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등장하기 전, 직업을 선택한 세무·회계 전문가들의 질문은 명확했다. "AI를 왜 사용해야 하는가, 업무 효율성은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 전문가들은 AI를 생산성 도구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전문성과 가치를 키우는 방향을 고민해 왔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질문은 달랐다. 태어날 당시부터 스마트폰이 일상이었던 이 세대에게 AI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접한 기술이다. 이들에게 AI는 새로운 도구가 아니라 입사시험부터 함께 경쟁해야 하는 또 하나의 경쟁자였다.
"AI보다 경쟁력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질문이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더존비즈온에서 ONE AI 개발을 총괄하는 지용구 성장전략본부 대표는 지난 25일 대전 국립한밭대학교에서 회계세무학과 학생들을 만나, AI와 함께 경쟁하며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첫 세대가 마주한 질문에 답을 건넸다.
AI와의 경쟁, 절박한 대학생에게 건넨 조언은?
이날 강연은 한밭대 경상학관에서 회계세무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AI 에이전트와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주제로 진행됐다.
지 대표가 "생성형 AI 써 보신 분 계시면 손 들어주세요"라고 요청하자, 자리에 있던 30여명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세무·회계전문가들을 만날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지 대표는 먼저 세무·회계 분야에서 AI가 이미 만들어내는 변화를 설명했다.
지 대표는 "세무·회계 업무는 복잡한 원리가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는 현장에서 해결해야 할 미션이 훨씬 많다"며 "AI를 잘 활용하면 마치 직원들의 아이큐(IQ)가 20점 올라간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회사에서 잘 써먹으려면 충분히 노력하고 도구를 잘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으로 질문과 도구 활용 능력을 가장 먼저 꼽았다. 지 대표는 대학에서 AI 활용 수업을 진행하며, 기말시험 때 답안지만 채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험을 볼 때 답안은 60점만 채점하고 나머지는 AI에게 어떤 질문을 했는지로 평가한다. 6번 이상 질문을 반복하게 한다"며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깨닫게 된다. 직작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회사에서 '너를 왜 뽑아야 하나'라는 질문에 내가 기계보다 무엇이 나은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기 인지를 높이는 과정인 것이다. 강연이 끝난 뒤, 한 학생이 "AI 시대에서 대학생이 갖춰야 할 경쟁력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지 대표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는 "가장 큰 경쟁력은 끈기, 즉 지속성이다. 반복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금 제게 가장 큰 경쟁력은 가록하는 습관이다. 그 기록이 결국 AI에게 던질 수 있는 소스가 된다. 아무리 구슬이 많아도 구슬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구슬을 모으는 일은 '공부', 꿰는 건 '이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러분도 지금 당장은 보상이 보이지 않는 일이라도, 지식이나 정보가 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으니 일단 모아두는 것이 중요하다"며 "구슬을 모아야만 언젠가 그 구슬을 꿸 수 있다. 남의 구슬을 가져다 쓴 것을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게 바로 성장의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세무·회계와 AI, 공존 가능할까…대학생들이 찾은 답은?
이미 자리를 잡은 세무대리인에게 AI는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는 도구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회계세무학과 학생들에게 AI는 일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는 위협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한밭대 회계세무학과는 올해 캡스톤디자인 연구주제를 '회계·세무와 AI의 공존'으로 정해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강연 직후 이어진 학생 연구팀의 발표 '회계학과 대학생으로서 바라본 세무·회계의 미래'(발표자: 김은진·서창현·손서현·이단비)에서는, AI 시대의 세무·회계 전문가는 AI의 최종 판단자이자 AI 리스크 설계자가 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연구팀이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14일까지 한밭대 학생 157명으로 AI 관련 설문조사를 한 결과, AI 도입으로 회계세무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이 감소할까라는 질문에 절반 가까이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AI가 도입되면 업무 효율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냐는 질문에는 매우 그렇다 45%, 그렇다 46%로 응답, 90% 이상이 AI 도입 효과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챗GPT 등 AI를 사용해 본 경험에 대해 묻자 무려 98%가 사용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주관식 응답에서는 "현재 AI로 인해 회계분야 직업이 사라지는 추세"라거나 "AI를 활용하면 회계, 세무 업무의 효율성은 향상되면서 스스로의 생각이 멈추거나 AI에게 대체될 위험도가 클 것이 분명하다"는 우려가 다수 나왔다.
연구팀을 이를 토대로 회계세무학과 학생의 경쟁력은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며, AI를 들고 들어오는 신입이 되는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세무·회계사무소의 보조직이나 경리직 등 단순업무자는 단순입력 업무에서 업무 프로세스 설계하는 직무로 전환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무사와 회계사 등 전문가들은 AI를 쓰는 전략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학에서는 'AI 오류 탐지 토론 수업'을 개설해 AI에게 세무·회계 문제를 풀게 하고 학생들이 오류·맹점을 찾아내는 토론형 수업이 경쟁력 확보에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함께 성장하기 위한 '산학 공동 프로젝트'는?
한밭대 캡스톤디자인 수업 연구팀은 대학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AI 기반 실습 프로젝트도 제안했다. 기업은 AI 오류를 잡아낼 기회를 얻고, 학생은 AI를 실전에서 활용해 보는 '윈-윈 구조'다.
연구팀이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한 더존비즈온은 국내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다음 달 세무·회계전문가 전용 AI 에이전트 '엑스퍼트원(Expert1)'을 출시할 예정이다.
연구팀이 제안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AI 자동분개 오류 탐색 및 개선'이다. 학생들은 ▲AI 자동분개 결과 수집 ▲계정과목 오류, 부가세 처리 오류, 비용·자산 분류오류 등 탐색 ▲AI 오류 분석 ▲AI 자동분개 정확도 향상 제안서 작성 ▲최종 결과를 기업 담당자에게 발표를 담당한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AI가 추천하는 절세 전략이 세법상 문제 없는지, 세무조사 리스크가 없는지, 기업의 평판 리스크가 없는지를 학생들이 감사관 관점으로 분석하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AI에게 절세전략을 요청해 도출한 결과를 3가지 관점에서 평가하고 법적 리스크를 점검한다. 최종적으로 기업이 실제로 사용해도 되는 전략 여부를 판단해 보고서를 기업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 대표는 "매우 현실적인 제안이다. 방법론이나 접근법도 너무 좋고, 실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좋은 교수학습법"이라며 "주신 제안을 회사에 돌아가서 고민해보겠다. 수준 높은 발표였다"고 격려했다.
☞캡스톤디자인(Capstone Design) 수업은?
학생들이 이론과 기술을 종합적으로 활용해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커리큘럼이다. 캡스톤은 원래 건축 용어로 아치의 맨 위에 위치한 꼭대기 돌을 의미하며, 최근 다수의 대학교에서 창의적인 교육 강화와 기업가적 인재 양성을 위해 개설하고 있다. 국립한밭대학교 회계세무학과와 택스워치는 지난 2023년부터 산학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캡스톤디자인 수업을 함께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