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전표를 자동 분개하고 세무 리스크를 예측하는 시대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런 환경에서 막 자격증을 취득한 신입 회계사·세무사는 어디에서 경쟁력을 찾아야 할까.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공인회계사(CPA) 합격자 1200명 가운데 실제 일자리로 이어진 신입 회계사는 338명(2025년 10월 기준)에 그쳤다. 통상 신입 인력이 맡아왔던 자료 정리, 기초 검토, 단순 입력 업무는 AI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AI와 함께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회계·세무 전공 대학생들은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국립한밭대학교 회계세무학과는 지난해 캡스톤디자인 수업의 연구주제를 '회계·세무와 AI의 공존'으로 정하고 팀 프로젝트(김은진·서창현·손서현·이단비)를 진행했다. 최근 공개한 결과보고서에서 학생들은 AI 시대 세무·회계 전문가의 역할을 'AI의 최종 판단자이자 책임 주체'로 다시 정의했다.

"효율성은 인정, 일자리 축소는 우려"
연구팀은 한밭대 학생 157명과 세무·회계 실무진 8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AI 도입 시 업무 효율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는 질문에는 학생 91%, 실무진 85%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AI가 반복 업무 처리와 자료 분석 속도 면에서 강점을 가진다는 점에는 모두 이견이 없었다.
반면 AI 도입으로 회계·세무학과 졸업생의 취업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는 질문에는 학생 48%, 실무진 52%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효율성에 대한 기대와 고용 불안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이다.
주관식 응답에서는 "AI로 인해 회계 직무가 축소되는 추세", "AI 활용이 늘수록 스스로 사고하는 힘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AI를 생산성 도구로 인정하면서도, 완전한 대체 가능성에 대한 불안 역시 분명했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AI는 편리하지만 완전하지 않은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핵심은 AI가 내놓은 결과를 검증하고, 오류를 식별하며 법적·윤리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전문성이라는 결론이다.

해외 사례가 보여준 '역할 전환'
연구팀은 미국과 일본의 사례도 검토했다.
미국 대형 회계법인들은 이미 AI 기반 자동 분개, 감사 샘플링, 이상 거래 탐지, 세무 리스크 예측 시스템 등을 실무에 도입했다. 대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영역에서 AI 활용은 보편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AI 도입이 곧바로 회계사의 대규모 실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단순 반복 업무가 줄어든 대신, 회계사는 기업 자문, 세무 전략 수립, 내부 통제 설계 등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역할이 이동했다. 기술이 직무를 없애기보다는, 직무의 성격을 바꾼 것이다.
일본은 중소기업이 많은 산업 구조를 바탕으로 세무 자동화 시스템이 빠르게 확산했지만, AI 결과에 대한 최종 판단은 반드시 세무사가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효율성과 책임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설계한 구조다.
연구팀은 "AI와 인간 전문가의 공존을 위해서는 명확한 역할 분담과 책임 구조 설정이 필수적"이라고 정리했다.
'업무 처리자'에서 '판단자'로
보고서는 미래 회계·세무 직무를 '업무 처리자'에서 '의사결정 지원자 및 최종 판단자'로의 전환 과정으로 규정했다.
전표 입력, 자료 정리, 단순 계산 등은 자동화하더라도, AI 결과의 적정성 검토나 법령 해석의 타당성 판단, 리스크 분석, 고객에 대한 설명 책임은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 방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단순 암기·계산 중심에서 벗어나 데이터 분석 역량, AI 결과의 오류를 탐지하고 교차검증하는 능력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AI가 산출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짚어내고 법적·윤리적 문제를 따질 수 있는 토론형 수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산학협력 기반 교육 모델의 확대도 제안했다. 기업은 실제 AI 시스템을 제공하고, 학생은 오류를 분석·개선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기업은 기술 고도화에 도움을 받고, 학생은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 캡스톤 프로젝트는 학생에게는 실무 중심 학습 기회를, 기업에는 연구 결과를 현장에 환류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며 "단발성 과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정부와 제도적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 필요성도 언급했다. AI 결과 활용 범위, 책임 소재, 데이터 보안 기준 등이 명확해질 때 기술 활용과 책임 있는 전문성이 동시에 확보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캡스톤디자인(Capstone Design) 수업은?
학생들이 이론과 기술을 종합적으로 활용해서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커리큘럼이다. 캡스톤은 원래 건축 용어로 아치의 맨 위에 위치한 꼭대기 돌을 의미하며, 최근 다수의 대학교에서 창의적인 교육 강화와 기업가적 인재 양성을 위해 개설하고 있다. 국립한밭대학교 회계세무학과와 택스워치는 지난 2023년부터 산학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캡스톤디자인 수업을 함께 하고 있다.















