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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원조가 사실 국세청이라고?"

  • 2025.08.19(화) 09:36

<엄마와 초등딸의 택스에세이> #11

제게는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 소영이가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보는 세상이 넓어지면서 슬슬 세금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른의 언어로 알고 있는 세법 상식을, 아이의 눈높이로 설명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엄마의 대답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아이의 가치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세금 상식에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었습니다. 부모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이야기들. 아이의 질문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도록, 그 방법을 독자 여러분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와 초등딸의 택스에세이>는 기사보다는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형식도, 틀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세금 기사를 써 온 엄마 기자와 이제 막 "왜?"를 묻기 시작한 딸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세금'을 이야기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해보는 여정입니다.

엄마, 저승사자가 400살이래

저녁을 마친 후, 아이 입에서 갑자기 나온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 밤에 웬 저승사자 얘기야? 저승사자가 뭔지 알아?"

"엄마, 내가 저승사자도 모를 줄 알아? 영혼을 잡아먹는 거잖아.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진우는 저승사자인데 400살이야.”

그 순간, 머릿 속에 번개가 스친 듯했다. 내가 아는 저승사자와 아이가 아는 저승사자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

어릴 적 내가 보던 여름 납량특집 드라마 속 저승사자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소영이가 아는 저승사자는 잘생기고 노래 잘하며 주인공 루미를 챙겨주는 '스윗남'이었다.

국세청의 별명, 저승사자

"소영아, 국세청 별명이 저승사자인 건 알아?"

아이 눈이 커졌다. 국세청과 저승사자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는 아이에게 세무조사를 어떻게 쉽게 설명할까 잠시 고민했다.

"국세청은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사람을 조사해. 숨긴 세금이나 잘못 낸 세금을 찾아내고, 거기에 가산세까지 붙이거든. 그 부담이 크다 보니 저승사자란 별명이 붙은 거야"

"세금을 잘 내면 괜찮은 거 아니야?"

"그렇지. 하지만 일부러 숨기지 않아도 실수로 덜 낸 경우도 있어. 모든 세무조사가 나쁜 건 아니야. 예를 들어 큰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 세무조사는 그냥 주기적으로 검사하는 거라 큰 문제 없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비정기 세무조사는 이미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때 하는 거라, 결과가 무시무시해"

"그럼 국세청 공무원들은 다 저승사자야?"

"아니, 그렇진 않아. 하지만 서울청 조사4국 직원들은 세무조사의 저승사자로 불릴 만큼 강력하지"

국세청사 앞에 있던 진짜 저승사자

2014년 말 세종에 있는 국세청사 앞에 설치됐던 '흥겨운 우리가락' 조형물. 국세공무원들의 민원으로 인해 맞은편인 한국정책방송원(KTV)로 옮겨졌다. 여기서도 민원이 발생하면서 건물 앞이 아닌, 도로변으로 옮겨졌다가 시민들의 항의로 결국 창고행이 결정돼 2019년 철거됐다. [사진: 이희정 기자]

"그런데 국세청사 앞에 진짜 저승사자가 살았었어. 신기하지?"

소영이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2014년 말, 국세청 본청이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청사 앞에 ‘흥겨운 우리가락’이라는 스테인리스 조형물이 세워졌다. 갓과 도포 차림의 형상은 직원들과 시민들 눈에 저승사자로 비쳤다. 퇴근길마다 그 조형물을 본 직원들은 불쾌함과 두려움을 호소했고, 내부 설문조사 끝에 조형물은 철거됐다.

"왜 그런 조형물을 세워놓는 거야?"

"법적으로 큰 건물에는 미술작품을 설치해야 돼. 정부 건물도 마찬가지야.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도록 의무화한 거지"

"우리 학원 복도에 있는 그림, 파란 물감만 튀긴 것 같은데 그림 제목이 '수영'이래. 이해가 안 가. 그런 걸 돈 주고 사다니…"

"엄마도 미술을 전공한 게 아니라 예술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 그래서 엄마는 그 저승사자 조형물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 단지 기자로서 국세청 직원들이 그 조형물을 무서워했던 것을 기사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기사를 처음 보도했지. 하지만 조형물을 납품한 업체의 사장님은 엄마가 쓴 기사를 보고는 '예술도 모르면서 이런 걸 쓰냐'고 욕을 했고, 엄마는 당황했지"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남긴 상처

사실 그 사건이 더 마음 아팠던 이유가 있다. 당시 나는 임신 6개월이었다.

"소영아, 그때 엄마 배 속에 네가 있었어. 욕을 들었을 때 혹시 네가 나쁜 말을 들었을까 봐 더 속상했어. 임신 중엔 좋은 말만 듣고 좋은 것만 보려고 하는데, 괜히 일한다고 고집부리다 네가 나쁜 말을 들은 건 아닌지 자책했어"

아이의 표정이 울컥해졌다.

"엄마, 욕한 사람이 나쁜 거야. 속상해하지 마. 난 아무 말도 기억 안 나"

그 대화를 나누며 깨달았다. 별 생각 없이 붙인 별명 또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국세공무원에게 붙은 '저승사자'라는 별명은 묵묵히 일하는 본인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 상처일 수 있다. 정당한 취재라고 생각하고 팩트만 전달했다고 생각한 내 기사 역시 그 작가에게는 상처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서울청 조사4국에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상처 받은 납세자 때문에 생겨난 별명이었을까? 만약 그 조형물이 다른 곳에 세워졌다면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었을까?

국세공무원을 비롯해 납세자, 더 나아가 국민 모두가 내 사소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언젠가는 국세청에 붙은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 본다. 

[어린이도 이해하는 세금 이야기] 세무조사와 건축물 미술품

#1. 세무조사가 뭐예요? 
세무조사는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 확인하는 일이에요. 모든 사람이 세금을 성실하게 내면 좋지만, 가끔은 실수하거나 돈이 아까워 내야 할 세금을 일부러 숨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국세청이 납세자(개인 또는 기업)의 장부와 자료를 살펴보며 낸 세금이 맞는지 점검하는 거예요.

세무조사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정기 세무조사: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아도 세금을 잘 내고 있는지 5년 단위로 검사해요. 주로 큰 기업들이 대상이에요.
-비정기 세무조사: 세금을 숨겼다고 의심될 때 하는 조사로, 나중에 거액을 세금을 내야할 수도 있어요.

비정기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조사가 강력하기로 유명해서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2. 큰 건물에는 왜 미술품이 있어요?

아파트나 큰 건물 앞에서 조형물이나 조각상을 본 적 있나요? 이건 '문화예술진흥법' 때문이에요. 연면적 1만㎡ 이상의 건축물은 건축비의 일정 비율을 미술품 설치에 써야 해요. 

연면적 1만㎡ 이상이라는 말이 어렵죠? 연면적은 건물 각 층의 바닥 면적을 모두 합한 것인데요. 
-대형마트 5층 규모 
-아파트 13층 규모 
-지하철역 인근 업무용 건물 12층 규모

이 정도가 미술품 설치 대상이에요. 

이 법은 예술가들이 꾸준히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사람들이 생활에서 쉽게 예술작품을 접하도록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어요. 당연히 정부가 지은 정부청사나 학교도 이 법을 따라야 해요. 다만 정부에서 지은 건물에 설치하는 미술품은 세금으로 마련한다는 점을 알아두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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