘는데, 정기 조사 대상 선정은 국세기본법(81조6)에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①일반적으로 납세자의 성실도를 따져 조사 대상을 선정한다.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신고 내역과 세원 정보를 종합해 전산시스템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올해 법인사업자 선정유형별 비율을 보면, 전산 성실도 부분이 48.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②대외적으로 잘 알려진 건 순환조사다. 수입금액 2000억원을 넘긴 법인사업자에 대해 5년을 주기로 조사를 하는 방식이다. 비율로 보면 22.9%였다. ③수입이 2000억원에 미달해도 조사를 받는다. 법인세를 성실하게 신고했더라도 장기간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다면 장기미조사 법인으로 분류돼 조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10곳 중 3곳(29.0%)이 이에 해당했다.

국세청 출신의 한 세무사는 "과거에도 점수 산정 로직(판단 기준) 오류로 잘못된 순위가 반영된 사례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 오류는 드물다"며 "납세자들이 조세저항을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무조사 불신 가장 큰 이유는 '선정'

현재 세무조사가 진행되거나 끝난 이후에 조사 대상자에게 절차상 위법하거나 부당한 행위가 있었는지를 묻는 절차가 있다. 세무조사 모니터링 제도로, 납세자는 이 통로를 통해 불편·불만 사항을 털어놓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총 5065건(온라인 1217건·전화 3848건)의 실시간 모니터링이 이뤄졌다. 같은 기간 사후 모니터링은 1만건(9890건)에 육박한다. 작년 한 해 1만4000건의 수준으로 세무조사가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10명 중 7명이 조사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셈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납세자 불편·불만 사항에서 '세무조사의 공정한 선정·설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경영 현실을 고려한 조사 선정·집행(업황 이해부족)이나, 실적 위주의 무리한 조사 진행을 지적하는 납세자도 적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조사 대상을 AI로…오류 없어질까

국세청은 최근 세무조사 대상 선정 과정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AI 기반 세무조사 선별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현재는 정기조사 대상 법인의 절반만 AI로 선정하고 있지만, 향후 개인사업자 선정에도 적용해 AI 활용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한 대형 로펌 세무사는 "AI를 조사 대상자 선정에 활용한다면, 가장 중요한 건 분석의 정합성"이라며 "단순히 데이터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조사 목적과 데이터 선별 논리가 일치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사실 성실도 점수 오류는 국세청의 인사시스템 등 구조적인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담당자가 승진이나 순환보직으로 자리를 옮기면 후임자가 시스템 로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검증이 부실해지는 일이 잦다는 후문이다. 일례로, 성실도 점수를 매길 때 감점(마이너스)을 줘야 할 부분을 단순히 0점으로 처리하면서 조사 순위가 왜곡되는 일도 있었다. 

국세청 출신 세무사는 "AI 기반 조사 대상 선정 시스템은 사람이 직접 로직을 해석하고 관리하던 시대보다 오류 가능성을 줄일 여지가 있다"며 "다만 시스템 설계의 정합성을 검증할 장치가 없다면, 또 다른 형태의 기계적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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